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만드는 악의 고리

2023년 3월 15일, explained

제주 대표 축제가 멈췄다. 기후 재난의 고리를 만드는 산불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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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제주들불축제가 반쪽짜리 축제로 막을 내렸다. 축제의 백미로 꼽히는 ‘오름 불놓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당초 제주시는 방문자 30만 명을 목표로 했지만, 결과는 4분의 1인 7만 9000여 명에 그쳤다. 한때 제주 최고의 관광 행사였지만 실패로 끝나버린 들불 축제, 이유는 산불 우려 때문이었다.

WHY NOW

기후 위기로 전통은 지켜야 할 것에서 바꿔야 할 것으로 변화했다. 변화해야 할 것은 전통뿐만이 아니다. 산불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재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저지른 선택이 쌓이고 쌓여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졌다. 진화에 나서기 전, 망설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200억 원짜리 풍습

목축업을 생업으로 삼았던 제주에는 해묵은 풀과 해충을 없애기 위해 봄이 오기 전 들판에 불을 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이 축제가 되었다. 그런데 축제를 즐기기에 겨울은 너무 추웠다. 비바람도 잦았다. 그래서 제주도는 2013년부터 축제 시기를 봄으로 옮긴다. 추위와 비바람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광활한 오름이 활활 타오르는 장관 덕에 인파가 몰렸다. 제주시에 따르면 축제 기간 방문객 수는 평균 30만 명, 경제적 효과는 200억 원이 넘는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라는 훈장도 달았다.

불 꺼진 들불축제

그런데 이 축제가 민폐가 되었다. 인파를 모으기 위해 시기를 봄철로 옮겼는데, 봄은 꽃의 계절이 아니라 산불의 계절이다. 공식적으로 그렇다. 각 지자체 등이 정하는 봄철 산불조심기간이 매년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다. 당장 지난 주말에도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큰 산불이 났다. 결국 산불경보가 경계 단계로 오르면서 오름에 불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뉴노멀, 축제의 조건

기후 위기 시대, 뉴노멀의 정의에 따르면 들불축제는 더 이상 축제일 수 없다. 축제를 벌이다 산불이 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환경 단체는 탄소 배출과 생태계 파괴 등을 문제로 삼는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돈 때문이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들불축제를 없애면 당장 도민들의 생계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들불축제에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전환이 현실이 되려면 불 없이도 관광객을 끌어들일 대책부터 필요하다.

논밭의 불씨

올해의 축제는 멈췄지만, 여전히 들불은 산불이 되고 있다. 축제가 아닌 일상의 얘기다. 산림과 인접한 전국의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고 있다. 우리나라 산불 발생 원인 1위는 산에 오른 사람이 실수로 불을 내는 경우다. 막을 방법은 입산 금지 외에는 별달리 없다. 2위가 바로 논이나 밭을 태우다가 불씨가 번져 산불이 되는 경우다. 전체의 15퍼센트에 달한다. 이는 막을 수 있다. 논밭에서 불을 다루지 않도록 규제하면 된다. 실제로 지난해 개정된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산림으로부터 100미터 내 토지에서 불을 피우다 적발될 경우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농촌 지역의 관습인 만큼 단속은 계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올해 산림청은 무관용 원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단호한 이유

고령화하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부의 무관용 원칙이 과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나설만한 이유가 있다. 산불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이 더 쉽게 나고, 더 오래 지속된다. 작년 울진-삼척 산불은 무려 2주 가까이 지속되며 2만 헥타르가 넘는 숲을 파괴했다. 같은 해 강릉-동해 산불도 5일 동안 4000헥타르 넘게 태웠다. 원인은 기후 변화다. 온난화로 인해 봄이 점점 덥고 건조해지고 있다. 불이 나기 좋은 환경이다. 강풍이 발생하는 시기도 당겨진다. 한번 불이 붙으면 더 빠르게 번진다.

범인은 쓰레기장

문제는 정부 방침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농촌에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쓰레기장이기 때문이다. 농촌 마을은 인구밀도가 낮다. 그래서 쓰레기장이 상대적으로 멀다. 고령의 주민들 입장에서는 추수가 끝난 후 무거운 영농 쓰레기를 몇 시간씩 걸어 매번 운반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무척 고된 일이다. 종량제 봉투 가격도 부담된다. 폐비닐 배출 장소도 마을에 하나뿐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수거는 1년에 한 번이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쓰레기를 가구별로 태우는 경우가 많다. 산불에 무심해서가 아니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쓰레기 수거장이 없어서다.

정부의 탄소 감수성

더욱더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온난화 자체를 늦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기후 정책은 이미 유턴 신호를 받았다. 당초 30퍼센트였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는 21.6퍼센트로 하향 조정되었다. 2022년 10월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은 33퍼센트다. 이래서는 우리 숲에 매년 봄 더 거세고 건조한 바람이 불 수밖에 없다.

IT MATTERS

산불은 홍수나 가뭄과 같은 여타 기후 재난과 달리 그 자체로 강력한 기후 위기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산불이 나면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이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된다. 지구가 더워지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다시 산불이 난다.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의 비극이다.

게다가 산불은 경제적 기반도 흔든다. 산촌의 이재민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의 문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산불이나 토네이도 등 기후 재난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에 충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보험사들은 기후 재난으로 인해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은행도 망하는 시대, 기후 위기는 이미 세계 경제에 위험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UN은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이 증가하리라 예측했다. 2050년까지 무려 30퍼센트가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책은 여전히 ‘임시’ 방편이다. 산불의 예방과 진화를 위해 1년에 5개월만 고용되는 2만여 명의 ‘임시직’ 전문인력처럼 말이다. 문제의 본질부터, 근본적인 해결책을 궁리해야 할 때이다. 그게 쓰레기장이든, 파격적인 탄소 감축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시도해야 한다. 불길은 산에서 솟아오르지만, 그 결과는 도농을 가리지 않고 함께 감당하게 된다. 지난 여름, 강남 한복판의 홍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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