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은 반쪽짜리인가

2023년 3월 7일, explained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안을 내놨다. 반쪽짜리 방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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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을 내놨다. 전범 기업의 참여가 빠진 ‘제3자 변제안’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23년 3월 6일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입장문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재원은 국내 기업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측은 피해자 나라에서 피해 보상금을 내게 생겼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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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일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일 관계가 복잡한 이유는 과거 직시와 미래 협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확실히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3·1절 기념사에서 ‘미래’를 총 5회 내뱉었다. 반면 일본 반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번 방안은 한일 관계에 있어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첫 해법이다. 한쪽의 입장만 담은 방안을 해법이라 부르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정부가 찍은 성급한 마침표를 바로 잡을 수 없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한일 관계는 수년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중심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을 확정 판결했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을 기회가 피해자 개인에게 생긴 것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반발했다. 이후 2019년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 품목 수출금지,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경제 보복으로 대응했다. 우리나라도 세계무역기구 제소로 맞서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했다. 배상금이 단순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한국도 일본도 알고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

한일청구권 협정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국가 간의 협상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우리 법원 역시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종료됐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12년 이러한 판결이 뒤집혔다.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는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며 배상 책임이 일본 기업에 있다는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을 시작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다시 논의되기 시작됐다. 그리고 2018년 배상 확정 판결에 이르렀다.

엉뚱한 주머니

배상 확정 판결 받은 피해자는 총 15명으로,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더하면 약 4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부의 발표로 배상금이 엉뚱한 주머니에서 나오게 됐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배상금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일청구권 협정의 혜택을 본 국내 기업이 다수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공사 등이 언급된다.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은 참여하지 않는다. 전범 기업의 참여 없는 배상금은 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한일 정상 회담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발표로 무엇을 얻었을까?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발표에 맞춰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이 공동선언은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첫 반성 표명이었다. 이번 발표에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와 배상은 빠져 도돌이표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일 관계에는 좋은 명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한일 정상회담 시기가 당겨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G7 이후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공동선언을 계승한 ‘윤석열-기시다 선언’이 발표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과거사를 외교에 이용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갑자기 미래청년기금

이번 발표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가칭 미래청년기금이다. 양국 경제단체,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을 주축으로 조성되고 운영되는 기금이다. 한국인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 양국 청년세대 지원 사업에 쓰인다. 민간 차원에서 일본 기업이 기금 조성에 동참할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업들에게 우회 방안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피고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의 참여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래청년기금의 역할

윤석열 정부는 미래청년기금을 내놓을 만큼 한일 관계에 있어 ‘미래’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는 미래 세대에게 달려 있을까? 일본의 미래 세대는 과거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보고 있을까? 한국이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안은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관련 내용을 다룬 요미우리의 기사는 야후 재팬에서 조회 수와 댓글 수 1위를 차지했다. “이 문제는 한국의 문제며 보상에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이 사과해야 할 일은 없다” 등의 댓글이 호응을 얻었다. 미래청년기금은 한일 관계 회복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는 왜 갑자기 소환됐을까?

미래라는 명분

정부는 이번 발표가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과거가 우리 미래를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발표 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양국이 수출 규제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협의에 나섰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동일한 시간에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세계무역 기구 분쟁 해결 절차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일본이 한국을 다시 화이트리스트로 지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발표가 곧바로 경제 효과로 드러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과거사 문제는 미래 세대의 먹고사는 일로 치환된다. 과거와 미래라는 이분법 안에서 미래 세대는 이번 발표의 명분이 됐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 관계 인식 조사 결과, 40퍼센트가 넘는 응답자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한일 상호 공통의 역사 인식 조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IT MATTERS

과거와 미래라는 이분법으로 나눈 뒤, 명분을 확보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개선, 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하는 것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23년 2월 21일, 대통령실은 “노조의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 행위”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담긴 유튜브 쇼츠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23일 고용노동부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법령상 회계 자료 제출 의무를 지키지 않은 노조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존 양대 노총이 90퍼센트 이상 수령하던 지원 사업을 일명 ‘MZ 노조’로 분배하는 내용이다.

인간과 생태를 연구한 최재천 교수는 갈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계속해서 마주치는 이상 젠더 갈등을 언젠가 봉합될 것이지만, 마주칠 기회가 적은 세대 갈등은 자칫 평행선을 달리거나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갈등이라고 덧붙인다. 다양한 사안에 있어 정부는 ‘미래 세대’와 ‘MZ’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법이 우리 사회에 어떤 득이 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래만 담은 반쪽짜리 방안은 해법이라 볼 수 없다. 앞으로의 모든 갈등에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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