부동산 비상착륙

12월 29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규제가 풀린다. 돈줄도 풀린다. 그런데 지표에 가려진 사람들이 있다.

  • 정부가 부동산 규제도 풀고 돈줄도 푼다. 다주택자를 위해 푼다. 급하게 떨어지는 집값의 연착륙을 위해서다.
  • 그러나 여전히 집값은 비싸다. 이번 정책이 외면한 무주택자와 세입자는 가혹한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 얼마나 더 지을지보다 누구를 위해 지을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결국, 정책은 사람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DEFINITION_ 투기와 규제

풀었다. 돈줄도, 규제도 다 풀었다. 부동산 이야기다. 이전 정부와 결이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이 정도면 아예 패러다임이 바뀐 수준이다. 이전 정부는 부동산 문제가 ‘투기’에 있다고 봤다. 투기를 잡을 수 있다면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부동산 문제가 ‘규제’에 있다고 정의한다. 징벌적 규제를 풀고 시장 원리가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시장원리가 ‘누구’에게 불공정했다는 뜻일까. 바로 ‘다주택자’에게 불공정했다는 것이 이번 부동산 정책의 답변이다.
BACKGROUND_ 위기관리의 방법

지난 21일, 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관한 정부의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 방향이 담겼다. 202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이다. 상황인식은 암울하다. 경기 침체는 이제 예측이 아니라 사실이다. 경제 성장률은 1퍼센트대로 주저앉고 고용률은 제자리다. 물가는 어느 정도 잡히겠지만 경상수지도 감소한다. 위기가 예고되어있으니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은 당연히 ‘위기관리’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에 닥친 위기와 정부의 해법은 무엇일까.
STRATEGY_ 다주택자의 새로운 정의
  • 위기; 절벽에 경착륙
    추경호 경제 부총리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거래 절벽’과 ‘부동산 경착륙’을 언급했다. 이는 지난 21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장과 정부의 인식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보고서는 올해 10월까지의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55퍼센트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주택가격 하락세가 가파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해법; 다주택자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다주택자다. 대놓고 “다주택자를 주택시장 내 공급의 주체로 보겠다”고 밝혔다. 즉, 집 살 여력이 되는 다주택자가 집을 쉽게 더 살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빚내기 쉬워진다. 현재 다주택자는 규제지역 내 주택구매 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새해부터는 허용된다. 세금도 깎아준다. 취득세 및 양도세 등 부동산 거래세가 낮아진다. 게다가 구입한 집으로 임대사업을 하면 혜택을 더 준다. 투기 우려로 폐기 수순에 들어갔던 아파트 민간등록임대제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효과가 있을까? 시장의 분석은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KB의 보고서에서는 규제 완화가 “시장 내 잠재된 매수 수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시장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년여간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을 오히려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우려다. 
RISK_ BUBBLE

집값 하락이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지금도 여전히 거품은 남아있는 것일까? 숫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가구소득 대비 집값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PIR(가구소득 대비 가격 비율)’이라는 지표를 보면 드러난다. KB국민은행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PIR 지표를 조사해 봤더니 올 3분기 기준 서울의 PIR은 가구소득은 5701만 원, 아파트 가격은 8억 2875만 원으로 14.5배에 달했다. 적정 수준은 5배 정도로 본다. 과도하게 거품이 끼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10배 정도다.
CONFLICT_ 빌라 왕

정부의 대책이 누구를 위한것인가에 관한  질문도 제기된다. 집값이 급하게 떨어지면 절벽 앞으로 가장 먼저 내몰리는 것은 주거 약자들이다. 최근 세간을 경악게 했던 ‘빌라 왕’ 사건에서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은 세입자들이었다. 세입자와 무주택자는 실수요자의 다른 말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를 양성하는 정책에만 집중한다면 세입자와 무주택자는 영원히 세입자와 무주택자 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 중 세입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것은 고정금리 전세자금 대출 상품이 확대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그리고 전세 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초저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 정도다.
MONEY_ 초현실적인 집값

