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대해고, 무엇이 문제인가

2023년 3월 8일, explained

대해고 이후 구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내 책상은 내가 챙겨야 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가 지난주 구글 전체 회의에서 지난 2월 발표한 책상 공유 정책 ‘클라우드 오피스 에볼루션(Cloud Office Evolution)’을 옹호했다. 구글 클라우드의 주요 사무실에서 출근 일자가 다른 직원들이 같은 책상을 쓰게 하는 정책이다. 사내 커뮤니티 ‘밈젠(memegen)’에선 “모든 비용 절감 조치가 직원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려 엉터리 말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밈이 돈다.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있다.

WHY NOW

꿈의 직장 중 하나인 핀테크 토스에서는 최근 개발팀 직원 45명 중 여섯 명이 줄퇴사 했다. 퇴사자들은 권고 사직이라 말한다. 개인별 정량적 성과 측정 없이 동료 간 이뤄지는 정성 평가에 의존해 조직 문화 내 정치가 만연해졌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토스와 가스라이팅의 합성어인 이른바 ‘토스라이팅’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노사의 신뢰는 무너졌고 번아웃 세대들은 사직서를 품고 산다. 내 책상은 내가 챙겨야 한다.

유령 도시

“사무실이 유령 도시 같다.” 피차이가 전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그는 값비싼 부동산의 30퍼센트만 이용하는 건 임대료 낭비라 말한다. 표면적 이유는 주 2일 근무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구글 클라우드 전략 및 운영 부사장 아나스 오스만에 따르면 직원 중 주 4일 근무자는 전 직원의 35퍼센트에 불과하다. 책상 공유 정책을 위해 주 3일 근무자 65퍼센트를 2회만 사무실에 나오도록 한 건 구글이다. 책상 공유는 사무실 축소의 포석이다.

위기의 알파벳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2022년 3분기 6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다. 2013년 이후 최저다. 유튜브를 위시한 광고 매출 둔화가 심했다. 클라우드는 성장세가 높았지만 운영 손실이 늘었다. 4분기에도 가이던스를 밑돌며 경기 둔화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했다. MS와의 AI 전쟁에서 오픈AI의 ‘챗GPT’의 대항마로 내놓은 바드는 시연 당일 오답을 내며 체면을 구겼다. 당일 알파벳 주가는 7퍼센트 넘게 폭락했다. 다른 빅테크처럼 구글도 위기 앞에 고정비를 줄였다.

구글의 칼춤

고정비는 임대료에 국한하지 않았다. 구글은 지난 1월 20일 전 세계 직원의 6퍼센트에 해당하는 1만 2000명을 감원하겠다 밝혔다.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의 해고다. 알파벳, MS, 아마존, 메타 등을 포함 2022년 동안 빅테크에서 해고된 직원은 7만 명으로 추산된다. 칼춤에서 살아남은 것은 AI 분야 인력들이다. 구글 해고 명단에 구글의 AI연구소 ‘구글 브레인’ 소속 직원들은 없었다. MS도 지난 1월 오픈AI에 12조 원 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잘린 직원들은 AI 전쟁의 숨은 총알받이다.

해고 브이로그

1월 22일 틱톡에서 한 구글 직원의 브이로그가 화제가 됐다. 해고 과정이 담긴 90초 분량의 영상은 상쾌한 하루로 시작해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상사의 전화로 무너진다. 구글 메일의 액세스 권한은 사라졌고 그는 오열했다. 구글을 넘어 전 세계의 해고당한 직원들은 해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구글러(Googler) 브이로그가 아닌 그들의 다음 스텝을 보는 게 새 틱톡 트렌드가 됐다. 스브스뉴스는 한국의 권고 사직 브이로그를 올린 이들과 인터뷰하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고 말한다. 다만 어떤 해고는 잔인하다.

국경 너머의 신

구글 취업 후 유럽에 온 비(非)유럽 출신 노동자들은 불안에 떤다. 국가에 따라 EU나 EFTA 국가 국민이 아니면 실직 시 몇 개월 이내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 유럽 지부의 핵심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스위스는 해고도 쉽다. 반면 프랑스는 1000명이 넘는 직원 중 아무도 해고하지 못한다. 지부가 속한 국가마다 노동법이 달라 벌어진 일이다. 눈물의 브이로그는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다. 러시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출신 직원들은 사실상 난민과 같다. 구글은 신의 직장이지만 국경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해고의 조건

절차와 규모가 제각각이다 보니 구글의 해고 결정이 블랙박스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초 대규모 해고 결정도 고위급 극소수만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이메일 해고’는 해고 방식의 의문을 더했다. 급기야 ‘AI 개입설’이 나왔다. HR에서 성과 평가와 보유 역량 계산을 위해 쓰는 알고리즘을 역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HR은 빠르게 데이터 중심이 됐다. 구글은 부인했지만 구글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신봉한다. 미국의 한 여론 조사에서 인사 담당자들의 98퍼센트가 알고리즘 해고 방식을 지지하며 의혹은 커지고 있다.

투자자 자본주의

구글의 대해고는 경영진의 단독 결정이 아니다. 구글의 알파벳에 60억 달러 지분을 보유한 TCI 캐피털 펀드 매니지먼트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해고를 압박했다. TCI는 대해고 이후에도 추가 서한을 보내 수천 명의 추가 해고와 임금 삭감을 요구했다. 감원은 쉬운 방식이지만 서비스의 질에 치명적이다. 트위터는 대규모 감원 이후 올해 10여 차례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핵심 기술팀들의 팀별 인원은 많아야 한 명으로 알려졌다. 구글 역시 클라우드 서비스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 투자자를 달래려다 직원이 아닌 소비자까지 잃을 수 있다.

IT MATTERS

실리콘밸리는 능력주의의 표상이었다. 고용 시장 유연성이 높아 성과에 따른 해고도 쉬웠다. 그렇다면 대해고가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직속 상사와 일대일 미팅 후 퇴직 처우를 설명하는 통상 절차도 거치지 않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구글 밈젠의 경구는 대외적 어려움 앞에 신뢰를 저버린 기업의 태도를 파고든다. 성장의 시대에 쌓았던 빅테크의 노사 관계는 투자자와 시장 변화에 무너져 내렸다.사람에 대한 존중이 부재했다.

한국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를 꿈꿨다. 구글, 넷플릭스처럼 동료 평가를 도입하기도, ‘스크래피’한 문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입시 때부터 무한 경쟁에 노출되는 한국 사회, 정리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엔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다. 한국의 숱한 권고사직 브이로그는 대외적 어려움에 노출된 기업과 취업 경쟁을 뚫고 온 근로자 사이 지켜야 할 최소한을 묻고 있다.

정부가 내놓았다가 MZ세대의 반발로 보류한 노동 시간 개편안은 노사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개편안은 근로 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는 게 골자다. 몰아 일하고 연차를 저축해 쓰는 ‘근로 시간 저축 계좌제’도 담겼다. 일한 뒤 11시간 연속 휴식도 보장된다. 직종에 따라서는 일견 노사 모두 만족할 해법으로 보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노사 간의 불신은 ‘원할 때 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