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생애 주기
1화

시대의 변화, 삶의 변화

기대 수명 증가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을 의미할까? 변화하는 시대 속, 청년기보다 복잡한 노년기가 찾아온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1. 삶이 길어지고 있다


90세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디서 살고 있을까? 누구랑 연락하며 살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만 100세 생일을 맞는 장수 노인에게 축하금이나 청려장(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을 지급하거나, 100세 노인을 모시고 사는 자녀들에게 효자·효부상을 수여하는 지방 자치 단체가 있다. 100세 장수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100세까지 사는 경우를 직접 볼 기회가 없어서 그 시기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상황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여성 기대 수명은 86.5세, 남성 기대 수명은 80.5세다.[1] 이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적으로 80대 초중반까지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나이(최빈사망연령)는 남성 85.6세, 여성 90세로[2] 이미 단순 계산된 기대 수명을 넘어섰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중 많은 사람이 90세 이상까지 살면서 아주 긴 생애 과정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애 과정이 길어진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라 이 시기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1902년에 태어나 1994년에 사망한 에릭슨은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인간발달학자 중 한 명이다. 에릭슨은 인간의 생애 과정을 여덟 단계로 구분한 발달 이론을 제시했는데, 이 이론에서 출생부터 20세까지는 다섯 단계로 자세히 구분한 반면, 20세부터 64세까지는 두 단계, 그리고 65세부터 시작되는 노년기는 하나의 단계로만 구분했다. 에릭슨이 이론을 주창한 1950년대에는 노년기를 하나의 단계로만 구분해도 충분했지만, 90세 이상까지의 삶이 예상되는 지금, 이 이론은 노년기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노년기를 전기(65~74세)와 후기(75세 이상) 두 단계로 나누거나, 세 단계로 세분화하여 연소 노인기(만 65~74세), 고령 노인기(만 75~84세), 초고령 노인기(만 85세 이상)로 구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령화 현상은 주로 인구학적 측면에서 논의된다. 인구학적 측면에서 2025년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고, 2030년 생산가능인구와 노인 인구의 비율인 노인부양비는 38.6퍼센트로 추정된다.[3] 그런데 막상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로 인해 개인과 가족의 생애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두 출생 코호트를 비교하여 생애 과정의 연장이 노년기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살펴보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940년에 출생해 2022년 현재 82세인 여성과 1970년에 출생해 현재 52세 여성인, 가상의 영자 씨와 미경 씨를 생각해 보자.[4] 영자 씨가 현재까지 생존했다면,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2퍼센트, 9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24.5퍼센트, 10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6.2퍼센트다. 1970년에 태어난 미경 씨의 기대 수명은 65.81세였지만, 52세인 현재 살아 있다면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83.3퍼센트,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45.1퍼센트, 9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20.4퍼센트, 10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1퍼센트고, 연령별 생존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5] 이렇게 두 사람 모두 매우 긴 생애 여정을 누리면서 일상에서 시대의 변화를 경험하지만, 각각의 노년기 경험은 서로 다르다. 세대와 생애 주기가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해 두 여성의 삶을 관찰하고, 개인 생애와 사회 변화를 상상해 보자.

 

2.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3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영자 씨와 미경 씨는 각각 산업화 세대(1940~1954년생)와 민주화 세대(1965~1974년생)를 대표한다. 영자 씨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제3공화국이 출범한 1963년부터 유신 체제가 붕괴한 1979년 사이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다. 산업화 세대를 연구한 김원동에 따르면, 이 세대는 어렸을 때는 농촌에서 자랐고, 청년이 된 이후에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지역으로 이주했을 개연성이 크다.[6] 평균 60명이 넘는 과밀 학급에서 공부했고, 10대 후반부터 생업 현장에서 일했으며,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에서 한편으로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불씨를 키운 세대다. 한편, 산업화 시대에 태어난 미경 씨는 후기 베이비 붐 세대로 교육 기회가 본격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교육받아 부모 세대보다 높은 교육적 성취를 이루었고, 급속한 경제 발전과 경제 위기, 그리고 민주화 과정을 모두 경험한 세대이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성취해 독점한 세대다.[7]

