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은 풀린다

1월 1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주사를 맞으면 24kg을 뺄 수 있다. 마법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러나 마법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 비만 치료제 시장이 뜨겁다. 2023년, 시장이 바이오산업을 주목하는 이유다.
  •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주사를 맞으면 살이 빠진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 비만은 사회적 질병이다. 전염되고 대물림된다. 비만을 치료한다고 불공평도 치료될까?

BACKGROUND_ 기회가 닥쳐오는 곳

경기 침체는 현실이다. 올해 글로벌 경제를 두고 비관론을 쏟아내지 않는 전문가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러나 투자는 현실 다음을 전망한다. 기회란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곧’ 닥쳐와야 가치 있는 기회다. 그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을 손에 넣는다. 21세기 번영의 상징인 빅테크가 연일 주저앉는 침체의 시기, 2023년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분야가 꼽히지만 역시 바이오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치솟은 건강에 관한 관심은 투자심리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엔데믹과 경기침체로 주춤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나스닥 바이오지수는 2022년 7월을 기점으로 상승 중이다. 미국 바이오제약 기업들에 대한 투자 심리는 이미 바닥을 쳤다는 분석도 속속 나온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그럴듯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작년 미국에서 이른바 ‘대박 상품’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바로 ‘비만 치료제’ 얘기다.
NUMBER_ 24kg

새해를 맞아 ‘체중감량’을 목표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보다 3kg만 빼자는 다짐, 욕심을 부려 올해 10kg을 반드시 빼겠다는 장담 같은 것이 넘쳐난다. 쉽지 않다. 건강한 식단도, 규칙적인 운동도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통계를 보면 전 국민의 약 40퍼센트가 비만에 해당했다.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살을 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어 주사를 맞으면 24kg쯤 체중을 줄일 수 있는 그런 마법 같은 방법 말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되었다.
KEYPLAYER_ GLP-1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비만 치료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 위고비
    지난 10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트윗에 “단식, 그리고 위고비(Wegovy)”라고 답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은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위고비는 1주일에 1번씩 68주간 주사를 맞을 경우 평균 15퍼센트의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사를 맞기 위해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인슐린 주사처럼 혼자 쉽게 사용가능한 ‘펜 방식’이다. 물론, 그 아성을 넘보는 경쟁사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 마운자로
    미국의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사의 ‘마운자로(mounjaro)’는 1주일에 1번씩 72주간 주사로 맞을 경우 평균 22퍼센트의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 3상에서는 최대 24㎏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당초 당뇨병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비만 치료제로도 승인을 진행 중이다. 전망은 밝다. 이미 지난 10월  FDA로부터 패스트트랙(신속심사)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보고서는 마운자로가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이 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현재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은 ‘휴미라’로, 관절염이나 척추염, 크론병 등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휴미라의 미국 특허는 올해 만료된다.
기본적으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모두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 유사체를 주성분으로 한다. 원래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마운자로의 경우 GLP-1과 또 다른 호르몬인 GIP에도 이중 작용한다. 두 제품 모두 우리나라에 곧 들어올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도 GLP-1 유사체를 이용한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중 한미약품은 임상 3상에서 효과를 확인했다. LG화학은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LR19021’의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올해 임상 2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 경구용 유전성 비만 신약의 탄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RISK_ 마법의 유통기한

바로 마법이 언제 풀리느냐다. 최근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6개월에서 1년 후에 풀린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지는 기간은 복용 후 여섯 달 정도, 이후 효과는 감소한다. 그리고 1년 후에는 체중 감소가 거의 멈추는 단계에 진입한다. 이유는 우리 몸에 있다. 변화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자극이 된다. 따라서 우리 몸은 변화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과 유사한 물질이 지속적으로 주입된다면 자연스럽게 식욕을 자극하는 신경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식이다. 게다가 우리 몸은 적응한다. 내성 작용이다. 약을 100mg씩 썼다면 1년 후에는 200mg, 300mg을 써야 한다. 결국, 마법에는 유통기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돈 문제도 있다.
MONEY_ 128만 원

