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과 생산 혁명

3월 9일, explained

도면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자가 되는 시대가 올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현지 시간 3월 8일 일본이 우주 로켓 H3을 발사했다. 발사는 실패로 끝났으나 3D 프린팅 부품을 내장해 생산 비용을 절감해 주목받았다. 미국 스타트업 랠러티비티 스페이스(Relativity Space)는 오늘 세계 최초 3D 프린팅 로켓을 발사한다(3월 9일 오전 9시 업데이트 ; 발사 일정은 며칠 연기됐다). 로켓의 무려 85퍼센트가 3D 프린터로 제작됐다.

WHY NOW

3D 프린팅은 생산 혁명이다. 밸류 체인을 단순화하고 개인화가 가능하며 디자인에 무한한 자유도를 부여한다. 원하는 물건이 생기면 배송 없이 손에 쥘 수 있다. 도면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자가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층층이 쌓기

3D 프린팅 기술의 핵심은 적층이다. 절삭이나 성형이라는 기존 생산 방식의 틀을 깬다. 크게 모델링, 프린팅, 후처리 3단계를 거친다. 우선 소프트웨어를 통해 3차원 데이터를 완성한다. 그러고선 프린터가 이 데이터를 읽고 한 층 한 층 쌓는다. 결과물이 완성되면 색칠하거나 조립하는 등 마무리 공정을 거친다. 대표적인 원료는 플라스틱, 금속, 세라믹 등이다.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며 글로벌 투탑은 스트라타시스(Stratasys)와 3D시스템즈(3D Systems)다. 최근 샤오미, 앵커 등 대중적인 브랜드들도 가정용 3D 프린터를 출시하고 있다.

범용성과 확장성

의류, 의료, 기계, 항공 등 생산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쓸 수 있다. 건축에선 가구를 만들고 주택을 짓는다. 틀니, 보청기, 의족, 의수 등 의료계에서도 요긴하다. 디자이너 얀네 키타넨은 호텔이 투숙객에게 필요한 옷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 ‘잃어버린 짐’을 진행했다. 최근엔 스테이크를 조직하고 신체 기관을 만드는 등 3D 프린팅은 점점 소재와 분야를 넓히고 있다.

21세기식 프린팅

장점이야 여럿 있겠으나 3D 프린팅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과 개인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성품이 아닌 커스텀 수요가 많은 패션, 미세한 개인화가 핵심인 의료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보인다. 새로운 공급망 패러다임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와 물류 마비로 공급망 확보는 세계의 화두였다. 도면과 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생산 가능하다는 개념은 로컬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출발점이다. ESG라는 시대적 키워드와도 맞물린다. 제조 공정을 간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핵심이다. 절삭이 아닌 적층 형식이라는 점에서 버리는 재료도 적다.

무해 논란

다만 친환경성에 비판적 시각도 제기된다. 2020년 세계 3D 프린팅 산업은 1만 8500톤의 플라스틱을 사용했고 그 중 5000톤이 폐기물로 나왔다. 에너지 소비량도 크다. 러프버러대학 3D프린팅연구소에 따르면 같은 중량의 제품을 만들 때 3D 프린터는 기존 기기보다 50~100배의 전력을 쓴다. 유해 물질도 검출됐다. 지난 2021년 7월, 국내 3D 프린팅 수업을 진행해 오던 한 과학 교사가 숨지며 논란이 됐다. 3D 프린팅 작업 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쓰는 사람이 적고 연구 기간이 짧은 신기술 특성상 어떤 소재와 작법에 따라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돈과 사람의 문제

최초의 3D 프린터는 무려 1983년 출시됐으나 40년이 지나도 상용화되지 못했다. 왜일까? 국내의 경우 3D 프린터를 만드는 쪽과 사들이는 쪽의 문제가 다르다. 공급사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인식 저조(29.3퍼센트)와 자금 확보 어려움(24.5퍼센트)을 꼽았다. 만들어도, 내수 시장 니즈가 충분치 않다. 그렇다고 해외를 노리기엔 글로벌 기업에 비해 자금도 기술도 부족하다. 반면 수요사는 주요 애로 사항으로 전문 인력 부족(48퍼센트)과 AS 및 유지 보수(43퍼센트)를 꼽았다. 기계를 다루거나 고칠 사람이 많지 않다. 개인 입장에서도 3D 프린팅은 취미로 즐기기엔 비싸다. 국내 보급되는 가정용 3D 프린터 가격은 15~200만 원선이다.

퀄리티 컨트롤

기술적 한계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속도다. 초당 평균 40~150 밀리미터를 제작한다. 10~20센티미터 높이의 오브제 하나 만드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 속도를 높이면 정밀도가 떨어진다. 원재료의 물성을 살리는 것도 과제다. 그래서 재료가 플라스틱 등 소수로 한정돼 있고, 텍스처 표현의 제약이 크다. 또 맞춤 생산이 장점이라는 것은 반대로 대량 생산에 약하다는 것이다. 시장에 팔 수 있는 동일하고 균질한 제품 수백 개를 찍어내지 못한다. 시제품이나 교육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술 민주화

누구나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은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다. 우선 무엇을 만들 것인가? 2013년 미국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는 세계 최초 3D 프린팅 권총 발사에 성공했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저격한 총도 부분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미 바이든 정부는 3D 프린터로 만든 총기를 규제하겠다고도 밝혔다. 어떻게 만들지도 문제다. 국내에서 3D 프린팅은 ‘인쇄’ 활동으로 분류된다. 이는 저작권법상 ‘복제’다. 아이디어 투 프로덕트 과정의 단순화는 곧 저작권 전쟁을 의미하지만 관련 법안은 미비하다.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면 신기술은 프로덕트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빠르게 사장된다. 누가 써도 괜찮은 제품이 될 때, 3D 프린팅이 그리는 생산 혁명은 현실이 될 수 있다.

IT MATTERS

3D 프린팅은 생산자의 역할에 의미를 던진다. 모든 물건의 생산자는 단순히 그 물건을 만드는 역할만 담당하지 않는다.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재료와 방식, 시간 등 모든 공정을 고려한다. 물건이 시장에 나간 뒤의 쓰임과 역할도 고민한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오류를 말하거나 포르노를 생성해 논란이 된 최근의 생성 AI에게 던지는 질문과 같다. 생산자와 소비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대에서도 둘을 구분하는 건 본질에 대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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