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의 종말

2월 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애플페이는 지갑의 의미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 애플페이가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았다.
  • 삼성페이와 네이버·카카오페이 등 기존 간편 결제 시장의 타격이 예상된다.
  • 간편 결제의 등장으로 화폐의 개념은 다양해졌다.

NUMBER_ 22퍼센트
2015년 3월, 무수한 국민을 고뇌에 빠뜨리던 공인 인증서의 의무 사용제가 폐지됐다. 이후 삼성페이의 등장과 함께 국내 간편 결제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2021년 말 기준 시장 규모 221조 원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민간 결제 1000조 원의 22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이다. 결제는 쉬워졌고, 장지갑의 시대는 끝났으며, 간편 결제 시장은 카드 지갑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애플페이의 국내 도입은 결제의 개념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DEFINITION_ 애플페이
애플의 비접촉식 간편 결제 시스템이다. 2014년 첫 출시 이후 세계 75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지난 2월 3일 금융위원회가 애플페이 국내 도입을 허용한다고 밝히며 한국 상륙이 공식화됐다. 도입 시기는 미정이지만 이르면 다가오는 3월 초로 예상된다.
ANALYSIS_ 인증과 단말기

애플페이 도입은 왜 지금껏 지연됐을까? 애플페이를 쓰려면 특정 인증을 받아야 하고, 전용 단말기도 설치해야 하며, 추가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인증 ; 애플페이는 EMV(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 국제 표준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각 카드 브랜드별로 인증받기 때문에 일반 결제 방식보다 비싸다. 따라서 단말기 가격과 수수료도 높아진다.
  • 단말기 ; 국내에선 결제 시 대부분 카드를 단말기에 긁거나 꽂는다.[1] 반면 애플페이는 NFC[2] 기반이다. 카드를 단말기 근처에 갖다 대면 결제된다. 애플페이가 가능하려면 매장에 NFC용 단말기가 있어야 한다. 2022년 상반기 기준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 수는 약 300만 개다. 이 중 NFC 단말기를 갖춘 곳은 6~7만 개에 불과하다. NFC 단말기를 한 대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20만 원이다. 전국 단위로 수천 억원이 필요할 수 있다.

MONEY_ 수수료

또 다른 문제는 수수료다. 애플은 제휴 카드사 및 은행에 추가 수수료를 요구한다. 국내 수수료율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재 미국에선 0.15퍼센트로 책정돼 있다. 카드사 입장에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애플에게 나누는 셈이다.[3] 이 부담을 고객에게 돌릴 수도 없다. 금융위는 지난 2월 3일 발표에서 “신용카드사는 관련 법령 준수와 함께 애플페이와 관련한 수수료 등 비용을 고객 또는 가맹점에 부담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KEYPLAYER_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애플과 독점 계약을 맺고 국내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했으며 지난해 수 차례 출시를 예고했다. 수수료 메리트가 없는 애플페이 시장에 현대카드는 왜 뛰어들었을까

  • 영앤프리 ; 최근 몇 년 간 현대카드는 이태원 바이닐앤플라스틱, 슈퍼콘서트 등 2030의 취향을 공략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카드사’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 왔다. 애플페이 도입은 국내 IT업계의 해묵은 이슈였고 이를 추진한 현대카드가 얻은 것은 혁신의 이미지였다.

  • 원카드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성인 1명당 카드 보유 개수는 2.5장이다. 아무리 좋은 혜택도 간편함을 능가하진 못한다. 사람들은 핵심적인 카드 두어 장만 들고 다닌다. 카드사 입장에서 카드를 많이 발급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장의 카드로 자리 잡는 것이며 현대카드는 애플페이 선점을 통해 이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4]


CONFLICT1_ 삼성페이

위기를 느낀 삼성은 지난해부터 삼성페이 전격 홍보에 나섰다. 2022년 10월엔 삼성패스를 삼성페이에 통합했고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 출시 이후 처음으로 TV와 유튜브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페이는 많은 소비자들을 갤럭시폰에 묶어 두었다. 애플페이의 국내 상륙을 계기로 삼성은 삼성페이의 경쟁력뿐 아니라 갤럭시라는 디바이스 자체의 매력을 고민하게 됐다.


CONFLICT2_ 네이버,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같은 국내 간편 결제 서비스 또한 타격을 입는다. 

