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지켜야 하는 것

1월 3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또 다른 흑인이 미국 경찰에 희생당했다. 이번엔 가해자 모두가 흑인이다.

  •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 희생자가 또 나왔다.
  • 이번엔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흑인이다.
  • 시위대는 공권력이 지켜야 할 대상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CONFLICT_ #JUSTICEFORTYRE
Demonstrators nationwide peacefully protest the police beating of Tyre Nichols ⓒNBC News
제2의 BLM(Black Lives Matter)[1] 시위가 미국 전역에 일어났다. 지난 1월 7일 오후 8시 24분께 차로 귀가 중이던 29세의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Tyre Nichols)를 경찰이 난폭 운전 혐의로 세웠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이 1월 28일 공개한 67분의 보디캠에는 얌전히 땅에 엎드린 그를 다섯 명의 경찰이 주먹과 발길질, 페퍼 스프레이, 테이저건 등으로 사망에 이를 때까지 무차별 폭행한 내용이 담겼다. 차가 멈춘 지 14분 만인 8시 38분에 폭행은 멈췄다. 경찰관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진 니컬스를 두고도 태연히 잡담을 나눴고 응급차는 사건 20분 뒤에나 도착했다. 영상에 담긴 니컬스는 마지막으로 “엄마, 엄마”라고 부르짖었고 1월 10일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시위대는 미 전역에서 니컬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유족들은 니컬스가 희귀병인 크론병[2]을 앓고 있었으며 폭행으로 인한 과다 출혈이 잠정 사인이라 주장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NUMBER_ 1123

미국의 경찰 폭력을 조사하는 ‘매핑 폴리스 바이올런스(Mapping Police Violence.org)’ 프로젝트에 의하면 2022년 미국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사람은 1123명으로 10년 내 최고치다. 매년 1000명의 경찰 폭력의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데 흑인은 백인보다 경찰에 의해 살해될 확률이 2.9배 높다. 특히 차량 검문은 각종 영화에서 클리셰로 숱하게 등장할 만큼 흑인에게 보편적 위협으로 여겨진다. 비영리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2017년 이래 미국에서 거의 600명이 경찰의 차량 검문 과정에서 숨졌다. 로드니 킹, 조지 플로이드, 니컬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는 미국 사회의 가장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ANALYSIS_ 인종과 공권력

BLM 운동을 세계적으로 알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지만 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경찰관의 인종이다. 플로이드 사건의 가해자는 동양인, 백인, 히스패닉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사망케 한 장본인 데릭 쇼빈(Derek Chauvin)은 백인이다. 이번 니컬스 사망 사건의 가해자 경찰관 다섯 명은 모두 흑인이다. 이 지점에서 인종 갈등과 엮여 등장했던 미국 공권력의 문제가 독립적으로 떠오른다. 이 사건은 인종 간 갈등보다 인종에 따른 공권력 집행 불균형, 그리고 경찰 시스템과 전술 문제가 핵심이다. 반면 이를 ‘반(反)흑인 정서의 전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BLM 운동을 주도하는 BLMGNF(블랙 라이브스 매터 글로벌 네트워크 파운데이션)의 이사는 니컬스 사망 사건 이후 낸 성명에서 “반흑인 체제에 동화되는 것은 백인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가장 위험한 무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STRATEGY_ SCORPION

가해자 다섯은 ‘스콜피온’이라는 이름의 경찰 특수 부대 소속이다. 우리말로 ‘우리 이웃의 평화 회복을 위한 거리 범죄 소탕 작전(SCORPION·Street Crimes Operation to Restore Peace in our Neighborhoods)’이다. 2021년 10월 창립되어 경찰관 30~50여 명이 배속돼 자동차 절도라든지 갱단과 관련한 강력 범죄 대응 치안 임무를 수행해 왔다. 멤피스는 사건 발생 초기엔 스콜피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근거는 성과였다. 짐 스트릭랜드(Jim Strickland) 멤피스 시장은 1년 전 시정 연설에서 2021년 10월~2022년 1월까지 스콜피온이 566명을 체포했으며 범죄 수익 현금 10만 달러 이상, 차량 270대, 무기 253개를 압수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566건의 체포 건 중 390건은 중범죄였다. 다만 이 부대에는 두 가지 비판이 제기돼 왔다. 경찰관들이 경찰 마크가 없는 차량을 타고 다니며 과잉 행동을 한다는 것과 범죄율이 높은 일부 ‘핫스팟’만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보디캠이 공개된 뒤 하루 만에 셰를린 데이비스(Cerelyn Davis) 멤피스 경찰 서장은 부대를 해체한다고 밝혔다.
KEYPLAYER_ 셰를린 데이비스
Chief Cerelyn Davis' remarks concerning Tyre Nichols ⓒMemphis Police Department
데이비스는 멤피스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경찰 서장이다. 스콜피온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앞서 BLMGNF가 지적한 ‘반흑인 체제에 대한 동화’ 비판에는 서장의 배경도 작용한다. 데이비스는 멤피스의 자랑이었던 스콜피온의 문제점을 검토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그는 예상과 달리 경찰 개혁 옹호론자로 알려진다. 미국에서의 경찰 개혁은 인종에 따른 공권력 행사 및 사법 행정의 불균형을 막자는 게 주요 논의다. 그는 이와 관련한 흑인 법 집행 기관인 ‘노블(NOBLE)’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20년 상원에서 열린 경찰 개혁에 관한 법사위원회에서 그는 유색 인종에 대한 공권력의 차별적 관행을 질타하며 경찰의 면책권(Qualified-immunity)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니컬스의 유족들 역시 데이비스 서장에 우호적이다. 사건 이후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내부 조사, 가해자 행정 처분, 조직 해산 등을 신속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어떻게 스콜피온을 구상하게 된 걸까?
RECIPE_ 범죄도시

