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과 ESG 투자

2023년 3월 6일, explained

국민의 돈을 수익성이 확실치 않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정당한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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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ESG 물결이 미국에 퍼지고 있다. 현지 시간 3월 1일 공화당은 연금기금의 ESG 투자를 막는 결의안을 상원에 통과시켰다. 연기금이 투자처를 검토할 때 ESG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막는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ESG의 개입으로 투자가 정치화됐다고 비판한다. 투자의 기준은 다른 무엇도 아닌 수익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WHY NOW

국민의 돈을 수익성이 확실치 않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정당한가? 공화당의 태클은 연기금의 역할과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연금의 미래가 불투명한 한국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최악의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운용 자산 규모도 900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ESG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연금 고갈을 앞둔 국민에게 ESG는 유효한 논제인가.

배후의 손

ESG의 배후엔 투자계의 큰손인 연기금이 있다. 국제 사회와 연기금의 압박으로 세계 기업들은 속속들이 ESG 물결에 올라탔다. 전 세계 ESG 자산은 35조 달러를 넘어섰다. 1위는 미국이다. 근 몇 년 급성장세를 보였고 자산 보유액 20조 달러를 돌파했다. BRT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1]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ESG 투자의 비전을 강조했다. 기세를 몰아 지난해 11월, 미 노동부는 연기금이 투자 시 ESG를 고려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기금은 투자 시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고려해야 한다”라는 기존 규정을 엎은 것이다.

탈ESG 러시

그런데 미국은 왜 지금 탈ESG로 돌아섰나. 사실 공화당은 몇 년 전부터 ESG가 자유 시장 논리를 해친다고 비판해 왔다. 일례로 론 드산티스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는 이미 지난해 8월 연기금 펀드매니저들이 투자 과정에 ESG를 포함시킬 수 없게 했다. 드산티스는 “ESG는 플로리다에 도착하자마자 죽었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2022년은 격변의 해였다. 전쟁이 터졌고 경기가 불안정해졌다. ESG 펀드가 5년 만에 처음으로 비ESG 펀드에 뒤처졌다. 공화당에게 호재였다.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

기업은 ESG와 탈ESG 사이 방황하고 있다. 글로벌 감시는 물론 미국 내 양당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일례로 텍사스주는 지난해 석유 사업을 보호하는 에너지 차별 철폐법을 시행했다. 석유 산업과 거래를 거부하는 기업은 사업 일부가 제한된다. 이에 글로벌 투자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텍사스 공화당원들로부터 “그린을 표방한다”고 비판받으며 수십 억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게 됐다. 2024 대선 후보로 등록한 억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 또한 ESG의 개입을 비판하며 ‘비정치적인’ 기업 운영을 강조한다.

연기금의 사정

ESG 기업에 투자하는 기관은 많은데 공화당은 왜 하필 연기금을 때릴까? 연금은 공공의 것이기 때문이다. 1억 5000만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을 담보로 한다. 그만큼 지지층을 결집하기 쉽고 이는 수익성과 이어질 때 더 민감하다. 연기금의 사정은 넉넉치 않다. 미국 연기금 부채는 2001년 이후 25퍼센트가량 증가했다. 손실은 지난해 기준 1조 4500억 달러에 달한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12월 노동자 연금에 무려 360억 달러를 수혈했다. 연기금 지원으로 미국 사상 최대 규모다. ESG 펀드 때문에 연기금 수익성이 낮아진다는 명제는 사실일까? 보스턴대 은퇴연구소가 미국 176개 연기금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중 3분의 2는 ESG 투자의 의무가 주어졌고, 수익은 연간 2bp 감소했다.

한국의 ESG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ESG 채권 시장은 2019년 1조 6300억 원에서 2021년에는 24조 9300억 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큰손은 당연히 국민연금이다. 2021년 5월엔 국민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하며 화력을 보탰다.[2] 그런데 이 흐름이 지난해 뒤집혔다. 기준 금리 급상승으로 투자시장은 얼었고 ESG 회사채 발행량은 급감했다. 지난해 말 기준 12조 원으로, 전해 24조 원에 비해 절반이었다. 수익률도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방산·석유 등의 기업 가치가 높아지며 ESG 투자는 반대로 손해봤다. 작년 말 기준 국내 기관이 운용하는 38개 녹색성장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9.39퍼센트였다. 일반 채권펀드 수익률이 -1.36퍼센트였음을 감안하면 낮아도 너무 낮다.

ESG 투자의 딜레마 

다만 ESG 투자는 세계 연기금의 흐름이다. 장기적인 수익성이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이다. 이 흐름을 국민연금만 역행하기란 어렵다. 국내 기업도 해외 자본이 끊기기 쉽다. 지난 2015년 포스코가 열대우림에 임의로 불을 질러 농장을 개간했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세계 1위 국부펀드 노르웨이 연기금은 포스코에 투자를 중단했다. 네덜란드 연기금 또한 2018년 포스코 투자를 철회했으며 석탄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전력, 담배를 생산하는 KT&G에도 투자를 금했다.

IT MATTERS

모든 투자는 가치의 문제이고 연금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내 여러 주요 연기금은 담배, 술, 무기 회사 투자로부터 손을 뗐다.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인데도 그럴 수 있던 배경엔 죄악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다. 현재까지 시위가 이어지는 프랑스 연기금 논란의 핵심은 법정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것이다. 더 내는 것도, 덜 받는 것도 아닌 제3의 대책인데 청년층을 필두로 프랑스 국민들은 대거 반발했다. 연금은 단순히 세수를 걷어 노후를 보장하는 보험을 넘어, 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애 주기를 만드는 삶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은 무엇인가? 노후를 보장할 사회 보험인가, 생애 주기를 만드는 삶의 모델인가, 국가의 비전을 담은 가치 투자인가. 한국에선 사실상 어느 하나로도 충실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절벽은 진행형이고 모두가 연금고갈론을 외친다. 기성 세대는 세대 간 형평성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청년 세대는 가입 이유를 찾지 못하며, 연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고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답이라면 청년 세대를 설득할 키워드는 가치 투자에 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회복된다 해도 현재 수준으로는 1500조 원의 간극을 메우지도, 비관론을 깨지도 못한다. 반면 미래에 투자한다는 것은 연금과 ESG의 공통 가치다. 현재의 비용을 감수하면 추후 더 좋은 결과물로 돌려받는다. 청년 세대는 신념을 소비하는 시대에 태어났고 기후 위기와 부의 격차를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다. 수익성 면에서도 ESG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미국에서 가장 큰 연기금이자 세계 금융 시장을 주무르는 캘퍼스가 공격적으로 ESG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민연금이라는 오래된 사회계약론엔 새로운 설득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단기 수익이 아닌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1]
미국 200대 대기업 협의체인 BRT(Business Round Table)는 “기업의 목적을 변경했다”며 “고객에 대한 가치 제공, 종업원에 대한 투자, 협력업체와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공헌),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 모두가 기업의 필수적인 목적”이라 밝혔다. ESG 경영을 기업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정의했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2]
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 직전이었다. 당시 국제 연기금들이 대다수 탈석탄을 선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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