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민주주의

1월 1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전 세계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예외일까?

  •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렸고 브라질, 페루의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초박빙의 대선을 지나왔다.
  •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랬다. 민주주의 위기,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일까?

RISK_ 흔들리는 민주주의

현지시간 2023년 1월 8일, 룰라 정부 취임 7일째 브라질 ‘3권 광장’에 40여 대 버스가 집결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대원칙,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이 모여 있는 광장에 3000여 명이 모였다. 브라질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대였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의회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집기를 깨는 등 난동을 부렸다. 대법원, 대통령궁에까지 난입했다. 이들은 약 네 시간 동안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흔들고 진압됐다. 미국과 유럽의 정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며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민주주의의 위기, 브라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CONFLICT_ 투표 방식

세계는 2년 전 비슷한 일을 목격한 바 있다. 2021년 1월 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에 난입하며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모두 극우 인사로 대선 당시 집권 중이었다. 보우소나루는 그간 트럼프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남미의 트럼프’라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1.6 사태가 벌어진 다음 날 보우소나루는 “미국 대선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조작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우편 투표보다 현장 투표할 것을 독려했는데, 보우소나루는 이 길을 따라 걸었다. 대선 전부터 브라질의 전자 투표가 바뀌지 않으면 미국보다 심각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전 대통령은 투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함으로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불복할 가능성을 일찍이 보여 왔다. 유사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KEYPLAYER_ 소셜미디어

모두 소셜 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6 사태 당일, 미국에선 “절대 승복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연설이 트위터를 통해 확산됐다. 브라질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셀마의 파티(festa da selma)’ 해시태그가 퍼졌다. 이는 브라질 퇴역군인들의 시위 구호였던 ‘정글(selva)’을 변형한 ‘셀마(selma)’에 ‘파티’를 붙인 것으로, 일종의 암호이자 초대장이었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이를 통해 폭력을 조장하는 부적절한 게시물로 분류되는 것을 피하며 세를 불렸다. 트럼프의 근거지인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사태 발생 후, 페이스북 계정에 ‘대선 사기 음모’ 영상을 공유했다가 삭제했다. 지금의 상황이 뼈아픈 이유는 이번 브라질 대선이 ‘민주주의의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BACKGROUND_ 룰라의 귀환

보우소나루는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고 군사정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정의·기억·진실위원회를 해체하는 등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민주주의 지수 2021’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의 민주주의 지수는 6.82점이었다. 그중 ‘정부기능’은 5.34점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브라질 대선은 일찍이 좌파와 우파, 룰라와 보우소나루의 대결로 좁혀졌다. 룰라가 여론조사에서 두자릿수 이상 앞서며 수월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 예상됐지만, ‘샤이 보우소나루’가 힘을 발휘하며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선 투표에서 룰라가 50.9퍼센트를 넘기며 당선됐다. 보우소나루는 49.1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되찾은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룰라 대통령 취임 7일만에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브라질의 위기는 중남미 민주주의의 위기기도 하다.
EFFECT_ 연쇄 작용

브라질의 상황으로 중남미 민주주의 위기를 논하는 이유는 룰라 대통령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룰라는 2003~2010년 연임하며 브라질을 이끌었던 인물로, 이번 대선에 승리하며 브라질 최초 3선 대통령이 됐다. 룰라가 집권했던 2000년대 초반은 중남미에 좌파 물결, 핑크 타이드가 일었던 시기다. 1차 핑크 타이드는 약 20년 이어졌으나 좌파 정권의 경제 정책 실패로 다시 우향우하기 시작했다.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겪는 중남미 국가에 복지를 주장하는 좌파가 들어서며 다시 핑크 타이드가 이어졌다. 브라질은 중남미 경제·인구 대국이다. 브라질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은 2차 핑크 타이드의 완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안한 완성이다.
REFERENCE_ 페루

중남미의 민주주의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2차 핑크 타이드 속에서 정권을 잡은 페루의 카스티유 대통령은 2022년 12월 탄핵됐다. 보수우파가 장악한 여소야대 의회는 앞서 세 차례 탄핵을 시도한 바 있다. ‘도덕적 결함(incapacidad moral)’이라는 탄핵 사유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은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최소 1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구금 중인 카스티유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쿠데타 독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망한 사람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카스티유 전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의 공통점이다.
ANALYSIS_ 정치 분열

바로, 가까스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2022년 6월 페루 대선에서 카스티유의 득표율은 50퍼센트를 조금 넘겼다. 상대 후보 후지모리와의 표 차이는 0.25퍼센트포인트, 약 4만 4000표였다. 후지모리도 대선 결과 불복의 노선을 밟았고, 카스티유는 국민 통합을 촉구한 바 있다. 전 세계의 대선이 깻잎 한 장 차이로 갈리고 있다.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와 보우소나루의 표 차이는 1.8퍼센트포인트였다. 미국 대선 역시 초박빙의 승부였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대 대선의 결과를 가른 것은 0.73퍼센트포인트였다.
INSIGHT_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민주주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연구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더이상 폭력적인 쿠데타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층에 의해 망가진다. 민주주의의 붕괴가 투표장에서 일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자들은 정치 지도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볼 것을 제시한다.
  • 선거 불복 등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한 적이 있는가?
  •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워 정치 무대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 기본적인 시민권 및 정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 상대 정당, 시민 단체,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를 모두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라고 설명한다.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중도화만이 대안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력한 중도화가 아닌 민주적으로 유익한 갈등이다.
FORESIGHT_ 선거구제
  • 조선일보 의뢰로 진행된 조사에서 우리 국민 열 명 중 네 명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밥 먹기도 불편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같은 조사에서 세 명 중 두 명이 ‘정치적 불안이 우리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정치개혁의 화두로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언급했다. 한 선거구 당 한 명의 대표자를 뽑는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손볼 것인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인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논의하고 있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까지 언급되고 있다.

  • 완벽한 대안은 없다. 확실한 것은 선거구제 개편이 제로섬 정치에서 벗어나자는 선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해 여야의 셈법은 복잡하고 지금으로서 기득권을 나눠 쥔 양당은 현상 유지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총선에 적용되는 선거구제 개편의 법정기한은 오는 4월 10일이다. 이전까지 괄목할 만한 논의도 성과도 없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2차 핑크 타이드가 궁금하다면 〈민생은 좌우를 떠났다〉를, 유럽에 등장한 우파 포퓰리즘의 새로운 얼굴을 알고싶다면 〈우파의 뉴 노멀〉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에 주목하고 싶다면 〈그곳에 피가 흐르고 있다〉 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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