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올바른 작품인가?

2월 2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로알드 달의 소설이 수백 개의 표현을 수정, 삭제한 뒤 재출간됐다. 논란이 거세다.

  •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의 소설이 논란과 함께 재출간됐다.
  • 출판사는 정치적 올바름을 기준으로 작품 속 단어 수백 개를 수정 및 삭제했다.
  • 표현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NEWS_ 재출간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로 잘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책이 재출간됐다. 출간에 앞서 출판사와 로알드 달의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회사인 RDSC는 그의 작품에 등장한 수백 개의 표현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판권지 하단에는 “말은 중요합니다(Words matter)”라는 원칙이 쓰였다. 오늘날 로알드의 작품을 모든 어린이가 즐길 수 있도록 꾸준히 언어를 검토할 것이라는 내용도 덧붙었다. 새로운 판본에서 ‘뚱뚱한(fat)’은 ‘큰(large)’, ‘거대한(enormous)’으로 대체되거나 삭제됐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담긴 표현도 수정됐다. 1983년 작품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에서 캐셔와 타이피스트로 묘사된 여성의 일은 2022년 판본에서 과학자와 사업자로 바뀌었다. ‘검은색’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사라졌고, ‘희다’는 표현은 ‘창백하다’는 단어로 대체됐다.
KEYPLAYER1_ 로알드 달

작품의 표현, 수정과 삭제의 배경에는 로알드 달이 있다. 반유대주의자로 악명이 높은 로알드 달은 1983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히틀러 같은 사람도 유대인을 이유 없이 괴롭히지는 않았다”는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1990년대의 여성주의 활동가들은 로알드 작품의 여성혐오적 정서를 지적했다. 한편으로 작품 속 표현은 그가 살아온 궤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타를 일삼던 성직자 교사가 주교가 되는 걸 본 후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품게 된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전투기 조종사로서 적을 격추하던 군인 시절까지, 모든 삶의 흔적이 작품 속 표현 곳곳에 묻어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캐릭터 ‘마이크 티비(Mike Teavee)’가 가진 장난감 권총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그가 생전 살았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KEYPLAYER2_ 움파룸파족

1964년 출간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판본에 등장하는 ‘움파룸파족’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 피그미 부족이었다. 1972년, 작가인 엘리너 카메론(Eleanor Cameron)이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이후, 움파룸파족은 “황금빛 갈색 머리와 장밋빛의 흰 피부를 지닌” 캐릭터로 수정됐다. 2020년에는 로알드 달의 가족과 RDSC가 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출판사인 퍼핀 북스는 이번 개정에 대해 “출판사가 작가의 책을 현대적 감각에 맞추기 위해 편집하고, 수정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BACKGROUND_ 세일즈

재출간을 위한 대대적인 수정은 세일즈 전략이기도 했다. 로알드 달의 작품이 뾰족함 없이 매끈해져야 인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넷플릭스는 RDSC를 인수하며 로알드 달의 모든 작품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그의 작품을 주력 IP로 활용해야 하는 넷플릭스의 입장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작품’은 필수 조건이다. 출판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6초에 한 권씩 팔리는 주력 상품을 지키기 위해서는 작품을 수정해야 했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교수인 카렌 센즈 오코너(Karen Sands-O'Connor)는 출판사의 입장과 선택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출판을 중단해 돈을 잃거나, 그대로 출판해 독자의 비판에 직면하거나, 지금의 독자에게 맞추어 수정하는 것. 셋 중 마지막 선택지가 가장 ‘문제가 적은’ 답이었을 것이다.”
CONFLICT_ 논란

논란은 거셌다. 영국 총리 리시 수낙의 대변인은 “픽션 작품은 보존돼야 하며 수정하거나 가려지면(airbrushed)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의 작가 살만 루슈디는 “로알드 달은 천사가 아니었지만, 이것은 터무니없는 검열”이라며 출판사의 수정을 비판했고, 문학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인 ‘펜 아메리카(Pen America)’의 리더인 수잔 노셀은 특정한 감성에 부합하도록 이뤄지는 선택적 편집은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표현의 옳고 그름과 얽힌 문제는 비단 로알드 달의 사례에만 멈추지 않는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출판사가 차별적이라고 판단한 표현은 삭제돼야 마땅할까?
ISSUE1_ 독자의 권리와 출판사의 책임

