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지만 괜찮아

1월 3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아마존 창고 노동자의 파업은 노동의 위기를 말한다. 미래의 생산과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 ‘아마존(Amazon)’의 창고 노동자들이 영국에서 처음으로 파업을 벌였다.
  • 이번 파업은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가 마주한 현장과 노동의 위기를 대변한다.
  • 현장은 무엇을 해결해야 하며 노동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CONFLICT_ 아마존 창고 노동자 파업

영국 중부 코번트리의 아마존 창고에서 첫 파업이 일어났다. 노조의 파업 결의 등,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춘 공식적 쟁의다. 이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명확했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한 노조원은 물류 센터의 로봇들이 노동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아마존 노조는 인플레이션에 맞춘 시급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 작업 속도의 완화를 요구했다.
BACKGROUND_ 지금, 현장

이번 아마존 노조의 파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거시 경제의 영향도 컸지만, 물류업과 제조업 등, 이른바 ‘현장’이 마주한 위기를 가시화했다. 현장과 노동자 사이는 점차 멀어졌고 생산 인구는 줄었다.
  • 현장의 변화 ; 4차 산업혁명은 현장을 바꿨다. 지금의 노동자는 로봇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네트워킹 시스템과 협업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의 협업은 경쟁력의 제고지만, 노동자에게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과제다. 노동자는 두 개의 과제 사이에 놓인다. 급변한 현장의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응할 것, 그리고 수많은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 그러나 물류의 혁신에 앞장섰던 아마존의 노동자들은 안티-로봇을 외쳤다.
  • 현장의 위기 ; 인구 구조의 변화는 지금의 현장이 마주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산 연령 인구(15~64세)는 3700만 명 수준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 인구로 본격 진입하게 되는 2020년대부터 생산 연령 인구는 큰 폭으로 줄어든다. 2070년의 생산 연령 인구는 1700만 명으로 예상된다. 이뿐 아니다. 젊은 세대는 현장을 기피한다. 비즈니스 전문 미디어 ‘인더스트리 위크(Industry Week)’는 고등학생들에게 제조업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제조업 현장을 감옥과 지루한 곳,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이라고 답했다. 미래에는 로봇이 모든 인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믿음도 큰 이유였다.

RISK_ 완벽한 답, 로봇?

위기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에 맞서기 위한 현장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무엇이 현장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완전한 자동화와 로봇을 통한 노동력 대체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첨단 제조 기술이 확산할수록, 그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숙련된 노동자의 필요성은 커진다. 기계는 꾸준한 감독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학술지 《컴퓨터와 산업 공학》에 실린 한 논문은 모든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는 ‘지능형 제조 시스템(Intelligent Manufacturing Systems)’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노동력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위험 요소를 관리하고,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간 중심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다변화된 작업 환경에 대비하고, 이행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기계, 노동과 노동력을 둘러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환의 주체는 모든 현장의 노동자다.
REFERENCE_ 중대재해처벌법

기술에 대한 이해는 소수의 관리자에게만 필요하다는 편견, 모든 노동을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중심적 유토피아 모두 지금의 현장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편견과 낙관을 넘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단기적인 해결책이다. 
  • 중소 기업의 여력 ; 지난 1월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재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인력과 재정 여력이 부족한 중소 기업에게 더욱 가혹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중소형 기업이 법적 의무를 따르기 어렵다면 그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이 돼야 할까?
  • 인력과 여력을 넘어서 ; 노동자의 안전 보장은 사후적 처벌이 아닌 예방적 조치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 현장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일터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의무를 다하며 권리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이때의 역량이 소수의 관리자에게만 집중된다면, 결국 위협받는 건 수많은 노동자다. 물류의 자동화라는 혁신을 꾀했던 아마존의 물류 창고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MONEY_ 1800만 달러

현재의 노동자를 보호하고, 미래의 노동자를 돕는 방법으로 논의되는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다. 산업 프로세스 교육, 현장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교육 과정 등은 현장의 변화와 괴리가 일어나는 지금의 노동 구조, 인력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작업이다. 시리즈 A에서 1800만 달러를 모으며 성공적으로 첫 투자 유치를 마친 교육 플랫폼 ‘겜바(Gemba)’가 바로 이러한 산업 교육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플랫폼 겜바는 기업을 상대로 VR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내용은 ‘린 생산방식’, ‘인더스트리4.0’과 같은 제조 및 생산 현장에 필요한 지식이다. ‘겜바’라는 용어는 본래 자동차 회사 ‘토요타’의 생산 철학과 맞닿은 단어로, 일본어로 ‘현장’을 의미한다. ‘겜바 워크(Gemba Walk)’는 현장의 프로세스를 실제로 경험하고, 작업을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활동을 이른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는 안전상의 위험을 인지하고, 기계와 장비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ANALYSIS_ WHY, VR?

