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게이트 사태로 보는 암호화폐의 미래

3월 10일, explained

암호화폐 은행 실버게이트가 문을 닫았다. 이 시장에 남은 것은 희망인가 위기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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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암호화폐 전문 은행 실버게이트가 청산한다. 현지 시간 8일 모회사 실버게이트캐피털이 성명서를 내고 자발적 청산 계획을 밝혔다. 실버게이트의 주가는 44퍼센트 폭락했고, 비트코인도 2만 2000달러 선이 붕괴됐다.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해야 할 연례 보고서 기일을 연기한 후 일주일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상장된 기업이라면 반드시 등록하는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보고서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건 회사 상황이 심각하게 불안하단 뜻이었다.

WHY NOW

이번 실버게이트 청산 사태는 암호화폐 시장 특유의 높은 변동성이 비교적 안정적인 주류 은행 시스템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이다. 한편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주류 은행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한 것인가. 혹은 거대한 은행이 무너진 만큼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인가.


실버게이트

실버게이트의 주요 고객은 암호화폐 트레이더와 거래소이다. 2022년 말에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와 대출 업체 블록파이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 시 고객이 자사의 실버게이트 익스체인지 네트워크(SEN)을 통해 달러로 거래할 수 있도록 처리해 주는 일을 했다. 2014년부터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든 실버게이트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고,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증을 받고, 연방준비은행(Fed)의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은행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1금융권에 속한 은행인 셈이다. 암호화폐 전문 대형 은행 두 곳 가운데 하나로 규모는 110억 달러였다. 다른 하나는 규모 1140억 달러의 시그니처 은행이다. 실버게이트가 문을 닫는 방식은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하는 파산이 아니라 스스로 사업을 정리하는 청산이기에, 고객의 모든 예금은 전액 상환된다고 한다.

청산의 신호탄, FTX

작년 말, 세계 2위 규모였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했다. FTX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던 실버게이트는 2022년 4분기에 10억 달러, 한화 약 1조 3056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후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에서 이탈하는 현상, 뱅크런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고객 예금 140억 달러, 한화 약 18조 원이 인출되었다. FTX 파산으로 인한 뱅크런에 시달리던 실버게이트가 결국 청산을 선택한 것이다.

예견된 위기

고객들은 암호화폐를 거래하기 위해 실버게이트를 이용했다. 달리 말하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 실버게이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실버게이트는 이미 이 같은 변동성 위험이 상존했고 2021년 말 기준, 전체 예치금의 82퍼센트가 변동성 높은 암호화폐 고객 투자자 자금이었다. 유동성, 즉 현금 여유가 없다는 것 또한 이미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실버게이트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부분의 신규 자금을 장기 증권에 투자했다. 11퍼센트의 유동성 자산만 연준과 다른 은행에 예치된 현금으로 보유했다. 증권의 11퍼센트는 미국 국채, 나머지 대부분은 계약 만기 10년 이상의 모기지 담보 채권이었다. 쓸 수 없는 현금이 없으니 위기에 대응하기도 힘들었다.

빠른 시장의 움직임

실버게이트의 청산이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이미 이전부터 나와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 시장은 이미 이전에 실버게이트를 ‘손절’했다는 평이 나온다. 코인베이스, 크립토닷컴, 제미니, 비트스트맵 등 암호화폐 거래소와 서클, 팍소스 등의 스테이블 코인 기업들이 실버게이트와의 거래를 중단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시장의 위기는 아니다

실버게이트 악재 이후에는 스테이블 코인의 거래량이 늘어났다. 암호화폐 업체들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스테이블 코인에 자금을 이동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은행도 흔들릴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은 스테이킹 기술 중단 이후 암호화폐 전문 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실버게이트 은행과 거래해오던 암호화폐 헤지펀드들이 스위스 은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실버게이트 청산이 암호화폐 시장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의 미국

FTX 문제를 제기했던 상원 의원 중 한 명, 엘리자베스 워런은 당시 “경제 전체에 해악을 끼치기 전에 암호화폐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런 의원은 2021년부터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시장을 “거친 서부”로 칭하거나, 증권거래위원회에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꾸준히 암호화폐 관련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크라켄의 스테이킹[1] 서비스를 중단시켰다. 증권거래위원회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 업체가 대출, 수익 등의 단어를 사용해 투자자들에게 이득을 배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연방 증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 역시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에 주의를 당부했다. 미국 제도권은 대체로 암호화폐가 화폐 성격을 가지기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데 집중한다.

문을 열려는 중국

지난 2월 말, 홍콩이 암호화폐 개인 투자자 거래 허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홍콩 정부의 코인 시장 개방 뒷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의 지지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2021년부터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해 왔다. 그러면서도 디지털 위안화(CBDC[2]) 개발을 추진하는 등 달러화 패권 도전 방법 중의 하나로 디지털 화폐를 만지작거려 왔다. 중국이 홍콩을 암호화폐 실험장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중국에게 암호화폐는 열어야 할, 그리고 곧 열고야 말 시장이다.

IT MATTERS

돈은 인간에게 양가적인 자세를 취하게 한다. 하나는 리스크를 피하고 안정을 추구할 것. 다른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할 것. 이번 실버게이트 청산 사태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인다.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은 실버게이트를 탈출해서 좀 더 안전해 보이는 다른 은행 혹은 스테이블 코인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코인 자체가 품고 있는, 그래서 규제 당국이 경고하는 위험성까지는 보지 않는다.

돈과 욕망이 모이는 암호화폐 시장이 실버게이트 은행 청산 하나의 이벤트로 무너질 일은 없어 보인다. 많은 언론의 예측처럼 이것이 ‘게이트’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그러면 다시, 암호화폐 시장에 남은 것이 가능성인지 위기인지 고민해야 할 시간이 왔다. 미국도 중국도, 혹은 또 다른 시장도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해석에 따라 미래를 점칠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1]
스테이킹(Staking)은 본인이 보유한 디지털 자산을 블록체인 검증에 활용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에 맡기는 방식을 말한다. 사용자는 그 대가로 디지털 자산을 분배 받는다.
[2]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말한다. 영국, EU 등 세계 강국들이 CBDC를 개발하고 있으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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