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갈등, 누구의 책임인가

2023년 3월 2일, explained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한다. 대중은 외면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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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26일,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 의료 단체들은 ‘간호법·의료인 면허법 강행 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만을 위한 법안이기 때문에 특혜이자 입법 과잉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의사들은 총파업까지 동원해 다음 달에 있을 본회의 표결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간호협회도 지지부진한 간호법 제정이 이번에도 불발될 경우, 연대 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간호법이 논쟁거리가 되는 동안 의료계는 빠르게 황폐화하고 있다.

WHY NOW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의 갈등은 국민의 안전이 아닌 직역갈등의 문제가 됐다. 대중은 지겹고 이기적인 것으로 보이는 논의와 거리를 뒀다. 본질이 소모적인 갈등에 가까워질 수록 위협 받는 건 국민의 안전이다. 이권 안에 갇힌 소통은 의료 시스템의 황폐화를 막을 수 없다. 해외의 빅테크는 이미 의료 서비스를 새로운 시장으로 본다.
업무 범위, 처우개선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담은 법안이다. 현행 의료법이 규정하는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다. 이번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의 1조는 현행 의료법의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과 지역 사회”로 규정한다. 이외에도 간호 종합 계획을 5년마다 수립, 3년마다 실태 조사 실시, 적정 간호사 확보 및 배치의 의무, 처우개선에 대한 기본 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체계 붕괴와 이기주의 사이

의료연대 등의 의사 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지역 사회’다. 해당 표현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 바깥으로 확장했다는 지적이다. 현행 의료법 제33조는 의료인은 의료기관 바깥에서 의료업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의사 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의 단독 개원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간호법을 필두로 모든 직역의 개별법이 난립해 현행 보건 의료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각 직역에 대한 분리가 업무 범위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간호조무사 등의 타 직역도 간호사만을 위한 단독 법안 제정에 반발하고 있다. 논점은 간호법 내부에 갇히지 않는다. 특정 직역의 권리를 규정하는 법안은 직역 이기주의이며, 이는 결국 모든 직역 간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담론으로 이어진다.

간호법, 동상이몽

법안에 대해 제기되는 우려와 당위성은 극명히 갈린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이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필수라고 주장한다. 치료를 넘어 지역 사회에서 치매 등의 만성 질환을 관리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통합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논란이 되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의사의 처방하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현행 의료법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각각이 내세우는 근거도 갈린다. 간호협회는 OECD 33개국이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의협은 OECD 회원국 중 독립적인 간호법을 가진 국가가 11개국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의협의 기준은 다른 의료법과 완전히 분리됐는지의 여부였고, 간협의 기준은 간호사의 업무와 책임을 독립적으로 규율하고 있는지였다. 숫자 하나에도 각자의 기준이 다르다.

부족한 간호사

간호법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인 업무 범위 규정과 처우개선은 간호계에 산재한 내부 문제와도 멀지 않다. 한국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한 명은 16.3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일반 병원은 43.6명에 달한다. OECD 평균이 6~8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은 의료계 최초로 주4일제 시범 사업에 착수했다. 고질적인 간호사 인력난이 그 이유였다. 열악한 업무 환경, 삶과 병행하기 어려운 업무 강도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간호사의 평균 근무 연수는 7년 5개월 수준이다. 이는 숙련 간호사의 품귀 현상으로도 드러난다. 부족한 간호사가 환자를 위협하는 이유다.

부족한 의사

환자를 위협하는 것은 사라지는 간호사만이 아니다. 의사 인력난, 필수의료 기피 등도 심각한 문제다. 현재 간호법과 함께 논란의 여지가 일고 있는 ‘의사 면허 취소법’은 의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다. 의사 단체는 의사 면허 취소법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들의 소극적인 진료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필수의료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부족한 의사는 불법 행위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PA간호사는 진료 보조 인력으로 전공의 업무 일부를 처리한다. 문제는 국내 PA간호사의 존재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부족한 의사, 모호한 간호사의 업무 등이 회색지대가 된 PA간호사의 존재 이유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은 PA간호사의 채용 공고를 냈다가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미온적인 행정부, 독선적인 입법부

더불어민주당이 9개월간 법사위에 계류하던 간호법을 국회에 직회부하며 본격적인 갈등이 가시화했다.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이후 갈등은 계속됐으나 보건복지부는 미온적이었다. 지난 2월 9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금 더 협의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 행정부 차원에서 간호법을 설명하거나 여론을 수용하는 시도는 없었다. 행정부와 달리, 입법부는 독선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의 쟁점화된 법안들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거나 그럴 뜻을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직회부 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 위원들은 간호법 등 법안의 직회부 결정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용히 무너지는 병원

간호법을 둘러싸고 입법부의 의견이 나뉘면서 의사와 간호사의 파업은 예견된 사태가 됐다. 필수의료의 공백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출범한 의정 협의체도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파행을 겪고 있다. 주요 쟁점이었던 비대면 진료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계 내부의 상황은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의 분만 산부인과는 584곳으로, 전년 대비 87곳 감소했다. 수도권 바깥은 더 심각하다. 전국 226개 시군구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68곳에는 분만 산부인과가 단 한 곳도 없다. 충북 괴산군은 긴급 환자를 수용할 부인과가 없어 임산부 전담 구급대 서비스를 운영한다. 수도권의 공공 병원과 지방 병원에는 인턴 지원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의료 체계는 약한 곳부터 조용히,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직역 내 갈등, 정치계의 움직임이 몇 가지 논리에 갇힌 채 소란스러운 것과 대조적이다.
IT MATTERS

상대에게 닿지 못하는 언어는 대중에게도 외면당한다. 의사가 정의한 간호법과 간호사가 정의한 간호법은 다른 모습이다. 간호조무사가 정의한 것과 의료계가 정의한 간호법도 마찬가지다. 이 소통의 장벽과 언어의 차이가 긴 시간 동안 반복된 갈등을 고착화했다. 의사와 간호사, 의료계 모두가 파업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들의 갈등이 직역 간의 이해 다툼으로 비춰질 때 모든 논의는 빛을 바랜다. 의료계가 외치는 ‘더 나은 의료 체계’가 국민의 안전이라는 본질과 멀어진다면,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국민과 의료계 사이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셈이다.

국민과 기존 의료계가 멀어지는 동안 빅테크는 공격적으로 의료계에 진출하고 있다. 오픈AI의 CEO 샘 알트만은 AI챗봇이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의료 상담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챗GPT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고, 아마존은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인 ‘원 메디컬(One Medical)’을 3억 달러에 인수하며 일차 의료 서비스에 손을 뻗었다. 지금의 의료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끝은 빅테크의 ‘서비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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