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워크 무용론

1월 1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재택의 시대가 저문다. 생산성 논란의 진실은 무엇인가.

  • 기업은 사무실 복귀를 명하고 근무자는 재택을 요구한다.
  • ‘하이브리드 워크’와 ‘오피스 퍼스트’의 대립이다.
  • 생산성 이면의 가치에 주목할 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BACKGROUND_ 재택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많은 기업은 근무 방식을 재택 혼합형으로 전환했다. 사무실 공실률이 늘었고 원격 근무 관련 기술이 부상했다. 사무직 노동자에겐 재택의 시대였다.
DEFINITION_ 일의 모양

기업은 새로운 일의 형태를 정의해야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재택근무(WFH·Work From Home), 원격 근무(Remote work), 유연·탄력 근무(Flexible·Blended work), 하이브리드 워크(Hybrid work) 등의 단어 아래 다양한 모델이 시도됐다. 일련의 단어들은 통용된 정의도 없고 혼용도 심하다. 실무에 적용된 형태와 제도도 각기 다르다. 통상 업무 공간과 근무 시간의 자유도,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주체에 따라 근무 모델이 나뉜다. 어디서 일하느냐, 언제 일하느냐, 출퇴근 형태를 회사가 정하느냐 직원이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개념인 하이브리드 워크는 주로 재택과 사무실 출근의 혼합형을 말한다.
ANALYSIS_ 일장일단

보통 재택근무는 생산성이나 복지 차원에서 논의되지만 숨겨진 디테일이 많다. 어떤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 문화 자체가 바뀔 수도 있는 문제다.
  • 원격 근무 직장 전용 구직 플랫폼 위워크리모틀리(WWR)[2]는 원격 근무와 하이브리드 워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하이브리드 워크 모델에서는 누가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지, 누가 온프레미스(On-Premise)[3]여야 하는지는 회사가 결정한다. 두 그룹의 형평성 문제 및 재택 직원들의 FOMO[4]가 발생할 수 있다. 원격 근무에 대해서는 근무자 모두가 원격으로 일하는 극단적인 모델을 예시로 들었다. 중앙 집중 형태의 본사(HQ·Headquaters)가 없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 걸쳐 협업하는 ‘비실시간 소통(asynchrounous style of communication)’이 익숙한 형태다. 협업 시 서로 즉답이 필요 없고 정보를 충분히 얻은 다음 답해도 된다. 글에서 언급하진 않지만 이 경우 개인의 기여도 판단이 어렵고 의사 결정이 느릴 수 있다.
  • 그렇다면 유연 근무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고용주가 아닌 개별 직원이 근무 형태나 시간을 선택하고 요청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근무자가 직접 선택한 만큼 워라밸 설정과 번아웃 방지에 유리하다. 종합하면 하이브리드 워크는 회사의 결정으로 특정 근무자의 근무 장소가 자유로운 형태고 보통 실시간 소통을 기반으로 업무 시간이 동일한 형태를 칭한다고 볼 수 있다. 유연 근무나 원격 근무보다 연결성이 더 강조된다.

EFFECT_ 격변의 판교

국내 기업들이 재택 트렌드를 받아들인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2022년 7월 4일 전면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임시 조치로 진행했던 재택 근무를 확장한 것이다. 이 밖에도 주요 기업들은 거점 오피스를 활성화하거나 재택이더라도 필수 근무 시간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취했다.
  • 네이버 ; 네이버의 근무 모델은 ‘커넥티드 워크’다. 임직원들이 주 5일 내내 전면 재택근무(R타입·Remote-based Work)하거나 주 3일 이상 회사로 출근(O타입·Office-based work)하는 두 가지 근무 형태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전체 직원의 55퍼센트가 R타입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첨식 워케이션[5]도 도입했다.
  • 카카오 ; 코로나19와 함께 가장 먼저 재택근무를 실시했지만 2022년 7월에 가이드라인과 함께 공식화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집중 근무시간을 적용하고 부서원들과 상시 음성 연결 및 주 1회 대면 회의가 권장된다. 격주 주 4일 근무제인 이른바 ‘놀금 제도’도 도입했다.
  • SKT ; 재택근무제와 더불어 서울 신도림과 경기 일산·분당 등 3곳에 거점 오피스 ‘스피어(Sphere)’를 열었다. 출퇴근 교통 혼잡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SKT가 내세우는 제도는 어디서든 일한다는 뜻의 ‘워크 프롬 애니웨어(WFA)’다.
  • 당근마켓 ;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매주 목요일 주 1회 재택근무를 병행했고 2020년 3월부터 전체 재택 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필요시 주 1회 사무실 미팅이나 식사를 함께하는 형태다.
  • 3N ; 판교의 게임 삼대장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은 2022년 6월 전까지 재택 근무를 진행했다.
  • 우아한 형제들 ;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경우 근무지를 자율 선택할 수 있지만 코워크 타임(co-work time)이 있다. 평일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4시까지 모두 함께 일하는 필수 근무시간이다.

