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의미

2월 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서울시가 집회 없는 광장을 꿈꾼다. 어불성설이다.

  • 서울시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에 불가 통보를 내렸다. 추모대회도 추모 공간 설치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서울시의 바람대로 광화문광장은 쉼터로서의 공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서울시가 그리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BACKGROUND_ 사용 불가 통보

10·29 이태원 참사[1]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서 세종대로로 향하는 추모 행진이 소란스러워졌다. 광화문광장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유가족을 경찰이 막아 섰고, 추모 분향소는 서울광장에 자리 잡았다. 서울시는 6일 오후 1시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력을 동원할 계획을 밝혔다. 이렇게 되기까지 두 번의 사용 불가 통보가 있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열겠다고 신청한 유가족에게 사용 불가 통보를 했다. 추모공간 설치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도 엇갈렸다. 유가족 측은 광화문광장 내 세종로공원에 추모공간을 설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서울시는 불가하다는 답을 내렸다. 한쪽은 광장을 원하고, 한쪽은 광장이 아니길 원한다. 엇갈린 해석은 광장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KEYPLAYER_ 서울시

서울시가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불허한 이유는 ‘일정 중복’이었다. 방송사의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충분히 조율 가능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명목상의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시는 추모공간 설치 장소로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제안하고 있다. ‘열린 광장’ 운영 방침과 맞지 않다는 이유다. 광장을 내어줄 수 없는 서울시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STRATEGY_ 광장 아닌 공원

2022년 8월, 광화문광장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기존보다 두 배 넓어진 광화문광장은 4분의 1이 녹지로 채워졌다. 총 5024그루의 새로운 수목이 심어졌다. 212미터 길이의 ‘역사 물길’과 한글분수, 명량분수 등이 생겼다. 광화문광장 설계를 총괄한 공공조경가는 “이전까지 광화문광장이 주로 집회에 이용됐다면 이젠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재개장의 목적은 명확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이 ‘공원’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랐다.
CONFLICT_ 집회의 공간

광장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는 재개장과 함께 광화문광장에서의 대규모 시위와 집회를 막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광화문광장 자문단이 교통·법률·소음·경찰·행사 등 5개 기준으로 광장 사용 여부를 심사한다. 하지만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 서울시는 ‘사용 불가 통보’를 했다지만, 집회 주체는 ‘불허’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문단의 심의에 따라 광장 사용이 결정되는 ‘허가제’로 활용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광화문광장 재개장 후 처음으로 열린 집회는 서울시의 집회·시위 금지 조처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집회가 제한된 공간은 이뿐 아니다. 집회는 권력을 향한 목소리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 간 뒤 국방부와 전쟁기념관 앞은 새로운 광장이 됐다. 하지만 경찰은 현행법상 100m 이내는 집회가 금지되는 대통령 관저에 용산 대통령 집무실이 포함된다며 인근에서의 집회를 금지한 바 있다. 
RISK_ 집시법 개정안

집회 금지 장소는 더 늘어날지 모른다.
  • 2022년 여야는 모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회 금지 구역에 여당은 대통령 집무실을 야당은 전직 대통령 사저를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022년 11월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여야는 해당 내용은 모두 반영해 ‘종합안’을 마련했다. 해당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 2023년 1월, 이에 제동을 거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 관저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경찰의 집회 금지 조처는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민 생활권 보장을 위해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 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했다. 
  • 집회 금지, 500명 제한 등의 조처로 집회는 세종대로에 집중되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다시 문을 연 2022년 8월 이후 2개월 동안 세종대로에서 열린 집회만 해도 180건이었다. 이번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가 도로로 밀려난 이유도 마찬가지다.

DEFINITION_ 광장
  • 집회를 원하는 시민이 도로로 밀려나는 것은 맞는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광화문광장 사용 불가를 통보한 서울시를 향해 “광화문 광장은 국민의 것”이라고 밝혔다. 아고라, 포럼, 스퀘어 등으로 명명되는 광장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우리나라 광장의 역사는 197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의도 광장이 그 시작이었다. 서울 도심 속 12만평 규모의 광장은 유사시 비행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됐다.
  •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가 바뀌었다. 건축학자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광화문 거리 응원을 기점으로 광장이 대중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대한건축학회는 광장을 ‘건물 전면에 사람들이 모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넓은 외부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넓은 공간 마련이 어려운 도시에서 의도적으로 비워진 공간이다. 그곳은 시민 행사, 정치적 행사 등을 통해 시민사회적 의식으로 채워진다. 광장은 설계부터 대중을 위한 공간이다.

ANALYSIS_ 추모 공간

모두가 볼 수 있는 광장에 추모 시설이 위치한다는 것은 사회적 기억으로 인정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참사 추모 시설은 사람들의 눈이 닿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대구지하철 참사 관련 추모시설은 세 번의 장소 변경 끝에 팔공산에 마련됐다. 현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운영되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은 현장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매헌시민의숲에 지어졌고, 성수대교 북단에 위치한 성수대교 참사 위령비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광화문광장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길 원하는 이유기도 하다.
REFERENCE_ 일상의 추념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의 저자이자 건축가 김명식은 “건축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징표”라고 말한다. 김명식 건축가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일상의 추념’에 주목한다. 매헌시민의숲, 그 안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음에도 김명식 건축가가 이 조형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건축 과정 때문이다. 그 과정에 유가족이 깊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유가족, 건축가 등 이해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유가족이 위로를 받았다는 자체로 추념의 의의를 지닌다. 다시 돌아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추모 공간으로 광장을 고수하는 것은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INSIGHT_ 광장의 의미

얼마 전까지 대중은 광장을 떠나 있었다. 권력자가 아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다.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가 닫히자, 새로운 집회 방식이 등장했다. 2020년 7월, 메타버스 앱 ‘히든 오더’에서 첫 메타버스 시위가 열렸다. 타투 합법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한 참가자는 이 시위를 두고 “손이 뜨거워지는 시위”라고 말했다. 시위 참여자가 늘어 배터리 사용량이 많아지자 핸드폰이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광장을 잃은 시기, 광장의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광장은 도시에서 ‘공유한다는 감각’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단순한 쉼터를 넘어서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FORESIGHT_ 광장은 어디에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공원으로 만드는 동안, 새로운 광장을 열었다. 2021년 비공개 시범운영을 거쳐 2023년 1월, 공공 메타버스 플랫폼 ‘메타버스 서울’을 선보였다.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행정 서류를 발급하고 자동차세, 재산세, 취득세 등 세금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하루 평균 950명이 방문했다. 방문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광장을 지나 서울시청사 6층으로 가면 나오는 가상 시장실이었다. 오세훈 시장 아바타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시정에 관한 민원이나 의견 접수를 할 수 있다. 메타버스 서울의 목적은 새로운 소통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서울은 2022년 타임지가 선정한 메타버스 공공 분야 ‘2022 최고의 발명’이었다. 현실 속 광장에선 권력자를 향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가상현실 속에선 언제든 권력자의 인사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1]
특정 지역의 이름을 참사와 연결 지어 호명하는 것은 해당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시키고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0·29 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한편,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20대가 주로 찾는 서울 도심이라는 점에서 해당 재난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라는 명칭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대표 이종철)의 보도자료를 참고해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서울의 랜드마크 실험이 궁금하다면 〈서울의 꿈〉을, 추모의 시간에 되짚어 봐야 할 것을 깊이 알고 싶다면 〈필요한 질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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