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스타트업

2월 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빅테크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타트업 정신을 강요한다. 그러나 장부에만 갇힌 혁신은 스타트업과 멀다.

  • 빅테크 기업들이 스타트업의 스크래피 정신을 그리워한다.
  • 성장과 혁신이 어려워진 지금, 구성원의 불만도 심화한다.
  • 실리콘밸리의 실패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말한다.

REFERENCE_ 그리운 과거

빅테크 기업들이 좇고 싶은 조직의 모습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과거다. 지난 여름, ‘메타’의 인사부장 로리 골러(Lori Goler)는 직원들에게 “강도를 높여 일하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구글과 알파벳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직원들에게 도전적이었던 구글의 과거를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그에 따르면 구글은 한때 “작고, 형편없었다.” 피차이는 돈이 일의 전부가 아니라며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EFINITION_ 스크래피 문화

빅테크의 수장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과거처럼 ‘스크래피(scrappy)’하게 만들고 싶다. 스크래피는 ‘허접하다’는 뜻으로, 작은 기업에서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요컨대, 현재 빅테크 리더들은 현재의 직원들이 처음 이 기업을 세웠을 때의 구성원처럼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기를 바란다. 기업을 내 손 하나로 키울 수 있다는 책임감, 내지는 성취감을 가지라는 의미에 가깝다.
NUMBER_ 5만 7000명

빅테크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해고였다. 올해에만 빅테크 기업에서 5만 7000명이 해고당했다. 얼마 전 구글은 사상 처음으로 직원의 6퍼센트에 해당하는 인원을 내보내며 대량해고를 감행했다. 리오프닝이 가시화하던 2022년부터 빅테크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공격적으로 확대한 직원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빅테크의 해고 열풍은 재정 안정성 확보만을 위한 방법뿐 아니라 다시 스크래피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인력 다이어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조직의 몸집을 줄여 빠르고 가볍게 이슈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순다르 피차이는 해고를 알리는 메모에서 “엄격한 검토에 따라 회사의 최우선 순위에 부합하는 직원만을 남겼다”고 말했다. 
EFFECT_ 해고

구글은 대량해고 이후 곧바로 직원들의 반발을 마주했다. 직원들은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해고 이유와 진행 방식에 대한 투명한 설명을 요구했고, 성과와 무관하게 이뤄진 해고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알파벳 노조의 파룰 코울(Parul Koul) 회장은 이번 해고를 “지난 분기에만 170억 달러를 벌어들인 회사가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행동”이라며 비판했다. 대량해고 사태는 해고당한 직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해고와 불투명한 소통은 직원들의 불안감을 증폭했고, 이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구글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다음과 같이 해고 사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열심히 일하는 게 내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훌륭했던 내 동료들은 사라졌다.” 무엇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유지할 방법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기업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괴리감은 증폭할 수밖에 없다.
RISK_ 가속의 한계

플랫폼 기업들은 초기의 사업 모델을 벗어나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로 인해 조직도 불필요하게 비대해졌다. 매출과 손익은 즉각적인 주가로 드러나고, 주가는 직원의 스톡옵션과 맞닿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 성과를 통해 주가를 조절하는 것은 직원을 유지하고 시장에서 살아 남을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빠른 속도로 결과를 만들어야 했기에 많은 빅테크 기업은 혁신을 포기했다. 대표적으로 자취를 감춘 건 이른바 ‘문샷’이었다. 빅테크들은 불가능하거나 수익과 멀어 보이는 신사업보다는 재빠른 결과물을 좇았다. 아마존은 원격 의료 서비스인 ‘아마존 케어’를 종료했고, 직접적인 수익이 나지 않는 자선 프로그램인 ‘아마존 스마일’을 오는 2월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주력 사업 분야도 흔들렸다. 구글은 AI 분야의 일부 직원을 해고했고, 아마존은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Alexa)’의 개발을 축소하고 있다. 온라인 공론장을 꿈꿨던 트위터가 일론 머스크에게 자신의 플랫폼을 넘긴 것, 페이스북이 틱톡을 따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BACKGROUND_ 과거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의 시작은 또렷한 의제 아래 있었다. 1995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명 아래 구글을 만들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인터넷을 이용한다면 전 세계 누구나 원하는 책을 쉽게 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마존을 열었다. 초기의 구글과 아마존에는 명확하고 뾰족한 미션이 있었고, 그 작은 과녁에 공감하는 이들을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었다. 조직에 묶인 이들은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그 이후의 사업을 그렸고, 그 과정에서 유무형의 보상을 얻었다. ‘애자일(agile)’하다고 표현하는 유연하고 빠른 조직 문화는 그들이 하나의 미션과 목적을 공유했기에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KEYPLAYER_ 직원 개인

그러나 지금의 테크 기업은 과거와는 다르다. 성장이 단기적인 수익 창출과 동의어가 된 상황에서 빅테크의 구성원은 주도적으로 기업의 미래를 생각하거나 설계할 수 없다. 직원에 불과한 나 자신이 바꾸기에 회사는 너무 무겁고, 내 손으로 키우기에 회사는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시도 앞에 무력한 개인이 가득한 기업은 직원 개개인의 긍정적 동력을 활용할 수 없다. 메타와 구글, 아마존의 리더가 말하는 스크래피 문화로의 회귀가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 이유다. 초기의 혁신을 주도했던 이들은 도전적이었던 과거를 회상하지만, 이미 고착된 성장의 문법 위에서 혁신을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INSIGHT_ 실리콘밸리의 역설

가시적인 성장을 위해 플랫폼 테크 기업들이 택한 것은 독점을 통한 성장이었다. 소셜미디어는 그간 수집한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통해 공격적인 타깃팅 광고를 펼쳤고, 구글은 서버와 판매소를 통해 디지털 광고를 독점했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역설에 직면했다. 성장이 혁신이고, 혁신이 성장이었던 초기와 달리 지금의 성장은 반복 혹은 팽창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게다가 필터 버블과 데이터 주권 등의 상존한 장애물은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지금의 모델이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의 성장이 고객의 수와 더 큰 사무실에 집착하는 동안 스크래피한 회사와 ‘스타트업다운’ 직원은 사라졌다. 독점 모델을 기반에 둔 사업 확장과 아마존화(Amazonization)의 문법이 대내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다. 국내 IT 업계도 사업 분야를 축소하는 행보를 보인다. 네이버는 네이버 영화 사이트를 폐지하고, 카카오는 상품 정기 구독 플랫폼 서비스를 종료했다. 토스 역시 채팅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FORESIGHT_ 새로운 혁신의 문법

스크래피의 시대, 테크 기업의 성장은 사회가 소유한 가치의 총량을 늘리고 연결하는 것에 집중했다. 구글은 정보를 특권의 자리에서 대중의 것으로 옮겼고, 소셜미디어는 변두리의 목소리를 퍼트릴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열 스타트업들은 독점을 통한 장부 속의 성장이 아닌 새로운 혁신의 문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점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전략이 흔들리는 지금, 탈중앙화와 같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주목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타트업 ‘스프루스(Spruce)’는 정보를 선별하는 플랫폼이 공공의 네트워크가 된 미래를 꿈꾼다.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며 혁신을 추구하는 스크래피의 정신은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아마존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의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승리가 아니면 죽음뿐〉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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