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향한 나비효과

1월 1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윤석열 정부의 교육 개혁이 시작됐다. 도구화가 아닌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 윤석열 정부의 교육 개혁이 첫 삽을 떴다.
  • 돌봄 확대를 통해 출발선을 보장하고, 규제 혁신으로 자율화를 꾀한다.
  •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 된 교육의 개혁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DEFINITION_ 교육 개혁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규정한 세 가지 개혁 분야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개혁”이었다. 그 중 교육 개혁은 지역 균형 발전과 저출생 문제 해결의 지름길로 꼽혔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교육 개혁의 시대는 단순히 교육 내부에 갇힌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혁신은 필요하다. 교육이 바뀌어야 거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BACKGROUND_ 문제의 시작, 문제의 끝

교육 혁신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점처럼 보이는 건 당연하다. 지금 교육계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가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07년생은 49만 6천여 명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2010년생은 그보다 줄어든 47만 명, 유치원에 입학하는 2019년생은 30만 2천 명이다. 인구 절벽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졌고, 학령인구가 감소한 지금의 교육계는 인구 절벽이 빚어낼 미래를 적나라하게 가시화하고 있다. 지금의 교육 개혁은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그보다 교육은, 한국 사회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한 테스트 베드 혹은 도구에 가깝다.
EFFECT_ 학령인구 감소

전북 내 초등학교 네 곳이 올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하게 됐다. 신입생이 없기 때문이다. 이외 초등학교 열 곳 역시 학생이 부족해 휴교 등의 사유로 졸업식을 치르지 못했다. 텅 빈 학교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현실이다.
  • 지역의 소멸 ; 학령인구가 줄면 지역에 학생이 가지 않는다. 대학 정원보다 학령인구가 더 적은 ‘데드크로스’가 본격화하며, 수도권 대학에 더 많은 학생이 모인다. 학생이 모인 곳에 각종 지원이 쏠리고, 학군과 지역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진다. 학군은 지역의 상권과도 멀지 않은 문제다. 학생 수의 감소는 지역 상권과 직결되고, 지역 상권은 부동산 가격과도, 미래의 지역 인프라와도 맞닿는다.
  • 악순환의 시작 ; 학령인구 감소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면,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는 경쟁력 있는 학교와 대학이 사라진다. 모든 공적, 사적 지원은 수도권에 쏠린다. 젊은 인구는 좋든 싫든, 배우기 위해 지역을 떠나야 한다. 수도권은 더욱 과밀해지고, 더 많은 지역이 사라진다.

STRATEGY_ 4대 개혁 분야

지금 윤석열 정부가 꺼내든 교육 개혁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지난 1월 16일, 윤석열 정부는 당정에서 본격적인 교육 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윤 정부가 내놓은 교육 개혁 분야는 크게 네 가지다.
  • 학생 맞춤 교육 개혁 ; 학생 개개인에 맞춘 교육을 위해 디지털 교과서 등의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한다.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해 교육 분야를 다양화한다.
  • 가정 맞춤 교육 개혁 ;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 유보통합추진단을 설립한다. 또한 돌봄을 세분화하고 확장하는 늘봄 학교를 도입한다. 올해 3월부터 늘봄 학교가 시범 도입될 예정이다.
  • 지역 맞춤 교육 개혁 ; 지역 대학의 권한을 교육부가 아닌 지자체로 이양해 지역 자율성을 제고한다. 지역과 대학, 기업의 상생을 통해 각 지역의 산업 환경에 맞는 교육 시설을 설립한다.
  • 산업·사회 맞춤 교육 개혁 ; 국가 차원에서 첨단 분야의 인재 양성을 본격 운영한다. 바이오 헬스, 우주 항공, 반도체 등의 인재를 기르기 위함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인재양성전략회의는 오는 2월 처음 열릴 예정이다.

