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란 무엇인가

2월 14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방통위가 개점휴업 상태다. 종편 때문이다. 방송과 뉴스의 미래가 불안하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논란에 휩싸였다. 시작은 방통위가 쥐고 있는 종편의 생살여탈권이다.
  • 정치는 언론을 탐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치가 언론을 장악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 지금의 방통위로는 방송의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뉴스의 미래도 요원하다.

NEWS_ 개점휴업 방통위

언론과 정치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견제하는 관계는, 그저 상상 속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비관론에는 근거가 있다. 지금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것이다. 방통위가 7개월째 제대로 일을 못 하고 있다. 각종 감찰, 조사, 수사 등의 압박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20년 TV조선 재승인 과정에 방통위 직원들이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낮추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간부급 과장과 국장이 구속되었다. 규제 기관으로서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안팎에서 나온다.
BACKGROUND_ 권력의 독

사달이 난 것은 방통위가 가진 ‘방송사 생살여탈권’ 때문이다. 지상파는 물론이고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등은 3년에서 5년 주기로 방통위로부터 재허가·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방송사의 종류에 따라 기준은 조금씩 상이하지만, 방송의 공익성과 공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물론, 기준점수에 미달한다고 바로 방송국 문을 닫도록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난 2017년에는 지상파 3사(KBS, MBC, SBS)가 모두 불합격 점수를 받았다. 당시 방통위는 ‘방송 공정성 제고’, ‘제작종사자 자유와 독립 강화’ 등을 제시하며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했다. TV조선도 비슷한 경우다. 2020년 심사 당시 심사위원회는 TV조선에도 ‘조건부 재승인’ 결정을 내렸다. 총점은 합격선을 넘겼지만 과락이었다.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항목에서 기준선인 50퍼센트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210점 만점에 104.15점, 0.85점이 모자랐다.
HISTORY_ 종편의 모태신앙

TV조선의 구성원들은 당시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조건부 재승인 결정에 대해 “언론의 공정성을 정권이 재단하고 언론사에 극단적 제재를 가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구성원들의 격앙된 반응은 예정된 것이었다. TV조선은 처음부터 ‘보수 언론’이라는 모태신앙을 지닌 채 탄생했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은 이른바 ‘보수지’로 분류되는 신문사에 방송 겸업을 허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개국 첫날 TV조선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그때 등장한 자막이 바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다. 조선일보를 애독해온 독자 입장에서도 TV조선에 생뚱맞은 방향성을 기대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종편 4사(TV조선, 채널A, JTBC, MBN) 중 JTBC를 제외한 나머지 3사는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성을 고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확정했다. 그리고 개국 9년 차였던 2020년, 진보 정권과의 갈등이 ‘조건부 재승인’을 계기로 가시화했다. 해당 조치에 정말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은 준비할 때부터 이미 시작되는 법이다. 상대의 아주 작은 움직임도 도발로 간주하는 순간 발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ISSUE 1_ 방송은 공정해야 할까?

개국 초기부터 이미 단단하게 자리 잡은 정치적 성향을 종편이 버릴 수는 없다. 뉴스를 제공하는 종편도, 뉴스를 소비하는 시청자도 원하는 지점을 찾아 고착화된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즉,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종편의 ‘관점’은 유지될 것이다. 혹은, 강화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TV조선이 과락을 기록했던 재승인 심사항목,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방송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를 제공한다면 공정성을 실현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온다. 왜 방송은 공정해야 할까? 방송국도 하나의 기업이라고 한다면, 이윤 추구를 위해 특정 정치 성향을 판매할 수 있는 것 아닐까?
DEFINITION_ 방송

답은 방송이라는 말 자체에 있다. 널리(放·방) 보내는(送·송) 것이 방송이다. 원래는 전파에 태워 보냈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다음에는 영상을 송출했다. 전파는 사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모두의 것이다. 공공재에 해당하는 전파의 특정 주파수를, 이윤 창출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사용자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것이 공영 방송이든, 민영 방송이든 공익에 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심의와 규제가 가장 까다롭다. 안테나만 있으면 누구든 보고 들을 수 있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합편성채널은 어떨까?
EXPLAIN_ 종편의 영향력

