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다시 생각하기

2월 15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예견된 재난의 시대는 글로벌의 대응 모델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사망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
  •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 불가항력의 재난은 모두의 문제다.
  • 지진을 모두의 문제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NEWS_ 튀르키예 대지진

1999년 8월, 튀르키예의 서부 도시 이즈미트를 덮친 규모 7.6의 이즈미트 대지진은 1만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23년, 튀르키예 중남부 지역에 다시 한번 지진이 닥친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은 막대한 피해를 불렀다. 확인된 사망자만 4만 명을 넘어섰다.
CAUSE_ 무력했던 이유

왜 튀르키예는 반복된 재난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나?
  • 건설 사면 ; 막대한 사망자 규모에는 무너진 건물의 탓이 컸다.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이후 튀르키예는 지진 대비를 위한 건설 규제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재난은 반복됐다. 일단,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한 개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의 상당수도 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는데 정부의 정기적인 건설 사면 때문이었다. 정부에 수수료를 지불하면 필수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2018년의 조사에 따르면 튀르키예에 지어진 건물의 50퍼센트 이상이 건축 안전 규정을 위반하고 세워졌다.
  • 지진세 ;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9년부터 걷어온 지진세를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2021년에는 지진세율을 33퍼센트 인상하기도 했다. 그간 튀르키예가 지진세 명목으로 걷은 세금은 우리 돈 5조 90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지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금 운용은 불투명했다. 튀르키예의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진세의 절반을 다른 목적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지진세는 언제 올지 모르는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보다는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 건축에 쓰였다.

ANALYSIS_ 누구의 책임인가?

재난은 예상하거나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막는 건 다른 문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서 쓰나미가 아닌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90명이었다. 일본은 철저한 내진 설계뿐 아니라 경보 시스템 등의 지진 대비 인프라를 갖췄다. 규모 9.0의 강진이었으나 지속적인 인프라 구축을 통해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 전 세계에는 그렇지 않은, 그럴 수 없는 국가가 많다. 시리아와 튀르키예가 그랬다. UN재해위험감소사무국(UNDDR)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해 사망의 90퍼센트는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한다. 재난으로 인한 사망과 소득, 개발 수준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ISSUE1_ 오직 정권의 책임?

부실한 건축 규제, 지진세의 불투명한 운용은 지진 사망자에 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책임을 말한다. 지진세와 건축 규제는 다른 정책에 쓰였고,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난을 정권 연장의 도구로 사용한 것과 같다. 튀르키예 정부가 단기적 성과를 위해 장기적 책임을 버린 셈이다. 책임을 버린 정권은 재난을 대규모의 사망 사고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 떠넘기는 건 위험하다. 정부가 모든 재난을 온전히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더욱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정권은 거대한 재난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고 예방하기에는 지나치게 취약한 보호 장치가 아닐까.
ISSUE2_ 부실 국가의 책임?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미국의 9.11 테러와 무관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9.11 이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동 국가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이어 갔다. 9.11 이후에 지속된 경제적 제재, 100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출신 난민의 유입 등은 국내외적 갈등을 증폭했다. 가난한 현실은 사람들이 총을 들게 하는 이유가 됐다.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특정 국가의 배제가 또 다른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성숙한 국가는 국제 질서에서 배제해야 마땅하다는 발상”이 또 다른 분노와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논지다. 글로벌리즘의 시대에서 불량 국가 발생의 원인과 영향은 특정 국경 안에 머물지 않는다. 이 질서 안에 들어선 재난은 더 큰 피해로 이어지며, 그들의 재건과 ‘정상화’를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BACKGROUND_ 국경을 넘는 재난

지금의 재난과 그 피해는 정권에, 국경에, 대륙에 갇히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의 난방비를 올렸고,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는 일상은 그 자체로 글로벌리즘의 증거다. 모든 국가가 연결된 세상에서 한 국가의 재해는 다른 국가의 문제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 튀르키예의 지진이 튀르키예만의 피해로 남지 않는 세상에서, 시리아의 황폐화가 시리아만의 탓이 아닌 상황에서 ‘국경 안에 갇힌 재난’은 무엇도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최근의 재난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는 한 국가 안에 한정되지 않았던 판데믹 사태를 “다차원적 협치 체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발생한” 전 지구적 재난이 낳은 파국이라고 표현했다.
INSIGHT_ 기후 위기

지진과 토네이도, 낮은 지대 등, 특정 지역에 한해 발생하는 재난은 대개 한 국가의 불운으로만, 혹은 국제 사회의 선처 대상으로만 비쳤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를 마주한 상황에서, 세계는 재난을 마주하는 패러다임, 그에 대한 대응 모델을 바꿔야 하는 국면에 도착한 것일지 모른다.
  • 더 많아질 지진 ; 지구 물리학자인 빌 맥가이어(Bill McGuire)는 기후 변화가 지진과 화산 폭발, 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녹은 빙하는 기반암에 더 많은 부담이 되고, 땅은 그 무게를 버티며 트램펄린처럼 늘어난다. 기후 위기가 전 세계의 책임이라면, 지진과 화산 폭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 더 사라질 세계 ; 해수면 상승과 기후 위기는 더 많은 세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이는 기후 위기를 넘어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위험 지역으로 꼽히는 중국의 해안 지역에는 430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글라데시에는 3200만 명, 인도에는 2700만 명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게 된다.

HISTORY_ 아이티

재해에 대응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형태는 대부분 재난 이후의 구호와 원조에 집중해왔다. 재난이 발생하면 회복을 돕기 위해 인력과 자본을 지원하는 식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글로벌의 원조는 예견된 재난의 피해를 막거나, 해당 국가의 온전한 재건을 약속하기 어렵다. 2010년 발생한 아이티 지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한 직후 전 세계가 식량, 물, 피난처와 의료 서비스 등의 임시 원조를 제공했으나 아이티는 지금까지도 2010년 지진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사후적인 조치에 집중된 구호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영국의 개발 단체인 ‘티어펀드(Tierfund)’에 따르면 재난의 예방 조치에 1달러를 지출할 때마다 구호와 재건에 4~1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REFERENCE_ 센다이 프레임워크

2015년 UNDDR은 ‘센다이 프레임워크’를 내놨다.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2005년 발표된 ‘효고 행동 프레임워크’를 보완했다. 효고 행동 프레임워크가 재해 이후의 대응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재해에 대한 전 지구적 예방 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춘다. 센다이 프레임워크가 제시하는 첫 번째 주요 원칙은 재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범국가적 시각이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과 저소득 국가를 위한 첨단 기술 이전과 국제 협력,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진을 특정 국가만의 몫으로, 그에 대한 글로벌의 책임을 일시적 원조로 한정한다면, 지구는 다가올 재난을 온전히 사유할 수 없다. 글로벌 전체가 투입되는 재해 예방 조치, 시혜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FORESIGHT_ 재해 거버넌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의 캐슬린 티어니(Kathleen Tierney)는 재난을 예방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재해 거버넌스(Disaster Governance)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정부는 글로벌 규모로 존재할 수 없기에 국가를 넘어서는 의사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재난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캐슬린 티어니는 지역, 국경, 국가의 성격을 넘어선 유연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말한다. 시민과 지역, 정부와 글로벌을 가로지르는 유연한 네트워크는 환경과 기후 변화, 재해 등의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해 거버넌스는 모두가 각자도생을 말하는 시대에 글로벌리즘의 힘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재난 앞에서 글로벌은 조금 더 튼튼한 안전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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