  • 아이폰 ; 애플페이는 아이폰을 선택할 이유가 되지만 갤럭시를 버릴 만한 이유를 제시하진 못한다. 반면 아이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은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오프라인 간편 결제의 셀링 포인트였다. 애플페이의 등장으로 이는 무효해진다.
  • 허들 ; 삼성과 애플은 휴대폰 회사다. 삼성페이와 애플페이 모두 디바이스 자체의 생체 인식 기능으로 쉽고 빠르게 결제한다. 반면 네이버·카카오페이는 QR코드를 찍고 잔액을 충전하는 등 앱으로 연동되는 과정이 물리적, 심리적으로 피로하다. 삼성·애플페이보다 허들이 높고 퍼널이 많다.

RISK_ 독점
  • 간편 결제 시장은 수수료를 먹는 독과점의 형태로 성장해 왔다. 2019년 기준 애플 페이 수수료로 얻은 매출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6월 애플페이의 간편 결제 시장의 독과점에 경고를 보냈다. 이어 지난해 5월 “애플이 애플페이에 쓰이는기술에 경쟁사들의 접근 권한을 차단”했다며 시장 지위 남용을 비판했다.

  • 지난 2021년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도입하며 화제를 모았으나 구글, 애플 등은 외부 결제 링크 차단, 마켓 내 앱 퇴출 경고, 제3자 결제 시 낮은 수수료율 적용 등으로 국내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애플페이 독점 금지법가 사회적 화두가 되어도 이 또한 무용지물이 될 경우 타격은 국내 카드사에 돌아간다.


INSIGHT_ 간편 소비, 화폐 다양성
  • 간편 소비 ; 간편 결제의 등장으로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페이 시스템은 결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은 뒤 소비자가 버튼을 클릭하기만을 기다린다. 간편 결제 시장에서 소비를 눈앞에 둔 사람에겐 허들도 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 화폐 다양성 ; 간편 결제의 등장으로 화폐는 다양해졌다. 사용하는 페이 시스템에 따라 재화는 각종 머니와 포인트, 캐시로 존재한다. 네이버포인트, 당근머니, 애플페이 각각의 생태계 안에서 소비할 수 있는 품목은 정해져 있으며 이를 잘 배분하는 것이 소비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각각의 결제 과정은 단순해졌으나 어떤 시스템을 통해 무엇을 구매할지 고르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복잡해졌다.


REFERENCE_ 중국

애플페이 한국 상륙은 한국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바꿀까? 모바일 결제 대국인 동시에 애플페이 사용률이 저조한 중국을 볼 때 그 확률은 낮다. 지난 2016년 2월, 세계 간편 결제 1위를 달리는 중국에 애플페이가 출시되며 이목을 끌었으나 줄곧 약세를 보였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라는 막강한 로컬 사업자가 있었고, QR코드 결제 문화에 익숙했으며, 비보(Vivo), 아너(HONOR), 오포(OPPO) 등 내수형 스마트폰 브랜드가 기존 시장을 꽉 잡고 있던 탓이다. 삼성페이가 보편화된 한국 또한 애플페이 단순 도입이 갤럭시 유저 입장에서 기기 변경 요인이 될 가능성은 적다.


FORESIGHT_ 구글페이

페이의 관점에서도 애플페이의 도입은 오히려 삼성페이에게도 득이 된다. 삼성페이는 애플페이가 쓰는 NFC 방식으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간편 결제 시장 전반이 성장하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가맹점을 늘릴 수도 있다. 국내 간편 결제 시장의 성장 지표가 구글페이 도입의 발판이 되어 구글페이 또한 국내에 상륙한다면, 심리스한 결제 경험은 국경 너머로 확장할 것이다.


애플의 최근 이슈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수리할 결심〉과 〈슈퍼 앱의 조건〉을, 핀테크 시장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궁금하다면 〈핀테크 기업 전략〉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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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각 MST, IC칩 방식이다. MST(Magnetic Secure Transmission)란 마그네틱 보안 전송으로, 카드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시켜 결제하는 방식이다. IC칩(Integrated Circuit Chip) 방식은 카드 내부에 반도체 기반의 집적 회로를 내장하는 방식이다.
[2]
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 통신을 뜻한다.
[3]
국내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5~1.5퍼센트로 평균 0.8퍼센트선이다. 예컨대 손님이 1만 원을 결제하면 가맹점은 카드사에게 수수료 80원을 납부한다. 이 중 건당 50원을 카드사가 VAN사에게 전달하면, 카드사에 남는 돈은 30원이다. 여기 애플페이가 추가로 0.15퍼센트 수수료율을 요구할 시 15원을 줘야 한다. 수익의 절반을 애플에게 납부하는 셈이다.
[4]
이번 금융위와의 논의에서 배타적 계약권은 포기했으나 논의를 이어온 만큼 초기 시장 선점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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