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이 된 빅테크에 맞서기

2023년 3월 13일, explained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알고리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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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새로운 악역의 전형으로 IT 사업가가 등장하고 있다. AP통신은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 등장하는 악역 ‘마일스 브론(Miles Bron)’이 “소셜 미디어 나르시스트”인 점을 지적했다. 영화 〈킹스맨〉, 〈돈룩업〉에서도 기술 사업가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고집 센 악당이다. 기술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알고리즘, 중독, 범죄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사회적 우려로 자리 잡았다. 소셜 미디어는 우려의 중심에 있다.

WHY NOW

모두가 알고리즘 속에 사는 시대다. 소셜 미디어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알고리즘을 국가가 관리하면 모두가 안전해질까? 다양한 물음 이전에는 무수한 발화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는, 플랫폼의 잠재력이 있다. 이 잠재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빅테크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 인터넷 초기, 자유로운 정보 공유를 지향하며 등장했던 RSS가 그 대안일지 모른다.

악역의 의미

영화에서 악역은 어떤 문제일까.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할 때 정치가 시작된다고 봤다. 선이 악을 이길 때, 악이 파멸할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악역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전형적인 정체성을 가진다.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서부극의 악당은 인디언이었고, 분단 직후 한국 영화의 악역은 공산주의라는 사상이었다. 새로이 재현되는 악역의 전형이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라는 것은 지금 사회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일지 모른다.

악당이라는 여론

미국 퀴니피악대학교(Quinnipiac University)가 2022년 설문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열 명 중 일곱 명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회사가 사회에 득보다는 실을 가져온다고 판단한다. NBC 뉴스가 실시한 여론 조사도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마크 주커버그에게 호의를 표한다.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다. 여론 속의 빅테크 사업가들은 이미 악당이다.

강력한 잣대가 된 알고리즘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의 핵심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미 대선 여론 조작에 교묘하게 개입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은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발휘할 수 있는 파급력을 실감했다. 지난 2월 21일 변론이 진행된 ‘곤잘레스 vs 구글(Gonzalez v. Google)’ 사건의 원고는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던 중, IS의 총격으로 사망한 노에미 곤잘레스의 유족이다. 원고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IS 테러리스트를 모으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 이후의 알고리즘은 개인의 일상과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강력한 잣대가 됐다.

통신품위법 제230조

플랫폼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전시하고 전달하는 컨베이어 벨트일까, 콘텐츠를 생산하고 선별하는 공장장일까? 쟁점이 되는 법안은 미국의 통신품위법 제230조다.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의 생산자 혹은 사용자는 다른 콘텐츠 생산자가 게시한 정보의 발행인, 혹은 발화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제230조의 내용대로라면, 플랫폼은 내부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구글뿐 아니라 수많은 플랫폼 기업들은 통신품위법 제230조를 자유의 수호신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법적인 방패로 삼고 있다.

책임자의 역할, 표현의 자유

정치권에서는 플랫폼의 방패가 되는 통신품위법 제230조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민주당에서는 책임자의 역할 강화를, 공화당에서는 표현의 자유 수호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같은 법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내세우는 근거가 달라지는 이유는 해당 법안이 띄는 양가적인 성격 때문이다. 제230조 (C)항 2호는 인터넷 사업자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콘텐츠를 제거, 차단하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플랫폼은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내보낼 수도, 알고리즘에 따라 특정 발화를 강조할 수도, 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을 아무런 책임 없이 삭제할 수도 있다.

표현인가, 행동인가

1996년 통신품위법 입법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인터넷 사업자가 부적절한 콘텐츠를 자연스레 거를 것이라 판단했다. 사업적 기준에서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콘텐츠는 시장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플랫폼이 운용하는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좋아할 법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무게를 싣는다. 시장 가치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통신품위법이라는 방패에 맞서 미국의 저널리스트 줄리아 앵윈(Julia Angwin)은 단순한 표현(speech)과 적극적인 행동(conduct)의 분리를 제안한다. ‘곤잘레스 vs 구글’ 사건의 원고 역시 콘텐츠와 알고리즘을 분리하며, 플랫폼이 행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데이터 통제국과 플랫폼의 잠재력

데이터와 알고리즘, 규제와 보호 사이의 줄다리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 정부는 데이터 통제국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의 데이터 수집과 공유 규칙을 설정하고 감시해 알고리즘의 적절성, 보안 문제 등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통제국이 발화를 직접 감시하고 선별할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 전체가 국가의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다중적인 기준 아래,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지향하는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표현과 발화가 이뤄진다. 이것이 플랫폼이 품은 잠재력이다.

IT MATTERS

악당에 굴복해 플랫폼의 잠재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빅테크의 알고리즘 바깥에서, 보호라는 탈을 쓴 검열과 거리를 두면서, 플랫폼의 순기능을 취할 수 있을까? 200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RSS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RSS는 온라인 콘텐츠를 사용자가 한 곳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배급 포맷이다. url만 추가하면 뉴스, 블로그, 유튜브 등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자신만의 피드를 구성할 수 있다. 사용자를 중독시켜 체류 시간을 연장하는 형태의 착취적 알고리즘이 아닌, 개인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대안적 플랫폼에 가깝다. rss.app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복잡한 절차 없이도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구성할 수 있다.

RSS는 오래된 기술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자신을 의탁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들은 음모론의 주인공과 악당으로 추상화된다. 절대적인 악당 앞에서 사람들은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이때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교육이 열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대안적 기술과 그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새로운 히어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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