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국가, 일본의 결심

1월 17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결국 방류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

  • 일본이 올봄이나 여름,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다. 현지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오염수 방류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 일본은 재난을 빠르게 딛고, 잊고, 감추고 일어서려 한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부흥’이기 때문이다.
  • 오염수 방류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우리에게도 방법은 있다. 법대로 하는 방법이다. 다만,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다.

ANALYSIS_ 아톰의 메시지
鉄腕アトム ⓒ手塚プロダクション公式チャンネル
〈우주 소년 아톰〉은 1951년에 태어났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불과 6년 만의 일이다. 애니메이션에는 수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특히 로봇과 인간의 관계성이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에 관해 지금까지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또 다른 함의도 담겨있다. 바로 ‘핵’에 관한 일본의 관점이다. 로봇 아톰은 핵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아톰의 형은 ‘코발트’, 여동생은 ‘우라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핵으로 패망하였으나 바로 그 기술로 ‘부흥’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일본의 운명 앞에 〈우주 소년 아톰〉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 실제로 일본은 망설이지 않았다. 1950년대 일본은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전 건립을 추진한다. 그리고 1960년대 도카이 발전소를 시작으로 일본에 원전이 잇따라 들어섰다. 물론 휘청였다. 1999년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의 핵연료가공공장에서 발생한 임계사고로 작업자 2명이 사망하고 인근 주민 600여 명이 피폭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에는 니가타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에서 화재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일본은 멈추지 않았다. 여론도 금방 잠잠해졌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21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BACKGROUND_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결국 방류한다. 시기는 올봄이나 여름이다.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국민이다. 정확히는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이다. 사카모토 마사노부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성명을 발 빠르게 냈다. 후쿠시마현 지역사회도 술렁이고 있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있는 후타바마치의 단체장 이자와 시로는 "무엇보다 주민의 이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묵묵부답이다. 오염수 방류는 계획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DEFINITION_ 오염수? 처리수?

일본 정부의 결정이 정말 위험한 것인지의 여부를 따지려면 이 ‘오염수’의 실체를 알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에 발생했지만, 2023년 1월 17일 오늘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핵분열 과정은 인간이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 당시 원자로에 남은 핵연료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도쿄전력은 지금도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원자로 3기에 매일 수백 톤의 냉각수를 쏟아붓고 있다. 차가운 물을 쏟아부어 원자로를 식히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양의 냉각수는 그대로 방사능에 오염된다. 물론, 일본 정부가 이 오염수를 그대로 바다에 흘려보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라는 장비를 이용해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가 될 때까지 정화하고, 이후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를 거친 오염수에는 삼중수소(트리튬)만 남고 여타 방사성 물질은 제거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방류하는 것은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treated water)’다.
RISK_ 삼중수소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삼중수소가 인체에 축적되면 정상적인 수소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후 베타선을 방사하면서 삼중수소가 헬륨으로 바뀐다. 이를 ‘핵종 전환’이라고 한다. DNA상에서 핵종 전환이 발생하면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생식기능이 저하되거나, 암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삼중수소만 남겨 바닷물로 충분히 희석한 ‘처리수’는 안전할까? 전문가의 답변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 관련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타고 인류가 흡수하게 될 삼중수소의 양이 대체 얼마만큼이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언어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를 방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처리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충분히 희석되어 그 위험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KEYPLAYER_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무리수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의심을 확신케 했던 것이 지난 2021년 내놓은 삼중수소의 유루캬라(ゆるキャラ)다
캐릭터로 "삼중수소 방사선 약해요"…댓글은 막아놔 ⓒSBS 뉴스
유루캬라는 일본에서 주로 지자체나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딘가 허술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캐릭터를 이야기한다. 친근감을 높이는 데에 효과적이라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마케팅 방법이다. 단어의 뜻을 직역하면 느긋한(ゆるい) 캐릭터(キャラクター)라는 의미다. 당연히 사람의 생명이 걸린 삼중수소 문제를 느긋하게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당 캐릭터가 사용된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일본 내에서도 강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결국 영상을 제작하여 공개했던 일본 부흥청(復興庁)은 해당 콘텐츠를 황급히 삭제했다. 그런데 이 유루캬라가 일본이 내밀었던 첫 번째 무리수는 아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깜짝 등장했던 슈퍼 마리오 아베 전 총리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재앙 상황에서도 끝까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강행하고자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흥 올림픽’을 통해 재난을 극복했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임기 중에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피해로부터의 ‘부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일본 자민당 유튜브 채널, 2019년 참의원 선거 캠페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9년 자민당 선거 캠페인에 등장해 재난 피해로부터의 ‘부흥’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저력을, 도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 모두에게 보여주자”라고 강조한다. 물론, 노회한 정치인의 고집도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었다.
INSIGHT_ 부흥하는 일본

