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이라는 계륵

1월 4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CES 2023에서 신형 TV 모델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TV는 플랫폼을 넘어 하드웨어로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이다혜 에디터
#테크 #플랫폼 #컬처 #게임 #라이프 #트렌드 #포캐스트
  • 다가오는 CES 2023에서 세계 TV 시장이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인다.
  • 위기의 TV 시장은 OLED, 크기,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다.
  • 빅테크들은 스크린 너머를 본다. VR이다.

BACKGROUND_ 플랫폼
네이버TV의 지난 카타르 월드컵 시청자 수가 누적 1억 2000만 명을 기록했다. 미국 내 시청 점유율을 장악해 온 케이블 TV는 지난해 7월 그 자리를 스트리밍 플랫폼에게 넘겨줬다. 인터넷 TV사들은 IP를 발굴하기 시작했고 기성 미디어들은 인수·합병으로 생존 전략을 택하고 있다. 격동의 콘텐츠 스트리밍 시대에 TV 가전 시장은 길을 잃었다. TV는 플랫폼을 넘어 하드웨어로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KEYPLAYER_ 삼성·LG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란히 세계 TV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4일 시장 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각각의 시장 점유율은 31.5퍼센트, 17.4퍼센트였다. 둘을 합하면 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에 육박한다.[1]
MONEY_ 249억 달러
TV 시장의 한파는 숫자로 드러난다. 2022년 3분기 기준 세계 TV 시장 규모는 249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1퍼센트 줄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 감소와 연결된다. 전년 동기 대비 삼성전자의 영상 기기(TV·모니터) 매출은 32.7퍼센트,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TV·오디오) 매출은 11.2퍼센트 감소했다. 재고 부담도 커지는 상황이다. 2022년 LG전자의 상반기 재고 자산은 9조 6844억 원, 삼성전자의 3분기 재고 자산은 57조 3000억 원으로 드러났다.
ANALYSIS_ 목돈, 1인 가구
사람들은 왜 TV로부터 등을 돌렸을까. OTT라는 경쟁사의 등장 외에도 지난해 금융 위기와 1인 가구의 꾸준한 증가는 TV의 필요성에 질문을 던진다.
  • 목돈 ; 가전 시장의 혹한기는 TV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의 가전 제품 수출액은 약 4억 9737만 달러로, 지난해 1월 11억 7687만 달러의 절반도 못 미친다. 가전 제품의 구매 조건은 목돈이다. 2022년은 안보 불안과 금융 위기의 해였다.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의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가전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 1인 가구 ; 1인 가구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2015년 520만 가구에서 2021년 716만 가구로 증가했다. 2050년엔 905만 가구를 기록해 전체 가구 중 40퍼센트에 달할 예정이다. 함께 영상을 시청할 식구가 부재하고 좁은 면적의 주거 형태가 늘어나며 가전 제품의 기능과 매력은 위축했다.

REFERENCE_ CES 2023
위기의 TV 시장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다가오는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리는 CES 2023에서 그 청사진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 IT기술 박람회다. 3D 프린팅, XR, 핀테크, 에너지 등 각종 기술 분야의 프로덕트를 선보인다. 전 세계 170여 국의 2400개 기업·기관이 참여한다. 이 중 약 550개가 한국 기업이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TV 제조사들도 신형 모델을 선보인다. 주목할 세 가지는 OLED, 크기, 게임 요소다.
STRATEGY1_ OLED
  • OLED TV[2]의 장점은 말끔한 검정색을 표현할 수 있고, 디바이스를 얇거나 휘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LED TV와 차별화된 부분이다. 전 세계 OLED TV 시장의 60퍼센트는 LG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 OLED TV의 단점은 번인 현상[3]이 생기고 초고 해상도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율이 낮다는 점도 지적된다. 삼성 전자가 QLED 시장을 고집하며 OLED TV 개발을 보류한 이유다.[4] 그런데 지난해 9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 삼성전자 전시장에 이례적인 제품이 등장했다. QD-OLED TV다. 이번 CES 2023 사전 행사에선 시그니처 TV 제품으로 삼성 OLED TV 77형을 선보인다. QD-OLED TV의 제조 원가를 40퍼센트가량 절감하고, 출하량을 2022년 45만 대에서 2024년 200만 대로 목표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STRATEGY2_ 크기
사람들은 왜 TV를 볼까? 몰입감을 선사하는 큰 화면은 TV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시장 조사 업체 NPD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내 65인치 TV 판매량은 전년 대비 27퍼센트 증가한 반면, 70인치 TV 판매량은 무려 82퍼센트 증가했다. 제조사들도 초대형 스크린에 집중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출시한 Neo QLED TV는 무려 98형(가로 250센티미터)이었다. 비싼 가격표와 함께 프리미엄 전략도 덤이다. 해당 모델의 출고가는 4500만 원이었다.
STRATEGY3_ 게임
몰입감이 빛을 발하는 것은 영상 시청에서만이 아니다. 가전 업계는 연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게임 시장을 노린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신형 TV 모델 기준 삼성전자는 MS의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LG전자는 엔비디아 지포스나우와 구글 스타디아를 제공한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지난해 10월 TV 시장의 미래 먹거리로 ‘홈게이밍’을 짚었다.
CONFLICT_ 모니터
  • TV 회사가 게임 비즈니스를 노린다면 TV와 게이밍 모니터는 한 가지 디바이스로 병합될까? 스마트 TV의 출현으로 둘 간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CES 2023에 삼성전자가 선보이는 오디세이 네오 G9은 게이밍 모니터답게 빠르고, TV 만큼이나 크며, 영화관 스크린처럼 비비드하다.[5]
  • 그럼에도 TV와 게이밍 모니터는 별개의 시장으로 존재한다. 제조 시 다른 종류의 패널을 사용하고 우선시하는 스펙이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의 핵심은 정밀도다. 게이밍 모니터는 주사율[6]과 반응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반면 TV의 핵심은 편안한 시청감이다. 색조, 대비 등 수준 높은 수준의 그래픽 표현이 가능하지만 픽셀 밀도가 떨어진다. 게이머들에게 TV는 부정확하며,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 게이밍 모니터는 눈이 아프다.