그의 최초 구상은 합리적이었다. 멤피스는 2021년에 300건 이상의 살인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살인율이다. 멤피스에 비해 13배 더 큰 뉴욕시는 같은 기간 살인이 500건 미만이었다. 스트릭랜드 시장은 2022년 1월의 시정 연설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강력 범죄 특히 가중 폭행과 살인이 크게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CNN의 최고 법 집행 및 정보 분석가인 존 밀러(John Miller)는 인구의 65퍼센트가량이 흑인인 멤피스의 유색 인종 지역에서 경찰관들이 치안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데이비스가 취임할 당시 500명의 경찰력이 부족한 상태이기도 했다. 이는 멤피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2020년의 살인율은 2019년보다 28퍼센트 증가했으며 이는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6배, 일본보다는 무려 20배 높은 수치다. 미국의 역사는 자경단에서 시작했기에 원래부터 공권력이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면책권 등이 과도하게 설정된 이유에는 높은 강력 범죄율도 한몫한다.
REFERENCE_ 킬러 로봇

강력 범죄율의 반작용으로 충격적인 논의도 나온다. 지난 2022년 11월 29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는 인명 살상이 가능한 ‘킬러 로봇’의 배치를 허용했다가 시민 단체의 격렬한 발발 속에 일주일 만에 번복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SFPD)은 긴급 상황 시 폭발물이 장착된 로봇 등을 현장 배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위험 대상을 제압하거나 무력화할 때, 요새화된 구조물을 뚫을 때 효과적이라는 근거에서였다. 다만 경찰력의 군사화라는 비판을 비껴가지 못했다. SFPD의 요구는 과도해 보이지만 이미 미국 전역에서 이러한 ‘킬러 로봇’은 일부 사용되고 있다. 2016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경찰이 C-4 폭발물로 무장한 로봇으로 저격수 범죄자를 살해한 일도 있었다. 그 저격수는 경찰관 다섯 명을 살해하고 여러 명을 다치게 했다. 미국 정치권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MONEY_ 370억 달러

정치권의 조치는 경찰 예산 삭감, 경찰 권한 축소, 다양성 확보의 세 방면으로 이뤄졌다.
  • 예산 삭감 ; 조지 플로이드 사태 당시 각 주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막기 위한 140개 법률을 통과시키고 경찰 예산을 삭감했다. 
  • 권한 축소 ; 이에 더해 민주당을 중심으로 ‘조지 플로이드 정의 치안법(George Floyd Justice in Policing Act of 2020)’이 발의됐으나 공화당원이 다수인 상원에서 계류 중이다. 이 법은 경찰의 면책권 폐지 및 긴급 체포 영장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 다양성 확보 ; 유색인 출신 경찰 채용을 늘리는 방향도 제시됐다. 
플로이드 사건 초기에만 해도 이 같은 조치는 미국 사회 전반에서 지지를 받았으나 2020년 이후 증가하는 강력 범죄율과 공화당의 공격에 조지 플로이드 정의 치안법은 명분을 잃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결국 2022년 7월 범죄 해결을 위해 370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고 10만 명의 경찰관을 추가 고용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번 사태의 가해자가 흑인이라는 점 역시 다양성 확보에 제동을 걸었다. 게다가 멤피스는 인구의 65퍼센트, 경찰력의 58퍼센트가 흑인이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니컬스 사망 사건을 보도하며 시민 단체 ‘컬러오브체인지(Color of Change)’의 라샤드 로빈슨 대표의 말을 제목에 인용했다. “다양성만으로는 경찰을 바꿀 수 없다.” 공권력에 숨은 편향의 속성을 조명해야 한다는 날 선 비판이었다.
RISK_ 낙인