RECIPE_ RISE

줄어드는 학령인구는 지역에게 더욱 가혹하다.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소멸 지역을 최소화하기 위한 교육 정책이 논의 중이다. 현재 운영되는 ‘RIS’는 지역의 대학이 중심이 돼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 반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인 ‘RISE’는 지자체가 중심이 돼 대학이 지역 발전을 위해 경쟁력을 갖춰 나가도록 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주체가 대학에서 지역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RISE는 올해 다섯 개 내외 지자체에서 시범 실시될 예정이다. RISE가 실시될 시범 지역은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으로 지정돼 규제 특례가 적용된다. 이 경우 대학의 정원과 재정 등의 규제가 모두 사라진다.
ANALYSIS_ 자율화와 가지치기

교육부는 지난 2022년 12월, 2024년도부터 대학들이 입학정원 내에서 학과별 정원을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교원 확보율, 학생 정원 등의 기존 조건은 사라지고, 학과 및 학부의 통폐합이 쉽게 가능해진다. 다가오는 2025년에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도 폐지된다. 국가에서 대학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교육부에서 개별 학교로 개혁의 책임이 이양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인 가지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대학 학과 개편은 4000건 넘게 이뤄졌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51곳의 영어학과가 통폐합될 동안 54곳의 AI학과가 신설됐다.
CONFLICT_ 핵심 인재는 어디로

그렇다면 무엇이 미래에 필요한 인재이며, 무엇이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할 분야인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그동안 자란 인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산업과 지역 소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는 학교에서 사라져도 될까?
  • 국방 기술 ; 카이스트의 이광형 총장은 지난 1월 11일 치러진 국방부, 외교부 업무 보고에서 “과학 최우수 인재들 상당수가 게임 회사나 외국으로 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현 정부가 안보, 국방 기술 개발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장치는 부족하다.
  • 의사 과학자 ; 의사 과학자는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 분야의 혁신을 주도한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등으로 인해 의사 과학자의 필요성은 높아지는 게 현실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의학 인재 대부분은 임상의를 선택한다. 바이오 인재를 늘리면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까? 안타깝게도 그 답이 능사는 아니다. 임상의와 달리, 학자의 커리어 패스는 예측 불가능하다. 연구를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연세대학교 이민구 교수는 연구 지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현실을 의사 과학자 창출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 기초 학문 ; 지난해 말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12∼2020년 국내 대학의 인문학 학과는 매년 19개씩 사라졌다. 비수도권은 더욱 심각하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 학문은 문제를 정의하고 발굴한다. 이렇게 발굴된 문제는 응용 학문, 나아가 구체적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토대와 뿌리가 된다. 기초 학문의 소멸은 장기적으로는 응용 학문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KEYPLAYER_ 리처드 밀러

혁신적인 공학 교육으로 주목받은 올린공과대학교(Olin College of Engineering)의 총장 리처드 밀러는 교육의 필요성을 “본질적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서 찾는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 혹은 산업체에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양성의 기능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규제의 자율화와 지역 인재의 양성을 교육 개혁이자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교육 개혁 없이는 지역 균형 발전을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의한 교육 개혁의 이유다. 이후의 개혁 방향이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인 도구에 멈춘다면 진정한 교육의 혁신은 어려울지 모른다.
INSIGHT_ 데우스 엑스 마키나

현재 교육 개혁의 설계도에서 그릴 수 있는 암울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지역 대학은 정부의 승인을 받은 자율화를 등에 업고 지금 당장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체계와 구조를 미처 갖추지 못한 분야는 더욱 황폐해진다. 기울어진 학문 분야는 미래의 문제를 발굴하고 대처해야 하는 교육의 본질적 책임을 잊는다. 교육의 문제는 나비효과로 돌아오기 쉽다. 이미 우리는 과거의 날갯짓으로 인한 태풍을 목도하고 있다.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은 의대에 진학하지만, 정작 필수 의료 분야에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는다. 공학 인재들은 실리콘밸리로 향하고, 기초 학문은 대학에게 있어 눈치 없는 불청객이 됐다. 교육 문제 자체에 대한 접근이 부재한 개혁, 한국을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1]가 된 개혁은 교육 자체가 가진 문제를 가속화할 수 있다.
FORESIGHT_ 모두를 위한 변화

커다란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사회 문제 해결의 시작을 ‘열린 포럼’으로 상정했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모두 함께 의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화가 방만의 다른 표현이 되지 않기 위해, 교육이라는 넓은 테두리 안에 엮인 다양한 주체를 공론장에 포함시킬 의무가 있다. 2022년 9월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는 학생과 학부모 위원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특정 직능이 전체 인원의 30퍼센트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해 의논 주체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다양성을 점차 확대하고, 그 외의 거버넌스를 다양화하는 방향을 떠올릴 수 있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만이 아니다. 대학원생, 학내 노동자, 직장인과 학교 밖 청소년까지 모두가 교육의 주체이자 객체다. 그래서 교육이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처럼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넓고 긴 시각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한국 고등교육, 인문사회과학의 현실과 이에 대한 타개책이 궁금하시다면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1]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