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의 칼바람

2월 2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대퇴사의 시대는 끝났다. 대해고의 시대가 시작된다.

  • 최근 CJ ENM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유는 조직 개편 때문이다.
  • 최대 40퍼센트까지 잘려나간다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사들은 긍정적인 시그널로 판단한다.
  • 이제 대해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노동시장 대혼란이 임박했다.

NEWS_ CJ ENM의 근황

최근 CJ 이미경 부회장이 입방아에 올랐다. 110억 원짜리 ‘루프탑 라운지’ 공사 때문이다. 상암 CJ ENM 사옥 최고층 부의 지붕을 떼어내 실내 천장고를 높이는 증축 공사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인데, 이 공간은 이 부회장이 주재하는 각종 행사용 라운지로 알려져 있다. CJ ENM 측은 해당 공사가 “보수 공사”라며 “경영진 개인공간이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CJ ENM은 사기업이다. 경영진의 의도대로 건물을 리모델링한다고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유는 지금 CJ ENM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직 개편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짐을 싸고 있는데 오너 일가가 쓰는 공간에 1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을 통해 불만이 터져 나온다.
BACKGROUND_ 구조조정

CJ ENM이 창사 이래 최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엔터테인먼트 부문 9개 사업본부를 절반 가까이 통폐합해서 5개 사업본부로 줄였다. 또, 직급 및 직책 체계도 단순화했다. 기존 본부장-국장-사업부장-팀장-사원 순이었던 체계에서 국장직을 없앴다. 보직 수가 크게 줄면서 강등된 임직원들이 속출했다. 관리자급뿐만이 아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인력 감축 대상 부서로 지정된 팀은 20퍼센트의 인력을 줄여야 하며, 팀장 선에서 조정 대상자를 지정한다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CJ ENM 측은 인위적인 인력 감축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올 연말까지 전 직원의 30에서 40퍼센트까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ONEY_ 공룡 기업의 적자

CJ ENM은 우리나라 콘텐츠 대표 기업이다. 그리고 K-콘텐츠는 상승세를 탔다. 그런데 정작 CJ ENM의 2022년 4분기 실적이 처참하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50퍼센트가량 늘어 1조 4640억 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77퍼센트 떨어져 66억 원에 그쳤고 순이익을 따져보면 적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K-콘텐츠가 잘 나가기 시작해서다.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니 비용이 증가한다. 그런데 아직 수익원은 국내 시장에 머물러있다. TV 광고와 홈쇼핑 등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티빙’과 ‘피프스시즌’쪽이 뼈아팠다. 2022년 티빙은 영업손실 1190억 원, 피프스시즌은 영업손실 400억 원가량을 기록했다.
CONFLICT_ 미래 먹거리

물론, 티빙도, 피프스시즌도 IP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투자 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둘 다 중요한 미래 먹거리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 CJ ENM의 자회사 피프스시즌의 옛 이름은 ‘엔데버콘텐트’다. 영화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시리즈 〈파친코〉 등의 제작, 유통, 배급 등에 참여했다. 글로벌 IP 확보를 위해 CJ ENM은 무려 9300억 원에 달하는 인수대금을 지불했다. 티빙은 공격적인 투자로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 〈환승연애〉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지만, 아직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했다. 2023년에는 피프스시즌이 기대작을 대거 준비하고 있고, 티빙도 가입자 5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지만, 당장 버틸 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구조 조정과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창근 신임 대표이사에 시선이 쏠린다.
KEYPLAYER_ 구창근

이번 구조 조정, 성공할까? 구 대표의 전적을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올리브영과 푸드빌 대표이사로 재임하면서 확실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전략에는 패턴이 있다. 첫 해 적자 사업부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다. 그리고 사업부의 분할 및 매각, 상장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한다. 푸드빌에서는 비비고의 동남아 시장 철수와 투썸플레이스의 물적 분할을 결정했다. 올리브영에서는 부진했던 중국과 미국 사업을 철수했다. CJ ENM은 분기마다 인건비만 1400억 원씩 쓰고 있다. 구조 조정을 거치게 되면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고정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표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구 대표의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증권가에서는 CJ ENM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라는 시장 전망도 한몫했지만, ‘재무제표가 반드시 개선될 것’이라는 보장된 믿음의 힘이 셌다.
RISK_ Human Resources