미국에서 유색 인종의 인권과 범죄율은 일견 상충하는 개념처럼 보인다. 실제 가난한 지역이나 흑인 커뮤니티에서 범죄가 많이 보고되기 때문에 데이비스 서장의 조치가 합리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다만 여기에는 흑인 범죄율의 과대 대표와 스테레오타이핑의 문제가 숨어있다. 글로벌 여론 조사 기관인 유고브(YouGov)에 따르면 미국인의 60퍼센트는 경찰 시스템이 인종 차별적이라 느낀다. 시카고 로스쿨의 연구자 벤 그룬왈드 등에 따르면 흑인 용의자의 범죄는 경찰 페이스북에 실제 범죄 비율보다 더 많이 공유됐다. 이 경향은 일반 여론에서 정치 성향과 결부됐다. 지역 경찰서의 페이스북 게시물 중 용의자가 흑인인 사건의 공유 비율은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높았다. 이러한 낙인 효과는 경찰력을 흑인 커뮤니티에 집중케 하고 더 많은 범죄를 잡아내게 한다. 실제 흑인 남성은 미국 전체 인구의 6.5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 교도소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나 공권력이 정말로 불균형한지를 살피려면 닭과 달걀의 관계 같은 범죄율과 낙인 효과의 과거를 추적해야 한다.
BACKGROUND_ 13th
13TH | FULL FEATURE ⓒNetflix
에바 두버네이(Ava Duvernay) 감독의 영화 〈13th〉는 미국 경찰력의 인종 차별적 속성의 기원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에미상 3관왕에 올랐다. 제목은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의미한다. 남북전쟁이 끝나던 1865년 노예 제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헌법 조항이지만 범죄자는 예외로 둔다는 조항이 있어 논란이 됐다. 당시 해방된 흑인 노예는 400만 명에 달했는데 수정헌법 제13조는 이 예외 조항을 통해 노예 대신 범죄자를 양산하게 됐는 논리다. 감독은 그 과정에서 흑인에 범죄자 이미지를 씌우는 1915년도 영화 〈국가의 탄생〉에 주목한다. KKK 부활의 매개가 된 영화다. 사전 형량 조정 제도를 의미하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으로 재소자를 양산하고 민영화된 민간 교도소는 재소자를 임대해 수익을 내는 이러한 구조를 영화는 ‘교도소 산업’으로 그려낸다. 미국 공권력의 불균형에는 노예 제도의 그림자가 있다. 
INSIGHT_ 공권력의 의미

정치가 다루는 수많은 갈등에 100퍼센트 일방적인 것은 없다. 니컬스의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강력 범죄율은 여전히 높으며 공권력 자체의 문제도 실재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정부의 딜레마를 짚으며 이 문제가 경찰력 축소의 문제가 아닌 개혁의 문제라 일갈한다. 경찰에 대한 교육, 그리고 대중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안 정책을 연구하는 미국 시민 단체 경찰행정연구포럼(PERF)이 지난 11월 발간한 보고서는 미국 내 1만 8000개가 넘는 경찰서에서 제공하는 훈련이 너무 구식이고 짧다고 지적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경찰 훈련에 수개월 내지 수년을 할애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경찰 기본 훈련 시간은 평균 20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기 사용과 방어 등 전술 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소통과 위기관리 같은 연성 기술에 취약하다는 점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플로이드 추모에 불참하며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공권력이 수호할 대상은 법과 질서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과 질서가 수호해야 할 가치를 놓치면 공권력은 낙인과 폭력의 도구로 대중의 신뢰를 잃을 뿐이다.
FORESIGHT_ 일탈과 구조
타이어 니컬슨에 대해 발언하는 공화당의 짐 조던 ⓒNBC News
유가족 측 변호를 맡은 벤 크럼프(Ben Crump) 변호사는 조지 플로이드 정의 치안법의 빠른 통과를 촉구한다. 시위대 역시 광범위한 경찰 개혁을 요구한다. 중간 선거 이후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우세하게 점했지만 사안이 충격적인 만큼 초당적 움직임도 보인다. 공화당 소속인 짐 조던(Jim Jordan) 하원 법사위원장은 NBC 방송에 출연해 “니컬스의 죽음은 확실한 공권력 남용의 사례”라 말하며 하원의 역할을 고민해보겠다 했지만 그 어떤 법이나 훈련이 그 ‘악’을 멈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과잉 진압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개인의 일탈’이라는 논지를 폈던 공화당이지만 니컬스 사건은 폭력의 전이나 인종 차별과 같은 공권력 그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지난한 논쟁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정 인종의 낙인 효과에 대해서는 〈탈식민주의 운동가 단하야 호발릐그 - 우리는 지금도 전장으로 끌려가고 있다〉를, 조지 플로이드 사건 당시 경찰 개혁 논쟁이 궁금하다면 〈2020년 6월 10일 뉴스〉를, 최근 미국 정치의 흐름이 궁금하다면 〈충분치 못한 보수주의자〉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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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 라이브스 매러는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에 반발해 일어난 사회 운동이자 구호다. 2020년 5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으로 전 세계에 크게 알려졌지만 이 문구 자체는 2012년 트레이본 마틴이라는 흑인 청소년이 히스패닉계 성인 남성 조지 짐머만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 당시 만들어졌다.
[2]
크론병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으로 대표적인 불치병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복통과 설사 등을 동반하고 전신 무력감이나 발열, 혈변, 항문 통증 등의 증상이 있다. 가수 윤종신 등 유명인들이 이 병을 앓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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