CONFLICT_ 오피스 퍼스트

갈등은 예견됐다. 대내외 환경의 불안정성이 커짐에 따라 생산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재택근무를 두고 노사 갈등이 커졌다. 기업들의 재택근무 기조도 갈렸다. 카카오는 올 3월부터 사무실 출근을 원칙으로 하는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격주 놀금도 폐지됐다. 카카오 계열사도 이를 따른다는 입장이다. SKT는 2월부터 재택근무 일수를 일주일에 하루로 줄였고 당근마켓도 올해부터 주 3회 사무실 출근으로 방침을 바꿨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도 재택근무 비율을 축소하고 있다. 반면 네이버와 라인, 야놀자나 여기어때 등 여가 플랫폼, 쿠팡 등은 재택근무 기조를 유지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직원들에 대한 신뢰와 자율성을 부여할 때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네이버 기업 문화”라고 밝혔다.
KEYPLAYER_ 카카오

논란의 중심엔 카카오가 있다. 카카오는 2022년 7월 전면 재택근무제 도입 당시 이를 ‘메타버스 근무제’라 칭하며 “디스코드에 실시간 접속해 있을 것”을 조건 삼았다. 이를 위해 본사가 나눠주는 골전도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로 일해야 하고 집중 근무 시간인 오후 1~5시 사이에 30분 이상 자리를 비울 때 휴가를 써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직원 감시 논란이 일었다. 카카오가 상시 음성 연결을 ‘권장’하게 된 배경이다. 오피스 퍼스트가 발표되자 카카오 직원들이 무더기로 노조에 가입하는 일도 벌어졌다. 카카오 노조는 이르면 이번 주 중 본사 직원 절반이 노조원이 되는 ‘과반 노조’를 달성할 것으로 예견된다. 기업 규모를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카카오의 방식은 네이버와 많이 비교되는데 재택근무의 본질인 ‘자율성’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오피스 퍼스트를 무리해 내놓은 배경에는 지난 2022년 10월 발생한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도 직원도 온프레미스에 두려는 생각이다.
RECIPE_ 생산성

기업이 오피스 퍼스트를 외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워크가 매우 보편화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슬라, 트위터, 애플, 구글, 메타, 골드만삭스, 디즈니, 펠로톤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사무실 복귀(Return to Office)를 명령하거나 유도하고 있다. MS가 2022년 1~2월 사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리더의 절반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원하고 있다. 《포브스》는 2023년을 “사무실 복귀의 해”라 말한다. ‘원격’을 명시한 공고는 올 1월,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13.8퍼센트로 떨어졌고 오프라인 사무실 점유율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기업은 하나같이 생산성을 문제로 들고 실적 악화를 근거로 제시한다. MS의 보고서에 따르면 85퍼센트의 리더가 하이브리드 워크로 직원들의 생산성에 의구심을 품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체감 업무 생산성은 정상 근무 대비 약 79퍼센트로 나타났다.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 아울랩스(Owl Labs)가 2021년도 재택근무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90퍼센트의 직원이 47퍼센트의 생산성 증가를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사무실 근무자의 25퍼센트는 사내 정치가 방해된다고 답한 반면 원격 근무자는 15퍼센트만 그렇다고 답했다. 인식의 괴리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STRATEGY_ 보스웨어