뉴스를 통해 접하는 집값은 초현실적이다. 초현실적인 가격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하고, 또 초현실적인 가격이 헤드라인에 박혀야 클릭 수를 확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초현실주의는, 어쩌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시그널일 지도 모른다.
  • 월 227만 원씩 50년;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놓은 대출 규제 완화 정책 중에 1년간 한시 도입되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있다. 소득 기준도 보지 않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역시 피해 갈 것으로 보인다. 9억 이하 주택에 5억까지 대출해 주고, 금리는 5퍼센트다. 얼핏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50년 장기 원리금 상환을 선택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월 227만 원씩 50년을 갚아야 한다.
  • 24억 영끌 은마아파트;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경매 시장에 등장했다. 매매가 27억 원 중 24억 원을 대부업체를 통해 '영끌'한 집주인은, 매월 2천만 원의 이자를 감당하면서 버텼다. 하지만 금리는 뛰고 대출의 담보에 해당하는 집값은 떨어졌다. 결국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무엇을 위해 이런 무리수를 던졌던 것일까.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합리적이다. 특히,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RECIPE_ 기묘한 재건축

시장의 원리는 간단하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안정된다. 그러나 그 시장 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재건축 아파트단지다. 아파트가 낡아 주민이 살기에 위험하다는 진단이 내려지면 승리의 현수막이 걸린다. 집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이익 실현의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러니다. 사실, 이미 엄청난 인구 밀도를 감당하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 공급을 늘려야만 한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재건축일 수도 있다. 또, 굳이 위험하지 않더라도 난방이나 단열의 효율이 떨어지고 거주에 불편이 생긴 아파트에는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재건축이 쉬워진다는 의미다.
FORESIGHT_ 그린 리모델링

정부가 노리는 효과는 공급 확대와 투자 심리 자극에 따른 부동산 가격 방어, 두 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재건축을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 질문 1, 집은 정말 부족한가?
    질문의 범위를 서울로만 좁힌다면 그렇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3퍼센트다. 집이 남는다는 얘기다. 서울은 95퍼센트다.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다.
  • 질문 2, 어떤 집이 부족한가?
    우리나라 가구의 4.6퍼센트는 정부가 정의한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 살고 있다. 청년층의 경우 7.9퍼센트로 그 비율이 더 높다. 고시원, 컨테이너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서울에 공급되어야 할 집은 어떤 집일까? 이미 고평가될 대로 고평가된, 강남 한복판의 재건축된 아파트는 아닐 것이다. 비가 오면 침수되는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지내는 청년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과연 그런 집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고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질문 3, 낡은 아파트의 해결책은 재건축뿐인가?
    아니다. 탄소중립 시대의 재건축은 오히려 비효율일 수 있다. 철거와 건설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대신 ‘그린 리모델링’이라는 대안이 제시된다. 해외에서는 익숙한 개념이다. 낡은 건물을 수선 및 보수하되, 그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목적 자체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함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재건축이 탄소배출 면에서도 더 유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판단을 위해서는 정밀한 측정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건축이 불러오는 경제적 이익이 다른 판단 기준을 모두 압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INSIGHT_ 부아쟁 계획

20세기를 만들어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1920년대, ‘부아쟁 계획’을 제안한다. 300만이 살 수 있도록 파리를 재구성하는 도시계획이다. 고층 건물을 세워 상업 시설과 주거 지역을 확보하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모두 지하화한다. 대신 지상에는 녹지를 조성해 부자가 아니어도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100년도 더 된 계획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현대적이며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당시 그가 목격했던 파리의 현실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인구가 급증하고, 시민들이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에 고통받았던 상황 말이다. 경제 지표는 분명 암울하다. 그러나 그 지표 너머에 오늘 저녁 돌아갈 ‘우리 집’을 꿈꾸는 무주택자와 세입자가 있다. 안전하지 못한 주거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다.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누구를 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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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주거의 형태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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