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표류기

2월 1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치킨 게임 속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 테슬라는 전기차 치킨 게임을 걸어 왔고 EU는 유럽판 IRA를 도입한다.
  • 격변하는 시장은 국내 완성차 기업들과 배터리 3사에게 지뢰밭이다.
  •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은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

NEWS_ 두 거물

전기차·배터리의 거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성차 기업 테슬라와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다. 테슬라는 가격 할인으로, CATL은 북미와 유럽 진출로 한국 기업을 위협한다.
EFFECT_ 포지션

새로운 춘추 전국 시대에 세계의 몇 안 되는 공감대는 기후 문제다. 세계는 친환경 모빌리티로의 이행에 합의했다. 전기차는 완벽한 친환경이 아니지만 핵심 브릿지 산업이다. 내연차의 종말은 전통 시장 구도를 흔든다. 한국도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지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변화는 한국을 기업을 옥죄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업 수출의 부진은 거시 경제 하방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다.
BACKGROUND_ 전장 이해하기

전기차 시장을 읽기 어려운 이유는 내연차처럼 세계 공통의 시장 문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탈중국’이라는 키워드를 명목상 공유하지만 실상은 서로 보조금 전쟁 중이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신에너지차(전기·수소·하이브리드)에 자국산 배터리와 부품을 사용한 제품에만 보조금을 줬다. 미국은 중국을 따돌린다는 명목으로 보호 무역주의에 가까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해 모두를 적으로 돌렸다. 보조금 혜택에서 덩달아 제외된 EU는 유럽판 IRA, ‘핵심원자재법(CRMA·Critical Raw Material Act)’을 준비 중이다. 시장마다 보조금 정책과 기업별 점유율[1]이 다르니 맞춤형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CONFLICT_ 치킨 게임

업계 1위 테슬라는 올해 초부터 치킨 게임을 걸었다. 테슬라는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공정을 효율화하고 원자재값 상승을 모두 가격에 반영해 왔다. 압도적 마진이 테슬라의 자신감이다. 가격을 낮춰도 피해가 적다. 배경은 복합적이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량이 감소세였다. 북미 시장에선 경쟁자가 치고 올라왔고 주요 기종인 ‘모델Y’가 SUV에서 세단으로 분류되어 IRA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가격을 조정해야 했다. 포드는 일부 기종의 가격을 테슬라에 맞추며 할인에 들어갔고 중국에선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이 할인에 들어갔다. 현대차도 가격 할인 프로모션으로 응수 중이나 대대적 치킨 게임이 벌어지면 국내 완성차 업계에 치명적이다.
STRATEGY_ 리스

테슬라는 리스 시장에도 훼방을 놨다. 통곡의 벽 IRA에서 현대·기아의 유일한 희망은 리스였다. 렌트카나 리스 등 상업용에는 보조금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현대, 기아, 제네시스를 생산할 조지아 공장 양산 시점은 2025년으로 3년의 공백이 있어 리스는 중요한 카드였다. 그 와중에 테슬라는 치킨 게임을 리스로 확대해 저렴한 리스를 내놨다. 대표적으로 테슬라 ‘모델3’ 리스 요금은 현대 ‘아이오닉5’보다 60퍼센트 저렴하다. 미국에서 리스 비중도 줄고 있어 한국 기업의 고전이 예상된다.
KEYPLAYER_ 도요타, BYD

잠재적 도전자로 부상하는 도요타도 변수다. 일본은 그간 신에너지차 중에서도 하이브리드에 집중해 왔지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도요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이 지난 2월 14일 별세하며 오는 4월 새로 회장에 취임하는 도요다 아키오 사장, 공석을 채우게 될 새 CEO 사토 고지 최고운영책임자는 도요타 변혁을 외친다. 도요타는 2026년까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들어 렉서스의 새 전기차를 개발할 계획이며 자체 배터리 개발도 예고했다. 중국의 BYD도 올해 테슬라의 생산량을 추월하며 배터리 업계까지 진출해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DEFINITION_ CRMA

