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시대
7화

방지 침술 ; 예방하는 도시는 남다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안전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 안전은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요구이며, 다른 활동들을 이어갈 수 있는 근간이다. 이처럼 도시의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방지 침술이 주목받고 있다. 방지 침술은 사고에 대한 안전과 예방에 중점을 둔 공공디자인으로, 범죄가 지속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 특화됐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라는 개념 또한 방지 침술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셉테드는 도시 환경의 위험 요인을 줄이고 잠재적 범죄를 예방하는 디자인으로, 1971년 레이 제프리(Ray Jeffery)가 범죄 예방 설계 기법을 세우며 처음 사용한 용어다. 범죄는 ‘동기를 가진 범죄자’, ‘취약한 대상’, ‘환경’이라는 세 요소가 갖춰질 때 발생한다. 한국셉테드학회는 셉테드의 세 가지 핵심을 감시, 접근 통제, 공동체 강화로 둔다. 범죄 예방 디자인은 사고 발생율을 낮추는 것은 물론 주민의 불안감을 저감하고 지역 사회의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책을 부르는 골목길


골목길은 지역 사회의 곳곳을 연결한다. 안심하고 거닐 수 있는 골목이 많아질 때 만남이 발생하고 도시 곳곳엔 활기가 돈다. 서울특별시는 2012년 마포구 염리동을 대상으로 셉테드 개념을 적용한 생활 안심 디자인을 시행했다. ‘소금길’이라는 이름의 이 골목길은 범죄의 사후 관리보다 사전 예방에 집중했다. 지역의 공공디자인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목적으로 전문가, 공무원, 경찰과 함께 실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로 진행됐다.

그 결과 소금길엔 산책 코스와 운동 기구가 놓인 쉼터가 생겼다. 혹시 모를 범죄 현장을 자연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신주는 노란색으로 밝게 칠하고, 각 전신주의 고유 번호를 라이팅 박스로 만들어 긴급 상황에 처한 보행자가 위치를 신고하기 쉽도록 했다. 범죄 예방 비상벨도 설치했으며 ‘지킴이집’으로 자원한 집의 현관을 노란색 대문과 바닥 그래픽으로 표시했다.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잠시 몸을 피하거나 빠르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업이 진행된 이후 염리동 주민의 78.6퍼센트가 이 디자인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대한 애착이 13.8퍼센트, 이웃과의 관계가 42.3퍼센트 늘었다고 답했다. 염리동의 방지 침술은 범죄 예방의 실효성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 개선의 효과까지 불러일으켰다. 이를 토대로 2016년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범죄예방을 위한 도시 환경디자인 조례안’을 제정해 염리동에서의 첫 사업 이후 현재까지 67개 지역에 범죄 예방 디자인을 시행했다. 



빈민촌에서 커뮤니티로


덴마크의 뇌레브로(Nørrebro) 지역은 코펜하겐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았던 곳이다. 지난 19세기 처음 주거지가 형성된 이래로 200년 동안 각종 시위와 무력 충돌이 촉발됐으며 60개 이상 국적의 저소득층 사람들이 모여 산다. 1960년대에는 파키스탄과 모로코 등에서 노동자가 이주했고, 이후 1980년대에는 이라크, 이란, 레바논 출신의 난민도 유입됐다. 그 결과 주민 7만 명 중 이민자 또는 이민 2세대인 인구가 무려 28퍼센트에 이른다. 이 지역이 슬럼화된 가장 큰 이유는 폭력 단체 활동과 사회적 결속력 결여뿐 아니라 만연한 범죄로 인해 ‘빈민촌’이란 인식이 팽배해진 것도 있다.

이에 덴마크 정부는 방치된 부지를 공원으로 정비하는 도시 재생 사업을 발족했다. 공공시설에 지역의 색을 입혀 주민들이 수준 높은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안전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동네의 사회 문화적 결속을 증진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회사는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덴마크 건축 회사 비야케잉겔스그룹(BIG·Bjarke Ingels Group), 각 지역의 맥락을 녹여 내는 작업으로 유명한 독일 조경 업체 토포텍원(TOPOTEK1), 덴마크 예술가 그룹 수페르플렉스(SUPERFLEX)였다.