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가 가시화하기 전에도 관리자의 직원 감시 욕구는 높았다. 디지털닷컴(Digital.com)의 2021년 9월 조사에 따르면 원격 근무자가 있는 회사의 60퍼센트가 “Tattleware(고자질 소프트웨어)”, “Bossware(보스용 소프트웨어)”로 불리는 직원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웹 검색 및 앱 사용을 감시하거나 무작위 스크린 샷 캡처를 하는 식이다. 심지어 열 곳 중 아홉 곳이 이와 같은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 후 직원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같은 소프트웨어의 사용으로 직원의 생산성 증가를 경험했다는 회사가 81퍼센트에 달했다. 다만 이는 단순히 ‘두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MS의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이같은 현상을 관리자의 “생산성 편집증(Productivity Paranoia)”이라 말하며 관리자들이 이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보스웨어 등으로 관리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직원들의 실질적 생산성이 아닌 생산성에 대한 ‘믿음’에 가깝다.
RISK_ 형평성 그리고 성별 효과

재택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과 성별 효과다.
  • 형평성 ;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사무직 직원들에게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복귀할 것을 명했다. 그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재택이 불가한 바리스타 직원과의 형평성이다. IT 기업이나 대기업 사무직을 위주로 확장된 재택 근무는 쉽게 ‘그들만의 이야기’가 된다.
  • 성별 효과 ; 여성 노동자는 재택근무의 확장으로 꾸밈 노동이 줄고 남초 회사로부터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사 및 육아 노동은 공평하지 않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학술지의 〈재택근무제도 사용이 근로자의 시간 사요에 미치는 성별 효과 연구〉에 따르면 남성 재택근무자의 92퍼센트는 재택 이후에도 가사 노동 시간의 변화가 없었지만 여성은 37퍼센트가 가사 노동이 늘었다고 답했다.

INSIGHT_ 생산성 이면

생산성 논란에서 확실한 지표는 없다. 실적 악화의 주된 원인은 경기 침체이지 재택근무가 아니다. 재택근무로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것도 체감 지표이며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무작정 신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무실 복귀 물결은 단기적인 생산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동안 소통의 어려움이나 효율성 악화를 호소한 직원들에도 희소식이다. 다만 이를 재택근무의 실패로 치부하긴 어렵다. 조직 문화나 업무 방식, 협업 관련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황급히 롤백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산성 이면의 가치와 진실 목도해야 한다.
  • DE&I ; MS의 보고서는 “높은 생산성이 지친 노동력을 가리고 있다”고 말한다. 응답자의 54퍼센트가 과로, 39퍼센트가 탈진되었다고 느낀다. 기업이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지금, 생산성 이상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의미하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에 주목하는 이유다.
  • 소통과 신뢰 ; 협업툴 알로(ALLO)의 홍용남 대표는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의 리모트-하이브리드 워크 현황을 전한 바 있다. 그는 생산성 감소의 진짜 원인은 ‘상호 작용의 감소’라고 봤다. 소통 부재가 오해와 불신을 낳고, 효율성 제고를 위해 수집해야 할 근무자의 데이터가 ‘감시용’으로 비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업무 환경에서 발생하는 데이터가 감시의 대상이 아닌 기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FORESIGHT_ 대대적 재편

하이브리드 워크의 시대는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기업이 효율을 추구할수록 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하는 게 필수적이다.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의 인재를 골고루 포용하려면 하이브리드 워크 환경이 유리하다. 기존 인재를 유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사무실 복귀 요구에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이직이 발생하고 있다. MS는 이를 “대대적 재편(The Great Reshuffle)”이라고 명명한다. 구인 구직 플랫폼 링크드인(Linkedin)에 따르면 이 대대적 재편이 극에 달했을 때 링크드인의 이직률은 전년 대비 50퍼센트 증가했고 Z세대는 90퍼센트 증가했다. 이미 많은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경험했고 저마다의 이유로 이를 지지한다. 이직과 조용한 퇴직의 대안으로 하이브리드 워크는 다시금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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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임대 수익이 17퍼센트포인트 감소해 578조 원 가까운 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2]
오피스 공간 대여 기업인 위워크(wework)와는 관련 없다. 오히려 위워크와 정반대(..)의 솔루션이다. 원격 근무 직장 구직 플랫폼인 만큼 원격 근무에 다소 편향된 글이다. 원격과 하이브리드의 구분 정도만 참고하는 것이 좋다.
[3]
여기선 사무실 근무를 뜻한다. 원래 온프레미스란 기업의 데이터 및 시스템을 클라우드 형식으로 하는 게 아닌 자체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조직 문화나 근무 환경을 다룬 영문 글에서 등장하는 온프레미스는 출근 형태를 의미한다.
[4]
Fear of missing out. 정보를 놓치거나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5]
일과 휴가의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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