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을 깐 자, 누구인가

2월 2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 NFL 슈퍼볼이 도박판이 됐다. 중독에 대해 다시 질문할 때다. 

  •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에 자그마치 20조 원의 판돈이 모였다.
  • 정부는 도박 산업으로 세금을 충당하고 도박 업체들의 입김은 거세다.
  • 도박 중독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DEFINITION_ 슈퍼볼

1억 명 이상이 시청하는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가 2월 13일 열렸다. 미국 미식축구 프로리그(NFL)의 챔피언을 결정짓는 슈퍼볼(Super Bowl)을 보면 미국이 보인다. 슈퍼볼 LVII(57회)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들의 관행이었던 ‘슈퍼볼 인터뷰’를 거부했다. 올해 중계권을 가진 보수 성향 매체 폭스뉴스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올해 최고 광고액은 700만 달러, 한화 약 89억 원이었으며 입장권은 최고가 4만 달러, 한화 약 5000만 원에 되팔렸다. 지난해 슈퍼볼 광고 경쟁에 열을 올렸던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FTX 파산 신청의 영향으로 자취를 감췄으며, 당대 최고 스타만이 설 수 있는 하프타임 쇼는 가수 리한나가 장식했다. 이렇듯 슈퍼볼은 미국의 정치·경제·문화를 모두 담고 있다. 그중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다름 아닌 역대 최대 ‘판돈’이었다.
MONEY_ 160억 달러

이번 슈퍼볼에만 160억 달러, 한화 약 20조 원이 몰렸다. 2021년부터 한 해 두 배씩 불어나고 있다. 2021년 43억 달러, 2022년 76억 달러였다. 전미베팅협회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 베팅에는 미국 전체 인구 약 15퍼센트에 달하는 5000만 명이 참가했다. 전 국민이 즐기는 축제는 어쩌다 가장 큰 도박판이 됐을까?
BACKGROUND_ 2018년

원래 미국은 라스베이거스를 품고 있는 네바다주를 제외하고는 스포츠 도박을 엄격히 금했다. 2018년 이런 흐름은 바뀌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예측해 돈을 거는 스포츠 도박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후 30여 개가 넘는 주가 스포츠 도박을 합법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스포츠 도박 산업의 연 매출은 3년 새 15배 성장했다. 2022년 기준 총 매출은 66억 달러, 한화 8조 5800억 원이었다. 스포츠  도박은 미국 도박 산업의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2022년 기준 미국 도박 산업 규모는 600억 달러, 한화 77조 원에 달한다.
STRATEGY_ 새로운 세금원

도박은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산업이다. 특히나 주 정부로서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모든 주 정부는 새로운 세금원이 필요하고, 도박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과거 코네티컷주에서는 도박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생존전략으로 쓰일 정도였다. 피쿼트족이 운영하는 카지노는 연간 20억 달러의 세금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주 정부가 도박산업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은 연간 약 58억 호주 달러, 한화 약 6조 원이다. 이는 총 세금의 7.7퍼센트에 달한다. 호주의 연방 및 주 정부는 예산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2022년 겨우 AAA 신용 등급을 유지하며 숨을 돌렸다. 그 결과 호주는 세계에서 슬롯머신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정부가 도박에서 나온 세금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FFECT_ 로비

호주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호주 국민은 일인당 한 해 100호주 달러, 한화 약 90만 원을 잃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홍콩, 핀란드가 뒤를 잇고 미국은 7위다. 호주 전체 국민의 1퍼센트가 도박 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간 400명이 도박 관련 문제로 자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박으로 인한 문제를 간과할 수 없게 되자 도박산업개혁 및 도박중독예방을 위한 연합기관 ‘도박개혁을 위한 연맹(The Alliance for Gambling Reform)’까지 등장했지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호주 도박산업 로비 단체가 미국 전미총기협회(NRA)만큼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곳에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주지사는 도박 개혁안을 추진하다 해고 당했다.
RISK_ 약한 고리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스포츠 도박 업체들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대학으로 향했다. 2020년, 온라인 도박 업체 시저스포츠는 한 대학과 160만 달러, 약 21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수수료는 대학에게 짭짤한 돈벌이가 됐다. 특히 학비가 저렴해 재정 상태가 취약한 공립·주립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기준 미국 내 8개 대학이 도박 업체와 제휴를 맺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박 판촉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은 만 21세부터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 저학년 중엔 만 21세가 되지 않은 학생도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REFERENCE_ 필립 모리스