RECIPE_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대신 TV 시장은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노린다. 좋은 TV를 구매하면 가벼운 콘솔 게임을 플레이하고 홈트레이닝홈댄스를 즐길 수 있다. NFT 아트를 구매하거나 그림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TV의 오랜 장점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며, 프리미엄 TV는 여기에 취향과 체험을 덧댔다. 정보 송출을 비롯해 TV의 초기 역할은 플랫폼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대신 거대한 화면이 갖고 있는 물성에 기대,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의 장비로 나아가고 있다.
RISK_ 에너지
고전력을 소비하는 프리미엄 TV는 ESG라는 전 세계 비즈니스의 흐름을 역행한다. 지난해 10월 12일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전체 TV 중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을 받은 제품은 29.2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4등급은 50.8퍼센트, 5등급은 4.6퍼센트로 과반에 달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3월부터 27개 회원국에서 에너지 효율 지수(EEI)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8K TV는 유럽 내 판매가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논란이 일었다.[7]
INSIGHT_ 매개, 가족
  • 매개 ; 과거의 TV는 동네의 사랑방이자 세상을 보는 창구였다. 마을 사람들은 TV를 들여놓은 집에 모여 앉아 한 화면을 바라봤다. 같은 농담과 비슷한 상식을 공유하는 매개였다. TV라는 중앙 집중형 디바이스의 기능이 여러 디바이스로 분산되며 사람들은 점점 다른 것을 보고 듣게 됐다. 그 결과 웃음의 스펙트럼이 달라졌고 상식(common sense)의 기준은 옅어졌다.
  • 가족 ; TV 시장은 프리미엄 시장을 넘보지만 나를 위해 초호화 TV를 마련할 여건과 의지를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큰 화면은 누군가와 함께 볼 때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충족한다. 가전 시장 위기의 본질적인 돌파구는 인구 문제 해결과 맞닿아 있다.

FORESIGHT_ VR
빅테크들은 스크린 너머를 본다. 메타를 화두로 세계 빅테크들은 VR 기기 및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KT를 비롯한 IPTV 사업자들이 종편과 케이블 TV를 시청할 수 있는 VR 디바이스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좁은 집에 TV를 두기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한 디바이스’로 홍보하기도 한다. 현재 물성은 TV라는 하드웨어가 강조해야 하는 강점인 동시에 에너지 효율 등으로 시장의 발목을 잡는 계륵이다. 거대한 고화질 화면이 가상 세계에서 안정적으로 구현될 때, TV의 물성은 완전히 힘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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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3~5위는 중국 티시엘(TCL)과 하이센스, 일본의 소니가 비슷한 점유율로 차지하고 있다.
[2]
OLED TV란 백라이트 없이 백색 소자가 스스로 발광해서 색을 구현하는 TV다. 아래 기술되는 QLED TV란 기존 LED TV에 퀀텀닷(QD) 기술을 접목시킨 TV다. OLED, QLED, LCD 등의 차이가 궁금하다면 다음 링크 참조.
[3]
디스플레이의 일부 화소가 빛과 열에 의해 타버려 잔상이 남는 현상.
[4]
삼성전자가 모든 OLED 시장 진입을 보류한 것은 아니다. 갤럭시를 비롯한 다수 소형 디바이스에 이미 OLED를 사용하고 있다.
[5]
기존 데이터 전송 속도 대비 두 배 넘게 빠른 DP 2.1 규격을 사용한다. 57인치(145센티미터) 너비에 듀얼 UHD 해상도(7680×2160)를 구현한다.
[6]
화면에 1초에 얼마나 많은 장면을 표시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수치.
[7]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당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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