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조건, 도전 정신
2화

학자이자 개발자

3. 과학과 기술 사이를 왕래하다


파스퇴르는 자연 발생설에 대한 논쟁 외에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거나 여전히 사용하는 많은 미생물학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개발했다. 발효를 연구하던 시절 파스퇴르는 포도주나 식초의 생성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모를 죽이지 않고 효모 이외의 다른 미생물만 죽일 수 있는 차별적 멸균 방법인 저온 살균법이라는 것을 고안했다. 이 기술이 바로 오늘날에도 우유나 통조림 등 다양한 식품의 멸균에 사용되는 파스퇴르 멸균법(Pasteurization)이다. 이러한 기술의 개발은 생명의 자연 발생설 논쟁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나가던 순수 과학의 연구 방식과는 다른 시도로, 수많은 산업적 공정 및 산업용 기기 등을 고안하는 데에 사용됐다. 이처럼 파스퇴르는 산업적 응용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을 따로 분리해 생각하지 않고 순수 과학의 또 다른 확장으로 여기며 오랜 기간 다양하게 연구했다.

파스퇴르는 미생물을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미생물의 분해 능력을 보고 미생물의 종류마다 다르게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이용해 산업에 필요한 수많은 유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관련 공정을 탐구했다. 한동안 산업적인 연구에 매진하던 시절 그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산업 공정에 이용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품이나 바이오 의약품 등 다양한 생물 산업에 사용하는 공정의 모습 그대로여서 놀랍기만 하다. 그의 이러한 왕성한 산업적 연구는 현재 생물 공학의 모태가 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시대를 월등히 앞서가는 과학적 성취였다.

또한 발효 과정의 미생물을 연구하던 그의 관심은 미생물의 생명 현상이나 젖산 대사의 산소 유무에 관련된 연구로도 이어져서 마침내는 발효 과정을 “공기가 없을 때의 호흡”이라고 정의했다. 한편 모든 종류의 세포는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는 발효라는 생화학적 과정을 일으키므로, 이런 호흡과 발효 현상을 조절하는 방법이 생체 내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나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과도 연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미생물뿐만 아니라 전체 생명체의 에너지 대사 과정까지도 해석이 가능한 의학적 성과까지 이뤄 낸 것이다.

파스퇴르 생애의 후반기는 질병에 관한 연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의학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해인 1877년에는 수많은 소에서 발견된 탄저병(anthrax) 연구 결과를 해석하면서 미생물의 병원균론(germtheory)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그리고 이후의 생애를 미생물 병원균론에 근거한 감염병 연구에 집중하면서 보냈는데, 나쁜 공기를 열심히 관찰하면 감염병이 옮겨지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창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파스퇴르가 처음으로 미생물과 질병을 연결해서 연구했던 대상은 사람이나 가축이 아니라 곤충인 누에였다. 1860년대 프랑스에서 양잠 농가를 붕괴시킬 정도로 심하게 퍼졌던 누에의 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질병이 누에가 포자충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것임을 밝혀내고, 이런 발견을 기반으로 감염되지 않은 누에를 쉽게 기를 방법과 누에의 위생 상태를 유지할 방법도 찾아냈다. 파스퇴르는 누에 병 연구로부터 미생물과 질병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세균이 원인인 탄저병을 비롯해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 광견병 등에 대해 눈부신 병리학적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광견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동물 세포를 이용해 이전에는 쉽게 다룰 수 없었던 바이러스를 세균을 연구하는 것처럼 배양하고 다루는 방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이후의 수많은 바이러스학 연구의 바탕을 구축했다.

파스퇴르라는 이름과 더불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병원균론에 입각해 다양한 감염병을 연구하며 백신을 개발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지금도 감염병에 가장 적절한 대응 수단으로 활용되는 백신을 여러 가지 개발하면서 면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켰다. 그는 탄저균에 감염되어 죽어 가던 수많은 소들을 살려 낸 탄저 백신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업적으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는 등 백신 접종에 의한 면역 기능 형성을 비롯해 초기 면역학의 여러 이론과 기술을 정립했다.

예순이 넘어 몸이 불편해진 노년에도 파스퇴르는 여전히 백신 연구와 개발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속하면서, 당시의 과학을 고려하면 공상 과학처럼 들릴 만큼 시대를 앞선 새로운 백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합성 백신(재조합 항원 백신)에 관한 제안이었다. 파스퇴르는 살아 있는 미생물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것처럼 미생물의 일부 성분만 들어 있는 용액이나 물질도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콜레라균을 이용해 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비록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이 방법이 오늘날 보다 안전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대다수의 백신 개발에 사용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미래 지향적인 아이디어가 놀라울 뿐이다.

 

4. 파스퇴르의 유산


파스퇴르는 생명 발생에 관한 연구, 수많은 미생물 발견과 생화학적 반응 연구를 비롯한 순수 과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여전히 우리는 그가 발견한 수많은 미생물학적 지식과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의 결과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다. 더불어 순수 과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발효 공정 기술과 저온 살균법 개발, 누에 병 치료 방법 등 다양한 산업적 응용 과학의 분야에서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을 만큼 눈부신 수준의 기술적 업적도 이뤄 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감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발전시키고 면역학이라고 하는 의학의 신기원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치열한 연구를 통해 얻어 낸 이론을 실제적인 응용으로 연결해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산업적, 의학적 성과로 보여 주며 우리에게 놀라운 유산을 남겼다.

파스퇴르의 광견병 예방 백신 개발을 기념해 전 세계에서 답지한 성금을 기반으로 1988년 파리에 처음으로 설립한 파스퇴르연구소(Institut Pasteur)는 미생물학과 면역학의 신화 같은 존재인 루이 파스퇴르의 또 다른 유산이다. 파리에 이어서 로마, 아테네를 비롯해 지금은 우리나라 판교에서도 운영되는 전 세계 다섯 개 대륙 25개국의 33개 연구소로 구성된 파스퇴르 네트워크를 통해 파스퇴르는 사후에도 여전히 세계 각국의 감염병과 질병 연구에 기여하며 생명 과학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1988년 설립 이후 이 연구소는 기생충학의 선구자적인 연구로 1907년 노벨상을 수상한 알퐁스 라브랑(Alphonse Laveran)에서 1983년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발견해 2008년 노벨상을 수상한 수상한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Françoise Barré-Sinoussi)까지 열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결핵, 소아마비, 황열, 페스트, 인플루엔자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서운 병원체 연구의 최선봉에서 헌신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파스퇴르가 창조론을 옹호하고자 자연 발생설을 부인하는 연구에 몰두했다는 의견이나 파스퇴르연구소가 한편으로 저개발 국가의 생물 자원을 착취한다고 비난하는 의견 등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의 경중에 앞서 현대 미생물학의 기반과 백신을 중심으로 혁혁한 발전을 이루어낸 파스퇴르의 엄청난 과학적 업적은 그가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위대한 생물학자로 영원히 기억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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