마법의 비만 치료제는 비싸다. 한 달 치 가격이 1000달러(약 128만 원) 이상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돈이 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마법이 발명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 앤 마켓(Research and Market)은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26년 46억 달러(약 6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이를 그저 투자 기회만으로 볼 수가 없다. ‘비만 치료제’라는 말에 그 까닭이 보인다. 비만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그것도 유전되거나 전염되기도 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전 세계 비만 인구는 약 6억5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다. 빈부 격차가 건강의 격차로 선명하게 이어진다.
CONFLICT 1_ 비만의 책임

물론, 비만은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질병의 책임을 간편하게 개인에게 돌리곤 한다.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무엇을 먹고 얼마나 운동할 것인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아동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작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유색 인종과 중남미 국가 출신 어린이들에서 소아 제2형 당뇨병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백인에 비해 저소득층 비율이 높아 집밥이 학교 급식에 비해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계층이라는 분석이다. 아동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는 국가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20년 1월, 학교 급식 기준을 바꾼 바 있다. 과일이나 채소 대신 육류와 냉동감자 같은 대용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손봤다. 또 햄버거, 피자, 초콜릿 쿠키 같은 메뉴도 추가할 수 있게 했다. 식습관은 한번 들이면 고치기 어렵고, 건강한 음식은 대개 비싸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성인 10명 중 4명이 비만이었다. 비만율은 흑인, 저소득층, 고졸미만 학력자가 다른 집단에 견줘 훨씬 높게 나타났으며, 흑인 여성의 비만율은 60퍼센트에 달했다.
CONFLICT 2_ 대물림과 전염

게다가 비만은 전염된다. 병리학적으로 전염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전염된다. 1948년부터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에서 계속돼 온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라는 역학조사는 1971년부터 연구 참여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함께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제나 자매가 비만이 되었을 경우 비만이 될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40퍼센트가 증가했다. 친구가 비만이 되었을 경우에는 57퍼센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가능성은 150퍼센트 넘게 증가한다. 물론 연구에 한계는 있지만, 개인이 속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비만이 될 확률이 달라진다는 시사점이 남는다. 서글프게도, 비만은 대물림되기까지 한다.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대물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소아비만 및 대사질환 코호트 성과집’에 따르면, 부모의 비만은 자녀의 비만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구체적으로 보면, 부모의 체질량지수, 수면 부족, 운동 횟수, 낮은 소득 수준 등이 학생들의 체질량지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도권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경우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과체중 위험이 높았다.
INSIGHT_ 양극화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도 드러낸다. 비만과 같은, 사회적 질병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저소득자의 비만율이 급증했다. 비장애 여성보다 정신적 장애를 가진 여성장애인의 경우 고도비만 가능성이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만은 그 자체로 위험하지만, 우리 몸을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다. 가난은 비만을 부른다. 비만은 같은 병에 걸려도 더 괴롭고 더 오래 앓게 만든다. 병을 앓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상에 놓인다. 어디부터 개인의 책임일까? 질병일까, 비만일까, 가난일까, 그도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환경일까? 과연 한 달에 100만 원이 넘게 드는 비만 치료제는 진짜, 마법처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을까.
FORESIGHT_ 출발선

불평등의 대물림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양질의 영유아 교육’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예를 들어 1972년부터 1992년까지 이루어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ABC/CARE 프로그램’(The Carolina Abecedarian Project and the Carolina Approach to Responsive Education)을 들 수 있다. 취약한 환경의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보육 및 교육에 있어 가정 방문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개입하고 그 결과를 20년 동안 추적했다. 학업 성취도는 높아졌고 대학을 졸업할 확률도 늘었다. 소득도 증가했다. 그리고 당연히,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이 될 확률도 크게 낮아졌다. 인지 능력과 함께 비인지 능력, 즉 자존감, 끈기, 성실성 등이 안정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불평등의 선 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평등한 출발선을 다시 그어주는 것은 실행 가능한 일이다. 비만과 같이 질병의 얼굴을 한 불평등의 결과들도 어쩌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는 생각보다 굉장히 사회적인 의제입니다. 작년, 보건복지부가 내놓았던 제3차 국민영양관리기본계획의 함의와 함께 우리의 사회적 식탁을 함께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포캐스트 〈장관님은 나트륨이 싫다고 하셨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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