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야심

2월 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란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 우리에겐 갈등을 해결할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는 분열의 징후가 뚜렷하다.
  • 진앙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다. 내년 총선 공천권이 걸린 당대표 자리를 둘러싸고 ‘친윤’과 ‘비윤’이 대립한다.
  • 보수 진영 재편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여당 내부에선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라는 성토가 나온다.

NEWS_ 여당발 소음

요즘 국민의힘이 시끄럽다. 정확히 4주 후에 있을 3.8 전당대회에서 선출하게 될 당대표 자리를 둘러싸고 매일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언제나 그래왔듯, 내 삶과 분리된 권력 다툼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라며 무심할 일이 아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2028년까지 5년간 우리 정치의 질이 결정될 수도 있다. 정치가 한심하면 내 삶이 피곤해진다. 정치가 성실하면 내 삶에 기회가 늘어난다.
BACKGROUND_ 공천권

내년 4월 총선이 치러진다. 22대 국회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다. 이번에 뽑힐 국민의힘 당대표는 이 선거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공천, 즉 어떤 후보를 어떤 지역구에 출마시킬지 결정하는 방법과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다. 그리고 공관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당대표다. 즉, 당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통령실이 이번 당대표 선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을, 어쩌면 단 한 번의 기회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당’을 만들 기회 말이다.
CAUSE_ 용산의 개입

윤 대통령은 이 기회를 향해 “빠르게 직진”하고 있다. 21세기 행정부의 수장이, 유례 없이 당권 경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숨길 생각도 없다. 당장 진영을 가리지 않고 우려와 비난이 나온다. 그러나 이 직진은 멈출 수 없다. 0선에 입당 560일 차인 윤 대통령에게 ‘윤석열의 당’은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정권 초기다.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고, 때문에 여당 의원들은 진심이든 가식이든 대통령을 감싸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표심 앞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지지율이 견조하게 버텨주지 못한다면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국민의힘으로부터 날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는 지금 ‘자기 세력’이 절실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내 사람’들이 공천을 받고, 당선되어 당내 주류로 부상해야 한다. 즉, 총선 공천권을 손에 넣어야 한다.
EFFECT_ 전포자 속출

용산 대통령실이 참전하자 본격적인 당권경쟁이 막을 올리기도 전부터 판이 흔들렸다. 당대표에 도전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었던 인물들이 줄줄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전포자(전당대회 출마 포기자)’가 속출했다. 권성동, 나경원, 유승민 등 묵직한 정치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 권성동 의원은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으며 대선 출마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선 승리 이후에는 원내대표에 선출되며 당내 입지도 탄탄히 다졌다. 그러나 채용 청탁 논란,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 등이 발목을 잡았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체리 따봉’ 메시지가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되면서 결국 원내대표 사퇴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대통령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고, 불출마 결정에도 이와 같은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 나경원 전 의원은 당 지지층 대선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렸던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당내 ‘친윤’그룹의 비판에 밀렸다. 나 전 의원은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 문턱을 넘었고, 보수정당이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꾸는 동안 4선에 성공했다. 당내에서는 늘 주류였다. 당 대변인,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류답게 행동했다. 대통령실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한 공개적인 반박이 나오고 ‘친윤’ 그룹과 설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윤 대통령에게는 우호적인 메시지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악전고투 속에 결국 실수가 나왔고, 당권 도전은 좌절되었다.
  • 대선후보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유승민 전 의원에게 당심은 약점, 민심은 강점이었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당내 기반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아 온 것이다. 대통령과 당에 쓴소리를 망설이지 않으면서 ‘개혁 보수’의 이미지를 굳혔지만, 윤 대통령 지지층으로부터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온 탓이다. 민심을 기반으로 유 전 의원은 당권 도전 의사를 숨기지 않고 밝혀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당원 100퍼센트’ 발언이 나온다. 그리고 속전속결로 경선 룰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당원 투표 70퍼센트, 국민 여론조사 30퍼센트였다. 이것이 당원 투표 100퍼센트로 바뀌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과정까지 지켜본 뒤 유 전 의원도 불출마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투톱은 김기현, 안철수 의원이다. 윤심(尹心)은 김기현 의원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복심’이라 불리는 장제원 의원을 앞세워 김 의원을 ‘낙점’했다. 김 의원은 장 의원과 이른바 ‘김장연대’를 구축하며 이를 전 국민 앞에 선언했다. 안철수 의원은 ‘전포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안 의원 본인은 또 다른 철수 가능성을 일축하고 나섰다. 그러나 의구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 그룹의 압박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EVIDENCE_ 대통령실의 침묵

이를 ‘심증’ 차원의 짐작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김기현 후보의 후원회장인 신평 변호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탈당해 신당 창당을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한 것이다. 여러 함의가 읽힐 수 있다. 특정 후보에 대통령의 마음이 기울어 있다는 의미, 그 특정 후보가 당대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당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 그래서 국민의힘은 정권을 창출한 정당에서 정권을 잃어버린 당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때로는 한마디 말보다 침묵의 데시벨이 더 큰 경우도 있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의 발언에 대통령실은 침묵했다. 다만 논란이 거세지자 신 변호사는 김 후보에게 큰 폐를 끼쳤다며 후원회장에서 물러났다.
REFERENCE_ 옥새 들고 나르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럴지도 모른다. 2016년 3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당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향했던 일이 있다. ‘옥새 파동’이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에 반발한 김 전 대표가 공관위의 공천추천장 일부에 당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한 것이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첨예한 갈등이 공천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결과는 총선 참패였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만 할 역사다.
INSIGHT_ 승리의 조건

이렇게까지 하면 성공할까? 장담할 수 없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 온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다. 여소야대라는 장벽이다. 115석을 가진 작은 여당, 국민의힘은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제대로 된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무게 추는 기울어져 있는 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여야 갈등을 부추길 악재만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아무리 당을 장악해 봤자,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나아질 것이 없다. 당권 주자들을 차례로 무릎 꿇리는 일련의 과정은 매력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유승민은 물론이고 권성동, 나경원, 안철수라는 굵직한 인물들은 이제 적이 되었다. 대통령의 당을 만든다고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총선 승리가 없다면 대통령의 당은 의미가 없다.
FORESIGHT_ 보수 재편

이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전당대회가 ‘분당대회’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비윤’ 대표주자를 자처하고 나선 정치 신인 천하람 후보가 급부상하고 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국민의힘 지지층 내부의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세게 밀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 넘어지기 마련이다. 패자에게 명분과 여지조차 주지 않는 싸움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밖에 없는 정치판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말 보수 진영에서 재편이 일어난다면 합종연횡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힘없는 정부와 어지러운 정치판이 국민에게 득이 될 리도 만무하다. 지금 우리에겐 갈등을 만드는 정치는 필요 없다.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란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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