다만,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커뮤니티를 통해 표출되는 목소리는 심상치 않다. 인사 고과와도 관계 없이 구조 조정 대상이 되었다거나, 회사를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외부에 이 정도로 불만이 표출될 정도라면 내부의 온도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고 추측할 만하다. 다만, IP 제작 쪽의 핵심 역량은 이미 자회사에 다수 이관한 상황이다. CJ ENM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나영석, 신원호 등의 스타 PD들만 해도 자회사 ‘에그이즈커밍’으로 이직을 마쳤다. 결국, 계열사로 다 빼지 못한 제작 인력과 PP(케이블 채널) 운영 관련 인원 등, 과거 CJ ENM의 BM에 맞춰져 있던 인력 구성이 이번에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달라진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CJ ENM은 방향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맞춰 조직과 인력을 다시 설계한다. 그 방법이 임직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경영진의 제1 고려 사항이 아닐 뿐이다.
DEFINITION_ 효율의 새로운 정의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팬데믹 기간이 경제적으로 볼 때 결코 최악의 시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감염병 재난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맞은 것은 우리 경제 구조의 약한 고리였지 건실한 기업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돈이 풀리면서 예상치 못한 호실적이 줄줄이 나왔다. 이제 그 달콤한 계절이 끝났다. 그리고 새로운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리 단단한 기업이라 해도 ‘효율’을 금과옥조로 떠받들 수밖에 없다.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할 것이다.
FORESIGHT_ 콘텐츠 권력

장기적으로, CJ ENM은 업계 공룡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방송사가 갖고 있던 콘텐츠 권력이 OTT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넷플릭스의 〈피지컬100〉이 이와 같은 환경 변화를 상징한다. 몇 년 전이었다면 〈피지컬100〉은 외주 제작사가 만들고 MBC에서 방영된 뒤, 본방송의 인기를 등에 업고 케이블 채널 및 OTT 업체로 팔려나가 방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023년, 넷플릭스는 MBC의 기획을 검토해 투자를 결정했고, MBC는 콘텐츠를 만들어 넷플릭스에 납품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MBC라는 콘텐츠 최상위 포식자가 OTT 시장 환경에서는 수많은 외주 제작사와 별다르지 않다는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CJ ENM도 마찬가지다. tvN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지배력은 시대와 함께 사그라들고 있다. 티빙을 통해 OTT를, 피프스시즌을 통해 글로벌 IP를 장악하고자 하는 전략의 성패 여부가, 앞으로 미디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업 전략의 표준을 만들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루프탑 라운지도, 스스로를 ‘매치메이커’라고 칭하며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관계자들을 연결해 온 이 부회장의 전적을 생각해 볼 때 마냥 경영진의 철없는 호사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INSIGHT_ 대해고의 시대

공정이 세대마다 다른 단어로 읽히는 것처럼 ‘효율’이 기업과 직원에게 달리 읽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효율’을 챙겨야 하는 것은 비단 미디어 업계만이 아니다. 팬데믹이라는 분기점 이후 우리는 도래할 ‘뉴 노멀’에 관해 상상했다. 그러나 뉴 노멀의 효율은 누군가에게는 하이브리드 워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구조 조정이다. 대퇴사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떠들썩했던 것이 고작 일 년 전이지만, 이제는 대해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1세기의 혁신을 주도했던 미국의 빅테크부터 발 빠르게 대해고의 시대를 열었다. 채용 면접에서 국적도 묻지 않았던 구글이 대해고를 위해 각국의 노동법을 촘촘히 읽고 있다. 아주 많은 사업 분야에서, 노동 시장 대혼란이 임박했다.

효율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다른 방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포캐스트 〈하이브리드 워크 무용론〉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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