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 없는 작가의 탄생
완결

도구 없는 작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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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험: 아이작 아시모프 vs. 챗GPT


1957년 8월,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어느 텔레비전 생방송에 패널로 참여했다. 그는 즉석으로 짧은 이야기를 하나 써내야 한다는 도전 과제를 받았다. 아시모프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멍 B에 손잡이 A를 넣으시오(Insert Knob A in Hole B)’라는 단편을 내놓았다. 이 단편은 아시모프가 자주 다루는 로봇과 우주를 소재로 활용한 전형적인 작품이었다. 불과 300 단어도 되지 않는 이 이야기는 석 달 뒤에 <공상과학&판타지 매거진(Magazine of Science Fiction & Fantasy)>에서 출간되었다. 1969년에는 아시모프의 《나이트 폴 외 중단편집(Nightfall and Other Stories)》에도 실렸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우주 정거장에 두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있다. 그들의 온갖 유지 보수 작업을 수행한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장비를 직접 조립해야 하는데, 설명서가 대체로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상관들이 그 모든 허드렛일을 해줄 로봇을 보내주기로 하자 그들은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화물선에 실려서 도착한 로봇은 상자 안에 부품 상태로 들어 있다. 우주비행사들은 그걸 조립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설명서 역시 명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작은 실험으로써, 나는 이 이야기의 텍스트 전체를 챗GPT(ChatGPT)의 프롬프트(prompt) 칸에 입력했다. 챗GPT는 지난 11월에 오픈AI(OpenAI)라는 회사가 출시한 인공지능 기반의 텍스트 생성기이다. 나는 거기에 “이 이야기를 업데이트하라”라는 가벼운 지시를 내렸다.

아시모프가 다른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멍 B에 손잡이 A를 넣으시오’를 쓰기까지는 20분이 걸렸다. 훗날 그는 이 아이디어가 이미 절반쯤 준비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요청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챗GPT가 그것을 자신의 버전으로 내놓기까지는 정확히 43초가 걸렸다. 만약 아시모프의 원작에 대해서 모른 채로 챗GPT의 버전을 읽는다면, 독자는 이것이 마지막에 괜찮은 한 방이 있는 약간 재미있는 단편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시모프와 마찬가지로 공상과학 소재의 조금 긴 농담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챗GPT의 ‘업데이트 작업’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만들었고 그들에게 덜 서구적인 응우옌(Nguyen)과 파텔(Patel)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그들의 대화는 약간 수정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이야기였다.

왜 굳이 이런 실험을 했을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비롯한 AI 기반의 새로운 텍스트 도구들을 사용하여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이용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때로는 사실 관계에 개의치 않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 소설을 자신이 직접 쓴 작품인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그런 사례가 어찌나 많은지 지난 2월, 미국의 대표적인 공상과학 단편 소설 매거진 한 곳은 작품 투고를 마감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AI가 생성한 작품 접수량이 급증한 것이다.



2. AI 소설, 웹사이트를 마비시키다


《클라크스월드(Clarkesworld)》는 2006년 미국에서 닐 클라크(Neil Clarke)가 출간하기 시작하여 실물 책자와 온라인 매거진의 형태로 매월 발행되고 있다.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공상과학 장르에서는 최고의 단편 스토리 마켓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클라크는 지난 2월 21일, 온라인 투고 포털을 폐쇄했다. AI가 생성한 작품의 투고량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투고 포털이 폐쇄된 사유는 오직 소프트웨어와 서버 업데이트 작업이었습니다. 2012년에 제게 심장마비가 왔을 때에도 폐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투고 작품들을 처리하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파악하기 위해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안이었습니다.”

2월에 클라크가 접수한 작품 가운데에는 기계가 쓴 것이 명확한 이야기가 500편은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50편이 밀려 들어오자 그는 결국 매거진의 투고 셔터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클라크스월드》에는 일반적으로 한 달에 약 1000편의 소설이 접수된다.

그는 챗GPT를 비롯한 AI 기반의 텍스트 생성기를 사용해서 작성된 대부분의 작품 투고자가 공상과학 및 판타지 커뮤니티 외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 범람의 배후에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부업 전문가 또는 관련 웹사이트의 조언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런 작품 중 상당수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경로를 보면, 저는 SF/판타지 또는 관련 매거진에 익숙한 사람들이 투고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클라크는 말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이런 경향이 싹트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장은 느렸고 수량은 감당할 수 있었죠. 이러한 갑작스러운 증가세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단순히 도구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돈벌이 전략의 표적이 되었다는 거죠.”

클라크는 그 자신과 팀원들이 AI가 작성한 투고작을 가려내고 잡초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에 이렇게 덧붙였다. “실제 숫자는 아마 조금 더 많을 겁니다. 기계가 직접 작성 또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했는지가 의심되는 작품들이 일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별 작업을 할 때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작품 중 하나가 출간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면, 우리는 그 소설이 실제로 출간된 적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장르 매거진 분야의 다른 편집인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많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말한다.