이번엔 배터리다. 세계 배터리 점유율 1위는 CATL이다. 무려 34퍼센트의 점유율을 가진다. 2위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14퍼센트다. 비중국 시장에선 LG엔솔이 1위지만 CATL은 2022년 무려 131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이며 LG엔솔을 압박하고 있다. 오는 3월 14일 공개될 CRMA는 또 다른 변수다. 전기차 핵심 광물인 리튬, 희토류 등의 유럽산 비율을 늘려야 하는데 중국 의존도가 큰 우리 기업에 타격이 크다. CATL은 역으로 독일과 헝가리에 진출해 정공법을 펼치고 있다.
RISK_ 은밀한 역습

그간 IRA는 한국 완성차 업계엔 재앙이지만 배터리엔 호재로 여겨져 왔다. 탈중국한 수요가 한국으로 몰릴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포드가 CATL과 손잡고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술 라이선스 방식으로 CATL의 공정을 가진 공장을 짓기 때문이다. 포드의 지분이 100퍼센트라 문제가 없다. 그간 IRA 때문에 국내 배터리 업체는 미국 자동차 기업들과 합작사를 설립했는데 포드와 CATL은 이를 보기 좋게 우회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안심했던 미국에서 중국 기술과 경쟁을 벌이게 됐다.
RECIPE_ NCM? LFP?

배터리는 구성 원료에 따라 크게 NCM(니켈, 코발트, 망간 배합물), LFP(리튬, 철, 인산) 방식으로 나뉜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주로 NCM, 중국 배터리 업계는 LFP를 만든다. LFP는 상대적으로 원자재가 저렴하고 공급망 관리가 쉽지만 저가형 혹은 저기술 제품에 쓰였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의 품질 상승과 함께 작년부터 테슬라, 포드, 폭스바겐 등은 LFP 적용을 늘렸다. 작년 중순만 해도 LFP 개발에 소극적이던 국내 기업의 타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INSIGHT_ (구)공급망

뾰족한 해법은 없다. 다만 테슬라와 포드의 행보를 보면 규제를 우회해 중국 시장의 이점만 취사 선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블록화라는 새 시대의 문법 속 유럽과 북미, 중국이 각자 문고리를 걸어 잠그는 듯 보이지만 경제적 악조건은 이들을 과거의 공급망으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여전히 중국의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있고 시장은 강력하다. 유럽도 보호 무역주의 속 친환경 아젠다를 놓지 않아 더 진보된 기술로 승부를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인도는 590만 톤의 리튬 매장이 확인되며 단숨에 리튬 매장량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유연한 생각과 정책이 필요하다.
FORESIGHT_ 폐배터리

테슬라와 BYD처럼 완성차 업계는 자체 배터리를 생산하며 반도체로 치면 종합 반도체 회사(IDM)처럼 커가고 있다. 그럼에도 배터리 업계는 아직 솟아날 구멍이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이다. 2040년에 87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유럽 시장의 공략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유럽 CRMA에는 배터리를 생산할 때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추출한 원자재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완성차도, 배터리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다면 압도적 친환경 기술이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리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바일 시대의 창조자〉를, 전기차 보급의 핵심인 충전소 대해 궁금하시다면 〈전기 없는 전기차〉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1]
전 세계 순수 전기차(BEV) 점유율은 2022년 사상 처음 10퍼센트에 근접했다. 2022년 전 세계의 전기차 판매량은 1083만대로 집계됐다. 중국은 세계 BEV 판매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중국 시장은 전기차 판매 톱 10의 여덟 곳이 중국 브랜드로 자국 브랜드 파워가 크다. 전기차 인도량(판매량)은 BYD(중국), 테슬라(미국), SAIC모터(중국), 폭스바겐(독일) 순이다. 전기차 생산량도 BYD가 올해 테슬라를 넘어 세계 1위가 됐다. 미국 시장은 테슬라의 점유율이 65퍼센트로 1위고 포드가 2위, 현대·기아가 3위다. 유럽 시장은 폭스바겐이 1위, 스텔란티스 2위, 테슬라 3위, 현대·기아가 4위다.  IRA 보조금을 통하면 같은 기종을 내연차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보조금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