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NEXT LEVEL

1월 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대통령의 신년사는 노동 개혁을 이야기한다. 물론, 변화는 필요하다. 노조와 정부 모두.

  •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은 노동 개혁이었다. 물론, 개혁의 1순위가 노동조합인지를 두고는 논쟁이 따라붙는다.
  • 노동조합은 변화해야 한다. 시대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도 해야 할 일이 있다.
  • 시장경제라는 종교에 매몰되면 지금 당장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불공정한 자동화’라는 위기다.

BACKGROUND_ 대통령의 신년사

대통령의 신년사는 분석의 대상이 된다. 어떤 단어를 골라 사용했는지, 어떤 의제에 관해 시간을 할애했는지 등에 따라 한 해의 국정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욱 그러했다. 새해 기자회견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신년사를 두고 “핵심만 압축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핵심 정리가 되어있다면 메시지는 쉽게 읽힌다. 대다수의 언론은 이번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이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REFERENCE_ 화살의 방향

신년사는 먼저 우리가 처한 위기를 지적한다. 그리고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한다. 노동 개혁의 명분은 경제 성장이다. 뒤집자면 노동계에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이 일정 부분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려운 시기,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화살은 종종 정부를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두가 힘들 때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집단이 등장하면 비난의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통해 국정 운영 힌트를 얻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ANALYSIS_ 책임의 주체

노동자가 쟁의에 나서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다. 즉, 힘들 때 노조의 요구는 절실해진다. 그리고 그런 때일수록 노조의 쟁의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민주 노총은 완전무결한 조직이 아니다. 한국 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과연 개혁의 1순위여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경제 위기를 돌파할 책임을 짊어진 주체는 노동자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 기업, 정부는 물론, 가계까지 경제를 움직이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중 한 주체에 프레임을 강하게 씌우면 프레임 바깥이 흐릿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정부의 R&D 투자가 30조 원 시대를 열었다고 밝혔다.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그만큼의 돈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대기업이 휘청일 때는 구제 금융 찬스가 있었다. 97년 IMF까지 갈 것도 없다. 대우조선해양도, 두산중공업도 공적자금으로 목숨을 연장했다. 기업이 수익을 욕심내는 것, 기업의 생존을 위해 세금이 들어가는 것에 우리 사회는 관대하다. 노동 쟁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일하는 사람들이거나 일하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INSIGHT_ 변화할 결심

노동조합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장부를 대놓고 들여다보면 나올 수 있는 ‘비리’ 같은 것의 문제가 아니다. 숫자를 맞춰보기 전까지 흠결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문제는 숫자를 맞추기 전에 이야기해 봤자 또 다른 프레임이 될 뿐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당면한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 부족한 것; 대표성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임금근로자 수 대비 조합원 수는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46.3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나마 3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에는 0.2퍼센트다.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활동이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직장인의 절반 이상 (62.6퍼센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의존하는 것; 조직력
    노동 쟁의는 구시대적이다. 2020년 김우식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청년 조합원의 경험과 노동조합의 대응 과제’에 따르면 20대 조합원의 24.4퍼센트는 소속된 노조 지회가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나이주의·선배문화 등 권위적 관습’을 꼽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조 안의 꼰대기질’이다. 노조는 왜 권위적인가? 쟁의 방식이 조직력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존중 받기 위한 방법으로 노조가 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는 파업 및 태업이다. 파업이 위력을 가지려면 최대한 많은 조합원이 동참해야 한다. 결국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쟁의의 성공을 가르는 구조다. 그런데 이 조직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방법이 20세기에 멈춰있다. 시대가 달라졌고 사람도 달라졌다.
다만 위 두 가지는 노동조합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시대를 인정하고 자기반성이라는 당연한 의무를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문제는 결이 조금 다르다.
  • 닥쳐온 것; 대체재
    노동자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스스로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력이다. 대표적으로 이주 노동자와 로봇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이 둘의 활동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주 노동자는 일명 ‘3D 업종’을 중심으로,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국내 노동자들과 공생했다. 그러나 판이 바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동조합의 존재 의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노동자가, 혹은 노동조합만 노력한다고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NUMBER_ 10년짜리 용병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 시행 18년 만에 처음으로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저숙련 단순노동을 넘어 숙련도가 필요한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다. 다만, 변화가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정책은 ‘노동자 용병술’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 정착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비전은 여전히 빠져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송금하는, 참고 견뎌야 하는 타향이다. 저출생을 최대의 사회문제로 꼽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RECIPE_ 로봇

물론, 사람이 부족하다면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최근 발표한 ‘2022 세계 로봇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1년 산업용 로봇 밀도는 1000대를 기록했다. 전 세계 최정상이다. 보고서는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로봇 사용이 집중되어있다고 짚었다. 로봇 밀도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배치된 로봇의 수를 의미한다.
RISK_ 자동화의 불공정

문제는 이런 자동화가 ‘노동 양극화’를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면 두 가지 효과가 동시에 일어난다. 저숙련 노동자를 대체하고 생산 효율성 증대를 통해 노동 수요가 전체적으로 확대한다. 어느 쪽이 우세할지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OECD의 2018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슬로바키아의 모든 일자리 중 33퍼센트가 자동화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6퍼센트 정도만 자동화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최근 MIT에서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로봇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80년부터 2016년 사이에 벌어진 임금 격차의 50~70퍼센트가 자동화라는 단일 변수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즉, 자동화로 저숙련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STRATEGY_ 재교육

확실한 것은 자동화의 위험이 불공정하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OECD의 같은 보고서는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일자리는 일반적으로 기초 수준에서 낮은 수준의 교육만 필요로 한 반면,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일자리는 전문교육에 준하는 수준 또는 고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맥킨지의 경우, 산업화에 의한 변화를 맞았을 당시와는 달리, 자동화로 인해 발생하는 과제는 중견 근로자를 재교육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DEFINITION_ 평생학습?

이 시대의 흐름을 우리 정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좀 다르게 알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평생학습 진흥 방안’에 따르면 일반 성인도 대학의 다양한 비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인의 ‘평생학습 휴가’도 보장한다. 공부나 연구를 하려는 직장인이 학습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분야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로봇으로 인한 자동화가 대체할 노동자, 즉 ‘기초 수준에서 낮은 수준의 교육만 필요로 하는 업무를 해 온 중견 근로자’를 위한 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진작부터 예견되어온 변화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노조가 로봇의 도입을 반대하는 쟁의를 펼칠 때 무조건 시대를 받아들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봐야 한다.
FORESIGHT_ 노동 4.0

플랫폼 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노동 시장의 파편화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고용은 기술에 따라 이미 유연화되고 있고, 20세기에 뿌리를 박고 있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조직력이 유효한 쟁의가 명맥을 유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달라진 시대는 노동조합과 정부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노동의 의미가 변해가는 지금, 어떻게 그 변화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를 말이다. 독일은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논의를 서둘렀다. ‘인더스트리 4.0’과 ‘노동4.0’이 그것이다. 흔히, 경제지를 중심으로 노동 4.0은 독일판 고용 유연화라고 분석하지만, 논의는 녹서와 백서를 거치며 세밀하게 전개되었고 훨씬 깊은 고찰이 담겼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고용될 능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또한 재택근무 등 새로운 노동 환경에 필요한 노동 규범을 고민한다. 즉,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노동의 몫’을 어떻게 지켜낼지에 관한 내용이 잘 담겨있다. 이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 2011년이다. 우리는 과연 언제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상황이라면 과연 마주 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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