비평가들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작품 수정을 “독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을 막는 행위”라고 표현했다. 원전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출판사의 결정이 독자가 판단할 기회 자체를 앗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에서는 그 자체가 출판사의 책임이라는 논리가 맞선다. 독자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표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로알드의 표현이 최근에 읽기에는 “구식처럼 보였다”며 개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ISSUE2_ 작가와 시기의 문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도 하나의 쟁점이다. 로알드 달이 반유대주의자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의 표현을 모두 수정해야 할까? 작품은 작가의 성향과 인격을 대변하는 산물이라는 논리와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는 논리가 충돌한다. 더불어 작품이 쓰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지금을 분리해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주장이 맞선다. 우리는 고전 서부극을 ‘인디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이유로 거부해야 할까?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 《롤리타》에서 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는 표현은 삭제해야 할까?
ISSUE3_ 픽션에서의 정치적 올바름

모든 질문은 시대의 산물인 예술 작품에 현대의 올바름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로 귀결한다. 메리엄 웹스터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을 “성별이나 인종 등 정치적인 감성을 거스르는 언어와 관행을 제거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정의한다. 《가디언》의 한 칼럼은 개념으로서의 정치적 올바름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 가능성의 축소 ; 충분한 숙고 없이 적용되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선적인 잣대는 한편으로는 재현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영국의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Lionel Shriver)는 백인인 자신이 흑인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조심해야 하는 요소임을 이야기하며 “고정관념을 피하라는 명제는 흑인 캐릭터가 절대로 마약상으로 묘사되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토크니즘 ; 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등장하는 소수자 캐릭터는 그저 올바름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한, 토크니즘(tokenism)의 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다룬 소설 《The Art of Being Normal》의 작가 리사 윌리엄슨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REFERENCE_ 사라진 표현들

과거의 표현을 검토하는 행위, 그 수정의 폭과 강도에 대한 논쟁은 예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남부빈곤법률센터(SPLC)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59개의 남부연합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제거되거나 수정됐다. 2020년에 합판 상자에 가려졌다가 2년 뒤 뒤바뀐 판결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콜럼버스 동상이 그중 하나였다. 김영삼 정부 시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앞두고 빚어진 논쟁도 유사한 구조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논리와 제국주의의 상징적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섰다. 특정 시대의 표현은 과거의 흔적이자 지금을 새로이 진단하는 나침판이 된다. 이 무수한 가능성이 흔적과 표현이 가지는 힘이다.
INSIGHT_ 표현의 힘

표현의 힘은 부당하게 가려졌던 것, 존재하지 않았던 것, 추악하지만 존재했던 것을 드러내는 데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무엇이 삭제의 대상인지가 아닌, 활용하고 재현할 수 있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이다.
  • 진짜 체르노빌 ; 체르노빌의 출입 제한 지역은 2019년 관광지와 산책길로 재탄생했다. 체르노빌을 감싼 ‘죽음의 땅’이라는 장막을 벗기 위한 방법이었다. 지금의 체르노빌은 주민의 거주지이자 원전 사고를 수습하는 노동자의 직장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곳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가능성을 위한 표현 ;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이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슈, 수많은 정체성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때의 다양한 모습은 극우파를 지지하는 ‘친구’일 수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나’일 수도 있다. 무결함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표현은 실제 세계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

FORESIGHT_ 더 많은 픽션

그렇다면 현대는 로알드 달의 작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수정과 삭제 바깥에는 무슨 방법이 있을까? 로알드 달의 불쾌한 표현을 새로운 토론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과거를 읽고 해석해야 하는 현재의 몫을 새로운 창조의 영역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은 픽션, 새로운 정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아동 문학 작가인 필립 풀먼(Philip Pullman)은 로알드 달의 책이 옳지 않다면 “[그것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 교양지를 표방하는 《고래가 그랬어》의 김규항 대표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깨끗한 것만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더 넓고, 때로는 불쾌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현실 같은 픽션이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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