이들이 합작해 조성한 곳이 바로 수페르킬렌(Superkilen) 공원이다. 수페르킬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문화 활동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붉은 광장(Red Square)이다. 이름 그대로 바닥이 온통 붉은색이다. 붉은 광장 입구에는 뇌레브로 지역 스포츠 센터이자 커뮤니티 공간 뇌레브로 홀(Nørrebrohallen)이 마련돼 있으며, 빨간 바닥재 위로 태국에서 온 야외 무에타이 링, 놀이터 등의 놀이 시설이 있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공원이라고 부르기 낯선 공간이 나타난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하얀 세로 등고선이 그려진 검은 광장(Black Market)이다. 이 흰 등고선은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가 연출한 영화 〈도그빌(Dogville)〉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라고 한다. 검은 광장에서 주민이 더 활발히 활동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바닥에서부터 역동성을 추가한 것이다. 검은 광장은 도시의 거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고 다양한 문화권을 보여 주는 여러 소품들이 마련돼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바베큐 틀, 모로코에서 온 별 모양 분수, 불가리아에서 온 체스 테이블 등은 지나가는 행인의 이목을 끌고 그들이 좀 더 이곳에 머물도록 유도한다. 특히 인기 있는 소품은 일본에서 온 문어 미끄럼틀이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무리 지어 문어 미끄럼틀에서 놀고, 사람들은 주변 분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햇살을 즐긴다.

가장 넓은 구역은 녹색 공원(Green Park)이다. 이름 그대로 넓은 녹지를 조성한 곳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공원 모습에 가장 가깝다. 맛있는 도시락을 챙겨 소풍을 가거나 가볍게 산책하기 좋도록 조성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가져온 그네, 아르메니아산 피크닉 테이블, 아프리칸 스타일의 바베큐 틀과 스페인 탁구대가 마련돼 있다. 녹색 공원이 가장 크게 지어진 배경엔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기구나 조형물이 없더라도 평범한 녹지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코펜하겐 공공디자인팀은 이 요구에 맞춰 녹색 공원을 더욱 여유 있게 확보했다.

“이 공원에 설치할 소품을 당신의 고향에서 가져올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오고 싶은가요?” 주민의 화합을 목표로 한다면, 공원의 핵심은 그곳을 주민이 원하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설계팀은 지역 주민들의 출신 국가 62개국에서 108개 소품을 선정했다. 덴마크 안전 기준에 맞지 않아 수입이 어려운 소품은 현장 사진을 토대로 직접 제작했다. 인기 높은 문어 미끄럼틀도 일본 기술자가 꼬박 한 달 동안 코펜하겐에 머물며 직접 제작한 것이다. 수페르플렉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극단적 참여(Participation Extreme)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5개국 출신 주민과 동행해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 수페르킬렌 공원으로 가져오고 싶은 시설물들을 고르도록 했다. 팔레스타인 이민 2세대인 10대 소녀 히바(Hiba)와 알라(Alaa)는 수페르플렉스 팀과 난생처음 중동 땅을 밟았다. 두 소녀는 동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서안, 시리아 국경 인근에서 흙을 가져와 검은 광장 언덕을 만들 때 그 위에 뿌렸다. 팔레스타인에서 실려 온 붉은 흙은 시간이 지나며 원래 있던 토양과 뒤섞였고, 이는 이민자를 덴마크 사회의 이웃으로 동화하는 수페르킬렌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1]
수페르킬렌 공원 ⓒSuperflex
지역 주민의 깊숙한 개입 덕분에 수페르킬렌은 주민들의 자랑스러운 공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빈민촌으로 비치던 과거가 무색하게, 이제 이곳은 코펜하겐 시민 누구나 방문하는 유명한 공원이 됐다. 2012년 완공 이후 뇌레브로의 수많은 지역 행사가 이곳에서 개최됐다.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광고 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범죄로 인해 공원의 동서로 분리되던 이웃들은 밝은 공원을 중심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교류하기 시작했고, 범죄는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주민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공원을 이용하니 공원이 훼손되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수페르킬렌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종교 및 민족 그룹의 통합을 추진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6 아가 칸 어워드(Aga Khan Award)를 수상했다. 2013년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 ‘올해의 디자인’ 후보에 올랐으며, 2013년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의 레드 닷 어워드(Red Dot Awared)에서 디자인 부문 최고상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를 수상한 바 있다.
 