종편은 유료 방송 가입자로 시청자가 한정된다. 대신 개국 초기 의무 전송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료 방송 가입률은 92.7퍼센트에 달한다. 이미 2006년에 90퍼센트를 넘어섰다. 채널 충성도 확보가 관건인 개국 초기, 종편은 지상파 방송국 못지 않은 채널 접근성을 보장받았다. 결과는 어떨까? 종편 사업자와 그 모기업인 언론사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따져보면 상황이  명확해진다. 방통위의 ‘2021년도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에 따르면 1위는 22.56퍼센트를 기록한 KBS였으며, 그 뒤를 이은 것이 TV조선이었다. 10.68퍼센트다. 이는 종편 채널의 시청률과 그 모기업인 조선일보의 환산 구독률을 합친 수치다. MBC(9.87퍼센트), SBS(7.74퍼센트)를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KBS가 두 개의 채널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공할만한 수치라 할 수 있다. 종편 4사를 합치면 25퍼센트가 넘는다. 이제 다시 질문할 차례다. 전체 가구의 90퍼센트 이상이 가입한 유료 방송에 무조건 채널을 배정받는 특혜를 누렸던 종합편성채널을,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운 종편을 시장 논리에 그대로 맡겨도 될까?
ISSUE 2_ 방통위는 자격이 있나?

다음 질문은 방통위가 방송의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사의 권한, 그리고 ‘생살여탈권’을 가지는 것이 맞는지로 옮겨간다. 법적으로는 맞다. 방통위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에 관한 규제와 이용자 보호를 위해 설치”되었다. 문제는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 기관이라는 것, 그리고 독립 기관을 표방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위원회의 구성부터가 다분히 정치적이다.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의 추천으로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구성되는데, 결론적으로 대통령과 여당 몫이 4명, 야당 몫이 2명으로 결정되는 구조다. 즉, 정부 여당의 입맛에 맞도록 위원회가 구성되기 쉽다는 얘기다. 지금 방통위는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이번 정부에서 보면 반대 진영의 방통위다. 작년 6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향해 대통령과 철학이 다르면 법적 임기가 보장돼 있더라도 정치 도의상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후안무치하고 자리 욕심만 내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 일갈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 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곧바로 감사원은 방통위에 대한 정기 감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제의 TV조선 재승인 개입 의혹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INSIGHT_ 동상이몽

어느 정권이든 언론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언론을 장악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정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느냐, 옮긴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가 갈릴 뿐이다. 그래서 방통위는 언제나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늘,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방통위가 지켜야 할 방송의 ‘공익성’은 그 존재 자체가 잊혔다. 우리는 이미 OTT의 시대를 살고 있다. 쉽게 말해, MBC의 새 주말드라마보다 넷플릭스의 신작에 더 관심을 보이는 시대다. 우리는 뉴스가 무료인 시대도 살고 있다. 뉴스를 접할 때 ‘브랜드’를 따지는 경우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언론이다. 그러나 60퍼센트가량의 뉴스 소비자는 “인터넷 포털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방통위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 이용자의 복지 및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시대도 놓치고 가치도 놓친 방통위가 법에 규정된 의무를 다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FORESIGHT_ 공익성과 공정성 사이

방통위는 지금 전방위적으로 포위되어있다. 진행 중인 TV조선 재승인 과정 관련 수사 외에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지난 2018년 유시민 작가의 누나인 유시춘 EBS 이사장이 선임된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며 방통위 기관 감사에 나섰고,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물론 조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나 방통위의 미래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한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7월까지다. TV조선 재승인 심사는 4월로 예정되어있다. 한 위원장은 자진 사퇴를 해도, 하지 않아도 정치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꼴이다. 바꿔 말하면 한 위원장의 선택과 관계 없이 방통위는 다분히 정치적인 조직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임기가 임박한 위원들의 자리를 어떤 진영에서 채울 것인지를 두고 논박중이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향후 정부 의뢰 심사위원 추천은 모두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진흥재단의 ‘2022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뉴스 소비자가 가장 신뢰하는 매체는 TV 뉴스다. 동시에 뉴스 소비자 4명 중 1명은 우리나라 언론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송이, 방송의 보도가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뉴스에 관점을 요구하는 지금,  ‘공정성’이  ‘공익성’과 동의어인지부터 다시 정의하는 작업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을 할 곳이 없다. 뉴스의 미래는 뉴스 소비자가 스스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와 언론의 얄궂은 관계는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둘러싸고도 불거진 바 있습니다. 포캐스트 〈뉴스의 미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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