재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냉각수를 쏟아붓지 않으면 후쿠시마의 원자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 재난을 과거형이라 말하고자 한다. ‘부흥 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일본이 재난을 이미 극복했다고 선언하고자 했고, 후쿠시마가 끌어안고 있는 오염된 냉각수도 ‘해양 방류’라는 방법으로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 소년 아톰〉에 힌트가 있다. 일본은 극복하는 국가다.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재난조차 소년 소녀의 꿈으로 승화하는, 그리하여 안온한 일상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켜내는 국가다. 즉, 일본의 정체성은 ‘부흥(復興)’이다. 다시 회복하여(復) 흥하는(興) 국가. 우리에게 익숙한 ‘위기 극복의 DNA’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어딘가 닮은 듯, 다른 정체성이다.
RECIPE_ 비싸고 느린 해결

그런데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부흥하는 방법이 정말 오염수 방류뿐일까? 전문가들은 대안이 있다고 말한다.
  • 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수십 년 더 보관하는 방법이 있다. 보통 석유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건설된다. 삼중수소는 반감기가 12년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탱크 안에서 독성이 감소하기를 기다려 바다에 방류하는 방법이다.
  • 인공호수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후쿠시마에 인공호수를 만들면 130만 톤에 달하는 오염수는 물론 향후 계속해서 증가할 오염수까지 담아 보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시간이 들고 돈이 든다. 빠른 부흥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작년 1월, 6명의 일본인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약 6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갑상샘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후쿠시마현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지역에서 세계 평균 대비 인구당 수십에서 100배나 많은 소아 갑상샘암이 발병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도쿄전력의 손을 들어줬다. 후쿠시마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후쿠시마가 문제없다고 홍보한다. 그래서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 하더라도 후쿠시마에 그것을 가둬두는 방식은 일본이 원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후쿠시마 포기하지 않는 부흥의 여정~풍성한 후쿠시마 맛집 투어의 매력~ⓒ일본 부흥청 유튜브 채널

STRATEGY_ 법대로 해야 할 일

도쿄전력은 가동이 중단된 후쿠시마 제1 원전을 둘러보는 ‘시찰투어’를 통해 ALPS로 정화한 오염수, 이른바 ‘처리수’의 안전성을 시연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현지 언론사 《도쿄신문》을 통해 이 시연이 거짓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대로 측정할 수도 없는 선량계를 가져다 대며 오염수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선전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위험한 ‘처리수’가 방출되면 7개월 후 제주 앞바다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방출 후 400일이면 우리나라 영해 전역이 영향을 받는다는 예측도 진작 보도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있다. 국제 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 청구 및 제소를 하는 방법이다. 한국도, 일본도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되어있다. 쉽게 얘기하면, 이웃 나라 바다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가 당사자다. 지난 2021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해당 조치를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이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FORESIGHT_ 용산의 전망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대일 외교 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도, 중국과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한일관계 개선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문제는 외교란 것이 절실한 쪽부터 접고 들어가야 하는, 얄궂은 게임이란 점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방안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일본 정부는 예정대로 올봄이나 여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금방 터질 수도 있고, 다음 세대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어쩌면 별다른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가능성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도 있다. 우리가 입게 될 피해다. 오염수 방류로 제주도의 수산업이 입게 될 피해액만 연간 약 44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 문제지만, 어민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라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우리 정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용산에서는 어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발전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전과 관련된 세계의 논의가 궁금하시다면 〈그린의 정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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