겜바가 VR이라는 교육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 공장에서 겜바 워크를 하거나 대규모의 노동자에게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VR은 지역적, 인력적 한계를 넘어서 상호작용을 활발히 만들고 양질의 몰입형 교육을 가능케 한다. 기업 대상의 VR 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다.
  • 지역적 한계 ; 현장의 형태는 빠르게 변했다. 실제로 겜바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700여 개의 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기업들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를 교육하거나, 모든 현장의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 인력적 한계 ; 대표적인 겜바의 고객인 자동차 기술 공급 업체 ‘앱티브(Aptiv)’는 겜바의 VR 교육을 통해 첫 번째 과정에서만 7800명의 노동자를 교육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사이에 존재했던 기술 격차는 해소된다.

INSIGHT_ 증강 기술

VR 교육은 노동자의 지식 습득을 돕는 증강 기술에 해당한다. 증강 기술은 때때로 노동력을 보강하는 인력이 되기도, 혹은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 모두를 위한 공장 ; AR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 ‘라이트가이드(LightGuide)’는 가공, 조립, 포장 등의 노동에 AR을 접목해 그간 제한돼 있었던 인력풀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술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나 노인층, 혹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새로운 일을 구할 수 없었던 이들은 AR 가이드를 통해 쉽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다.
  • 보조 신체 ; ‘웨어러블 수트(Wearable Suit)’라고도 불리는 외골격 수트는 노동자의 신체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적은 힘을 들이고도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거나 몸의 부담을 줄여주는 식이다. 이는 생산성뿐 아니라 직원 복지와도 직결된다.

FORESIGHT_ 증강 인력의 확대

기술 혁신을 통한 증강 인력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공생 관계에 기반을 둔다. 현장의 노동자는 웨어러블 기기와 외골격, VR 교육 등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창출할 수도 있다. 증강 인력이 기계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현장의 위기뿐 아니라 노동의 위기 전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노동력의 소멸, 노동 환경과 인간 사이의 괴리, 인구 구조의 변화 등을 넘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노동력의 증진 방안을 연구하는 기업 ‘이섭(yseop)’의 대표 에마뉘엘 워크너(Emmanuel Walckenaer)는 “증강은 [인간의] 교체가 아닌 보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VR이라는 가상 공간, 새로운 형태의 기업 교육, 신체의 일부가 된 웨어러블 기기 등의 증강 기술은 모든 노동의 일상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
KEYPLAYER_ 사이보그 소비자, 사이보그 노동자

미국의 과학기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사이보그’를 초월적 존재가 아닌 몸과 기술의 결합체로 정의한다. 현대인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사이보그인 셈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이라는 3차 산업혁명이 정보의 특성을 지역적인 것에서 글로벌한 것으로 바꿨듯, 증강 인력 기술의 출현은 확장된 생산력과 사이보그 노동자를 길러낸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소비자다. 생산력과 소비력은 어느 하나 없어서는 안 되는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요컨대, 로봇은 생산을 대체할 수 있어도 소비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미래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업 공급망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기업 ‘EVS’의 창업자 네이선 브라운(Nathan Brown)은 그 질문에 ‘인간적 경험(human experience)’이라는 답을 내놨다. 생산성이 증대될수록, 소비자는 더욱 귀중한 경험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생산과 소비에서 인간이 온전히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쩌면 미래는 증강된 사이보그 노동자가 인간적 경험을 소비하는 모습이 될지 모른다.


노동의 변화에 대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 개혁 방안이 궁금하시다면 〈노동의 NEXT LEVEL〉을, 독일이 모색하는 노동의 새로운 역할이 궁금하시다면 《노동4.0》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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