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얼굴

2월 2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국수본 제2대 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하루 만에 낙마했다. 의미가 깊다.

  • 국가수사본부는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수장으로 검사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되었고 하루만에 낙마했다.
  • 인사 참사라는 지적과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학교 폭력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 분노가 불공정을 바로 잡아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논의해야 할 때이다.

NEWS_ 하루 천하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제2대 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미 경찰 내부에서는 검사 출신이 경찰 수사기관의 수장으로 적합한지를 놓고 반발이 있던 상황이다. 다만, 실질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정 변호사 아들이 고교 시절 저지른 학교 폭력 문제와 이에 대한 정 변호사의 대응이었다. 가해자인 정 변호사의 아들은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검증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인사 검증 과정에 왜 구멍이 뚫렸는지를 두고 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DEFINITION_ 국가수사본부

국가수사본부는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권한이 막강하다. 수사 업무에 종사하는 경찰관 약 3만 명으로 구성되었다.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수장인 국수본 본부장은 명실공히 경찰청장에 이어 경찰청 넘버2로 평가받는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경찰청장도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경찰 입장에서는 일종의 ‘경찰 독립’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탄생 배경부터가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 추진되었던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 즉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검찰로부터의 수사 ‘지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국수본이라는 경찰 조직이 경찰의 수사를 총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경찰 입장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경찰 독립 2년 만에 국수본 수장으로 검사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되었다. 경찰 내부의 반발 기류는 이미 심상치 않았다.
KEYPLAYER_ 정순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27기 동기다. 2018년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한 장관은 3차장 검사,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은 평검사로 같은 검찰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문제의 보도가 터졌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2017년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동급생을 상대로 학교 폭력을 저질러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는데, 정 변호사는 이때 아버지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선택은 ‘법 기술자’였다. 정 변호사와 아들은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의 전학 처분 결정에 거듭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가해자의 전학이 이루어진 것은 2020년이었다. 그리고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동안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상적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CONFLICT_ 인사 참사

언론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보도까지 되었던 사건을 정말 몰랐냐는 것이다. 질문은 먼저 시스템을 향한다. 1차 인사 검증 기구는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다. 2차 검증 기구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다. 법원의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 ‘정순신’ 이름 석 자만 넣어도 알 수 있던 내용을 거르지 못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질문의 방향은 이제 사람들을 향한다. 당시 보도는 익명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직장동료’가 연루된 사건을 모르기는 힘들다. 특히, ‘법’을 다루는 직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속 검사가 논란이 되는 법정 다툼을 이어가며 언론의 화살까지 맞았는데 지검장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면 조직의 기강 문제다. 결국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검사가 검사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은 아닌지, 이미 정해진 답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와 같은 의심이다.
ANALYSIS_ 정치적 손익계산서

정치적으로 득실을 따지면 셈은 간단하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호재다. 표면적으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정부에 ‘인사 참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인사검증시스템을 법무부 산하로 이전시키는 단계부터 이미 갈등은 터져 나왔던 터다. ‘검사독재정권’이라는 구호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계산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민주당과 검찰 사이의 갈등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검찰 권력에 대한 여론의 의구심이 커질수록 민주당에는 유리해진다.
RISK_ 공정

반면, 정부 여당으로서는 악재다. 특히 청년 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윤 대통령의 행보가 무색해진다.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청년 세대다. 저출산 대책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윤석열 정부의 첫 공공분양주택 ‘뉴홈’도 청년 세대를 향한다. 그런데 이번 이슈로 청년 세대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었다. ‘학교 폭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공정’ 이슈다.
MONEY_ 돈과 권력의 문제

이번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학폭 전문 로펌’이다. 정 변호사의 경우처럼 부모가 ‘법 기술자’가 아니어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가해자 측이 전문 변호사를 통해 학폭위 처분 결정 취소와 행정 소송을 제기해서 시간을 끄는 일이 이미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지속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흐려지고 가해자의 주장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 기재로 작용한다. 그 결과 가해자 측은 생활기록부에 남을 학폭 관련 기록을 최소화하거나, 입시를 치를 때까지 처분과 기록 자체를 미룰 수도 있다. 결국, 부모의 권력과 재력 여부에 따라 가해자는 가해자가 아닐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피해자다. ‘공정’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INSIGHT_ 바로잡을 기회

그래서 이 사태를 정치적인 득실로만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권선징악은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추악한 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학폭위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해자는 살아남았고 피해자는 그렇지 못했다는 불공정. 고위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가 있었음에도 인사 검증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했다는 불공정. 온 국민이 주시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이 불공정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내일은, 그리고 내년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결국 힘을 잃게 될 것이다.
FORESIGHT_ 부조리의 얼굴

우리는 막연히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느낀다. 다만, 그 부조리는 구체적인 얼굴이 없다.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의 존재 자체를 종종 잊게 되기도 하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며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그 부조리가 구체적인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우리가 당사자가 되었을 때이다.이대로 끝난다면 목격자들이 진술한, 정 변호사의 아들이 했다는 이야기대로 될 뿐이다. “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라는, 그 말이 현실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세대가 마주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한국이 만든 MZ세대〉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