영자 씨는 1940년에 태어난 73만 명 중 한 명이고, 미경 씨는 1970년에 태어난 100만 명 중 한 명이다.[8] 영자 씨가 1940년에 태어난 평균적인 여성이라면,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졸업했을 가능성이 크고 결혼은 약 만 18세에 했을 것이다. 결혼코호트별로 가족 생애 주기를 비교한 진미정·변주수·권순범의 연구[9]를 적용하면, 영자 씨는 세 명의 자녀를 낳는데, 첫 자녀는 21세, 막내는 약 30세에 낳는다. 40대 후반에 첫 자녀를 결혼시키고 50대 중반에 모든 자녀를 독립시키며, 60세가 되기 전에 남편과 사별할 확률이 높다. 이에 비해 미경 씨가 1970년에 태어난 평균적인 여성이라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경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인 1990년에는 여성의 31.9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1995년에는 25~29세 여성의 47.8퍼센트가 경제 활동을 했다. 미경 씨는 만 26세에 결혼해 자녀 둘을 낳는데, 첫째는 28세, 막내는 31세에 낳고, 60세가 넘어 자녀를 결혼시키기 시작해 65세 전에 모든 자녀를 독립시키며 71세 즈음에 남편이 사망할 확률이 높다.

가족의 생애 주기를 결정하는 인구학적 요인들이 변화하면서 가족 생애 주기의 총 기간과 단계별 소요 시간도 달라진다. 다음 표에서 드러나듯, 초혼 연령이 늦어지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개인 생애 과정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비율, 즉 가족 생애 주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더 짧아지지만 함께 사는 햇수는 더 늘어난다. 가족의 구조적 형태가 바뀌는 확대기나 축소기는 짧아지고 겉보기에 변화 없는 안정기는 길어진다.[10]
 
〈결혼코호트별 생애 사건 시 부인 연령〉
 
생애 사건 단계 1958~1964년 결혼 1965~1974년 결혼 1975~1984년 결혼 1985~1994년 결혼
결혼 형성기 시작 18.36 21.73 23.22 25.03
첫 자녀 출생 확대기 시작 20.51 23.05 24.34 26.28
막내 출생 확대기 완료 29.38 28.65 27.88 29.84
첫 자녀 결혼 축소기 시작 46.80 50.30 54.05 57.80
막내 결혼 축소기 완료 55.66 55.90 57.59 61.35
남편 사망 해체기 시작 57.58 60.34 62.63 66.60
본인 사망   66.21 71.33 74.16 77.35
*출처: 진미정 외 2인, 〈한국 가족생애주기의 변화: 1987년 공세권 연구와의 비교〉, 《가족과 문화》 26(4), 2014, 1-24쪽. 단위: 세
[1]
통계청, 〈2020년 생명표 (전국 및 시도)〉, 2021.
[2]
우해봉 외 2인, 《한국의 사망력 변천과 사망 불평등: 진단과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3]
통계청, e-나라지표, 2021.
[4]
대법원이 발표한 시대별 출생신고 이름 중 1940년대 가장 많은 여성 이름 중 하나가 ‘영자’고, 1970년대 가장 많은 여성 이름 중 하나는 ‘미경’이다.
황재하, 〈시기별 선호이름…1940년대 영수·영자에서 2010년대 민준·서연〉, 연합뉴스, 2016.5.9.
[5]
통계청, 〈2020년 생명표 (전국 및 시도)〉, 2021.
[6]
김원동, 〈산업화세대의 특징에 대한 탐색〉, 《지역사회학》 11(2), 2010, 5-29쪽.
[7]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문학과지성사, 2019.
[8]
1940년대 출생아 수는 박경숙(2009)에서 인용했으며, 이 자료는 센서스 이전 5년 등록자료에서 집계된 출생아 수임.
[9]
진미정 외 2인, 〈한국 가족생애주기의 변화: 1987년 공세권 연구와의 비교〉, 《가족과 문화》 26(4), 2014, 1-24쪽.
[10]
진미정 외 2인, 〈한국 가족생애주기의 변화: 1987년 공세권 연구와의 비교〉, 《가족과 문화》 26(4), 2014,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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