클라크는 “첫 번째 파도를 맞은 우리는 대부분 ‘언제나 문호가 열려 있는’ 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투고 기간이 가끔씩만 열리는 시장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불률도 하나의 요인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런 투고작들의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사람들과 웹사이트, 채널은 언제나 그 집단을 위한 더 많은 콘텐츠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클라크를 비롯한 동료 편집인들은 자신들의 투고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연구해야만 한다. 출간을 시도하는 진짜 작가들을 떨쳐내지 않으면서도, 시스템이 AI가 작성한 이야기에 잠식되는 걸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대부분의 방안이 신인이나 해외 또는 기타 작가 집단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집단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기존의 관행에 도전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시장이 넘쳐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지 도구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체적인 테스트 데이터에 의하면 실패율이 너무 높고 그것을 사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2월, 로이터(Reuters)는 2월 중순 기준 아마존(Amazon) 킨들 스토어(Kindle Store)에 있는 200편이 넘는 전자책의 저자 또는 공동 저자가 챗GPT라고 보도했다. 그중에는 《챗GPT를 이용하여 콘텐츠를 작성하고 생성하는 방법(How to Write and Create Content Using ChatGPT)》, 《부업의 힘(The Power of Homework)》, 그리고 《우주의 반향(Echoes of the Universe)》이라는 시선집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수치는 매일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아마존에는 ‘챗GPT 사용에 관한 책들’이라는 하위 장르가 새로 생겼는데, 그 책들은 전적으로 챗GPT가 쓰고 있다.

그러나 해당 보도에서는 얼마나 많은 전자책이 AI에 의해 쓰인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의 특성, 그리고 작가들이 그것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함구하는 경향 때문이다.
 


3. 인공지능 문학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과연 AI가 작가들의 일자리를 뺏을까? 아마도 지금 당장은 아닐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나의 개인적인 실험에 의하면, AI가 쓴 글은 얄팍하게 위장한 표절물 혹은 닐 클라크와 같은 노련한 편집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종류의 글일 것이다.

AI 사용자들이 아무리 온갖 설정을 입력해도 거기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손길이다. AI가 카피 라이팅과 저널리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있지만, 일부 출간 분야는 조금 덜 비관적이다.

루트거 브루이닝(Rutger Bruining)은 회고록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토리테라스(StoryTerrace)의 창업자 겸 CEO이다. 이곳에서는 작가들이 고객들을 철저하게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인생사를 글로 정리한다.

“회고록에 관해서는 최고의 책을 만들고 해당 고객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하는 데 인간 작가들의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브루이닝의 말이다. “자료 수집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심히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앱보다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걸 더욱 편안하게 느낍니다. 함께 차 한 잔을 마시거나 누군가의 집에 걸린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회고록을 집필할 때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죠.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해당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툭 하고 던지는 말 또는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비언어적인 몸짓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면에 AI는 미팅 일정을 잡고, 교정 작업을 하고, 편집 방향을 제안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장소들에 대한 맥락을 추가하는 등 관련 프로세스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셸리 프로스트(Shelley Frost)는 스토리테라스와 함께 일하는 전문적인 대필 작가 중 한 명이다. “제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AI는 자체적으로 개선이 될 것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조금 섬뜩한데, 저의 작가 동료들도 불안해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주로 회고록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AI나 챗GPT가 일을 빼앗아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기억을 대필하는 작업의 본질은 인간적인 상호작용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주 오래되었으며 매우 인간적인 사교 행위를 통해서 고객과 친분을 쌓는 것입니다. 고객과 대화를 나눌 때면 저는 그 고객의 사투리, 억양, 웃음, 얼굴 표정 등에 주목합니다. 저의 고객에게 기쁨, 분노, 환희를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고객들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리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웃고 있었던 그 모든 시간에 대해서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아는 한, 컴퓨터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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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금 AI 혁명의 초입에 있다는 것이다. 챗GPT가 출시된 것은 2022년 11월로 불과 네 달 전이지만, 구글은 이미 그것의 경쟁 버전인 바드(Bard)를 발표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소프트웨어가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소셜미디어 포스트와 블로그 게시글을 작성하기 위해 설계된 또 다른 도구인 라이터버디(WriterBuddy)는 지난 2022년 11월에 출시되었다. 이 회사는 AI 기술에 투자하기 위하여 몇 건의 연구를 의뢰하여 진행했는데, 그들은 이 분야가 근본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차세대 골드러시라고 말한다.

라이터버디의 대변인은 이렇게 말한다. “AI 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는 무려 수십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2015년에는 127억 5000만 달러였던 투자액이 2021년에는 935억 달러로 치솟으면서, 6년 동안 633.33퍼센트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AI 시스템이 얼마나 강력하고 정확해질 것인지를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AI 경쟁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AI에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는 기업 투자자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확신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장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오픈AI는 챗GPT 출시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것을 상당히 잘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는 AI 관련 기업의 입장에서 괜찮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히 글을 쓰고 출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험난한 여정이 될 수도 있는 혁명이다.

닐 클라크는 이렇게 말한다. “단편 소설 매거진들은 도전 과제를 직면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가 펼쳐지겠죠. 아마존은 최근 디지털 구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그것은 우리 업계에서는 주요한 수익원이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결정과 AI의 범람 사이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바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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