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경계를 넘어

1월 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다. 기부금은 소멸 위기 지역을 구할 수 있을까?

  • 1월 1일, 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다.
  • 지자체가 노리는 건 세수 증가만이 아니다. 관계인구 증가다.
  • 그리고 단단한 관계는 언제나 투명성이 만든다.

DEFINITION_ 고향사랑기부제

새해부터 고향사랑 기부 열풍이 불고 있다. 2022년 10월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리고 2023년 1월 1일,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가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다. 유명인들이 고향사랑기부 행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충청북도 1호 기부자는 나영석 예능PD, 충북 음성군의 1호 기부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으로 알려졌다. 많은 지자체가 유명인을 1호 기부자로 내세워 기부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향, 사랑, 기부라는 단어가 모두 들어있지만, 이를 새해의 따뜻한 풍경 정도로만 볼 수 없다. ‘고향사랑’은 소멸로 향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마지막 호소에 가깝다.
BACKGROUND_ 지방소멸

2022년 추석, 3017만 명이 이동했다. 이미 2020년부터 우리나라 인구 절반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심각한 수도권 집중화, 지방소멸 문제를 앓고 있는 일본만 해도 전체 인구의 30퍼센트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지방소멸 문제에 직면한 일본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는 만 29~39세 가임기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눠 ‘지방소멸위험지수’를 측정했다. 하지만 출생과 사망만으로 소멸위험 정도를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라 산업연구원은 2022년 11월 새로운 지표를 내놓았다.
NUMBER_ 59곳

바로 K-지방소멸지수다. 산업연구원은 저출생이 지방소멸의 원인 중 하나지만, 인구 유출이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1인당 연구개발(R&D) 비용, 산업 다양성, 지식 산업 비율, 고용 상황, 인구증감률, 총 6개의 지표에 따라 지방소멸 위험 정도를 측정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역은 9곳, 소멸우려지역은 50곳이다. 소멸위험에 놓인 59개 지역은 전남·강원·경북에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한 정부는 2020년 12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을 통해, 인구감소지역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일자리 창출, 청년 인구 유입 등에 10년간 1조 원씩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MONEY_ 지원금?

우리나라 외에도 지방소멸을 고민하는 많은 국가가 지원금에 집중하고 있다.
  • 일본; 2023년부터 도쿄에서 지방으로 이사하는 가족에게 이주지원금을 지급한다. 18세 미만 자녀 한 명 당 100만엔, 한화로 약 975만 원이다. 지원금을 받으면 최소 5년간 지방에서 거주해야 한다.
  • 스위스; 알비넨 지역의 주민은 2017년 기준 총 240명이었다. 소멸 위기에 놓인 주민들이 직접 정부에 이주장려금 지급 탄원서를 냈다. 당국은 알비넨으로 오는 이주민에게 성인 1인당 1만 8992파운드, 한화 약 2700만 원, 아이 1인당 7000파운드, 한화 11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0년간 머무는 조건이다.
  •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도 소멸 위기에 놓였다. 2020년 기준 전체 주민은 115명으로, 그중 20세 미만은 13명뿐이었다. 시 당국은 최소 5년 거주를 조건으로, 이주민에게 3년간 8000유로, 한화 약 1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RECIPE_ 답례품

  • 하지만 지방에 없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이 없으니 돈도 없다. 운영에 필요한 세금도 부족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 기부였다. 일본은 2008년 ‘고향납세제(후루사토노제)’를 도입해 세수 불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초기 5년은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3년부터 홋카이도 가미시호로정이 지역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며 세수가 늘었다. 2021년에는 기부금이 총 8302억 엔, 한화 약 8조 원에 달했다. 

  • 지자체의 유용한 수입원으로 자리한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벤치마킹한 것이 우리나라의 고향사랑기부제다. 기부 대상이 고향에 한정되지 않으며 모든 개인은 원한다면 거주지 외 지자체에 연간 500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다.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 되며, 초과분은 16.5퍼센트 공제 받을 수 있다. 또 기부금의 30퍼센트 이내 가격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수령할 수 있다.


EFFECT_ 지역 경쟁력

기부처를 고향으로 한정하지 않는 제도의 특성상, 답례품이 선택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퍼센트가 기부 이유로 ‘답례품’을 꼽았다. 세수 유출을 막기 위한 지자체 간의 답례품 경쟁은 오히려 지역의 특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021년 일본 고향납세 1위 지역은 홋카이도 몬베쓰시였다. 몬베쓰시는 1위에 올라서기 위해 답례품으로 제공되는 가리비 양식에 4년 동안 공을 들였다. 현재 일본엔 고향납세 수납, 답례품 홍보 및 판매, 민원처리 등을 대행하는 40여 개 민간 플랫폼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플랫폼 ‘사토후루’에 등록된 답례품 건수만 해도 47만 건이다. 답례품은 지역 농수산물 및 가공품 외에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씨름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영암군의 ‘천하장사와의 식사권’, 강원도 속초시의 요트 탑승권, 서핑강습권 등 관광형 답례품이 이목을 끌고 있다.
STRATEGY_ 관계인구, 생활인구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한 것은 고향납세라는 제도만이 아니다. 일본은 지역 주민을 뜻하는 ‘정주인구’와 구분되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관계인구는 주민등록상 거주민이 아닌 생활에서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구를 뜻한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통근·통학·관광·업무 등으로 지역에 머무는 모든 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관심선행형·관여선행형·동시진행형 등의 ‘관계의 계단’으로 관계인구를 본다. 방문-기부-빈번한 방문 등 지역에 대한 관심이 단계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서울시가 KT와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활인구 통계를 집계해 관리해 왔다. 그리고 2023년부터 행전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기준으로 지역 활성화 대책을 지원할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RECIPE_ 워케이션

젊은 인구 유입 대책으로 일자리에 주목해온 지자체는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일과 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23∼2025년 관광 흐름을 제시하며, 10가지 핵심 트렌드에 워케이션을 포함한 바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양지에서 원격근무를 하며 일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새로운 근무형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13개 지자체의 44곳을 현장 점검해, ‘2022 워케이션 시설 디렉토리북’을 만들었다. 워케이션 기반 시설이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제주로, 과학기술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메타버스 노마드 시범사업 만족도 조사 결과, 제주에서 워케이션을 보낸 참가자의 96퍼센트가 재참여 의사를 밝혔다.
INSIGHT_ 투명성

지자체의 주목을 받는 워케이션은 한 사람이 일터와 휴양지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워케이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원활한 원격근무다. 온라인 워크스페이스 플랫폼 ‘알로’의 홍용남 대표는 원격근무의 핵심으로 극단적 가시성을 강조한다. 서로의 상태값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곧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신뢰와 참여로 이끈다는 뜻이다. 고향사랑기부제 도입을 앞두고 강조된 것은 역시 마찬가지, 기부금 모금과 사용 과정에서의 투명성이었다. 
FORESIGHT_ 노 모어 제로섬게임 

그간 지방균형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도시의 인적 물적 자원을 농촌에 유입하는 방안에만 집중돼 있었다. 주민등록상 강원도 강릉시 인구는 21만여 명이다. 생활인구로 확대하면 30만 명이 넘어선다. 지역에 방문하지 않아도 꾸준히 농수산물을 구입하거나 기부를 하는 ‘비방문형 관계인구’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인구 문제는 한 지역이 차면, 다른 지역이 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관계인구, 생활인구로 보면 한 사람이 두 지역에 동시에 존재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공간의 경계를 넘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투명성이 될 것이다.

지역 공동체의 의미와 조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마을은 언제 사라지나?〉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