막대한 세금을 등에 업고 로비 활동을 펼치며 미성년층을 타겟으로 한다는 점에서 도박 산업은 담배 산업과 유사하다. 미국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Philip Morris)는 1998년 공개된 내부 문건에 “10대는 미래의 잠재적 단골 고객”이며 “10대의 흡연 습관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명시했다. 낮은 연령에 접할수록 중독으로 향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담배 없는 미래’를 내세우며 궐련형 담배 아이코스를 출시하고 나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담배 규제기준을 완화해 적용할 것을 끊임 없이 요청했다. 담배 회사는 유리한 정책을 위한 로비 활동에 연간 246억 원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립모리스가 FDA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궐련형 전자담배와 일반 연초담배의 유해성이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2020년 7월 FDA는 전자담배가 잠재적으로 해로운 화학물질에 대한 신체 노출을 상당히 감소시킨다는 점을 들어 아이코스 마케팅을 인가했다.
INSIGHT_ 스포츠. 도박. 중독.

도박 중독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2퍼센트다. 아직 니코틴 중독자 비율에 비하면 적은 수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이 여타 중독보다 위험하며, 그 중에서도 스포츠 도박 중독은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도박 중독은 도박에 대해 허용적이며 쉽게 접근 가능한 지역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실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제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1988년부터 인디언 보호구역 내 도박장 운영을 허가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해당 지역들을 중심으로 도박 중독자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주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스포츠 도박에서는 이러한 지역적 접근성이 의미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상 다른 중독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이 중독 여부를 쉽게 알아챌 수 없다는 점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 스포츠 도박은 카지노 등의 도박과 심리적 기제가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함이 목적이 아닌 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쉽게 접근하는 일종의 여가생활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에서 스포츠 도박이 다른 도박보다 심각한 중독을 야기한다고 설명한다.
RECIPE_ 디즈니의 생존 전략?

디즈니(Disney)는 밥 차펙 CEO 시절이던 2022년, ESPN 유료 구독자 감소 타개책으로 온라인 스포츠 도박 시장을 주목한 바 있다. 디즈니가 소유한 글로벌 스포츠 채널 ESPN은 10년 새 36퍼센트의 구독자를 잃었다. 밥 차펙 전 CEO는 “젋은 소비자층은 새로운 경험을 원하며 스포츠 프로그램의 미래는 스포츠 도박과 게임, 메타버스로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고,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디즈니의 스포츠 도박 진출이 젊은 구독자를 늘릴 것이라며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밥 아이거가 다시 CEO 자리로 돌아오며 디즈니의 스포츠 도박 산업 진출은 불확실해졌지만,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FORESIGHT_ 도박은 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가

도박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호주의 대표적 슬롯 머신인 ‘포키(pokies)’는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지역에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행성 논란으로 금지된 P2E(Play to Earn) 게임은 실물 화폐의 가치가 낮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높아진 실업률과 함께 P2E 게임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복권, 스크래치 카드 등의 도박 행위가 증가했고, 코로나19 유행 이후 도박 중독 유병률과 도박 행동 경험률이 모두 늘었다. 《중독 사회》의 저자 앤 윌슨 섀프는 중독은 불안한 현대인의 생존 전략이며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모두는 중독자”라 주장한다. 나아가 중독 시스템에 의해 중독 사회가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인식 개선만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중독은 개인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묻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중독을 알고 싶다면 〈친애하는 나의 커피여〉를 추천합니다. 최대 효율이란 환상에 대해 반문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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