서브컬처를 투어리즘으로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 ⓒWestblaak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Westblaak Skate Park)는 로테르담 도시 중심부에 있는 독특한 공공 스케이트 공원이다. 이곳은 본래 산책을 위한 공원으로, 면적이 넓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양쪽 측면이 차도로 갇혀 있어 활용도가 좋진 않았다. 비행 청소년들이 가끔 모이거나, 스케이트보드 혹은 일명 묘기용 자전거로 불리는 BMX(Bicycle Motocross)를 타는 사람들이 벤치나 난간을 이용해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묘기가 위협으로 느껴진 아이나 어르신들은 더욱 이 공원에서 발길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로테르담 시의회는 이러한 문제를 역발상으로 해결했다. 산책이 아닌 스케이트보딩을 위한 역동적인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렇게 이 산책로는 스케이트보드와 BMX를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2012년 겨울,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의 수명이 다해 교체할 시점이 왔다. 당시 이곳에 보다 전문적으로 설계한 스케이트보딩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로테르담 시의회는 스케이트보드 선수였던 얀네 사리오(Janne Saario)와 함께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프로젝트 전 과정은 다양한 스케이터 그룹과의 거버넌스를 통해 이뤄졌다. 그들의 협력과 조언을 받아 피루엣(Pirouette)[2] 공중 곡예를 위한 11개의 구역을 계획했으며 하프 파이프(half pipe), 미니 램프(mini ramp) 등 사용자에게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도입했다. 새 계획의 핵심은 전문적인 스케이트 파크를 만들되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다양한 사용자 그룹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3]

스케이트 파크 조성 후 이 어둡던 공원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는 보더 경연장이 됐다. 주말이면 유럽의 보더들은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이곳에 모이고, 로테르담 시민들은 이들의 묘기를 구경하고자 이곳에 모여든다. 사고가 발생하던 공원의 문제를 문제로 대하지 않고, 공원의 주요 사용자층이던 청년 보더들과의 거버넌스로 공원을 개선한 결과다.
 


도로를 마당처럼 쓰는 법


네덜란드 델프트(Delft)시의 주민들은 지난 1968년부터 좁은 도로에서 발생하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고자 자발적 캠페인을 시작했다. 도로에 화분을 놓거나 나무를 심어 차량 속도를 줄이는 등 도로의 물리적 환경에 변화를 줬다. 차량이 독점하던 도로를 생활과 사람을 중심에 둔 보행 환경으로 바꾸고자 진행한 보너르프(Woonerf) 프로젝트다. 

보너르프는 삶의 마당(living yard)이란 뜻으로, 보행자를 우선시한 보차 공존 도로를 지칭한다. 이면 도로나 간선 도로 등 중앙선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은 도로를 보행자의 안전 위주로 개선한 도로이다. 보차 공존 도로에서는 자전거, 자동차 등이 보행자의 보폭과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통행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불편하게 함으로써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주의 깊은 주행을 유도한다. 그 결과 해당 도로에 진입하는 차량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 캠페인은 이후 델프트 공과대학과 델프트시가 함께하는 공식 프로젝트로 지정됐다. 이후 보너르프로 지정한 도로에서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절반으로 감소하는 등 보행자 보호 효과가 확실해지자, 1976년 네덜란드 정부는 보너르프를 법제화했다. 현재 네델란드 도로교통법은 보행자가 보너르프의 모든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차량 운행 속도는 시속 15킬로미터를 초과할 수 없으며, 지정된 공간에만 주차가 가능하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너르프의 목적은 차량 속도 제한에 한정되지 않는다. 골목길을 시민들 간의 만남과 소통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였다. 차도와 보도 사이 단차를 완전히 없애 거동이 불편한 보행자의 편의를 더했다. 또 도로 전반에 걸쳐 테이블, 벤치, 모래 상자 등으로 여가 공간을 조성했다. 그 결과 어린이들은 안전한 놀이 기회를 얻는 것은 물론, 사회와의 접촉 기회도 자연스레 늘었다.[4]

이제 네덜란드에서 보너르프는 하나의 제도라기보단 생활 개념으로 정착했으며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다. 일본은 ’커뮤니티 도로(コミュニテイ道路)’라는 이름으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템포-30-존(Tempo-30-Zone)’이라는 이름으로 보너르프를 도입했다. 독일은 템포-30-존 설치 이후 주거지 내 도로의 평균 차량 속도가 시속 3~8킬로미터가량 떨어졌고 교통사고 발생량은 3분의 2가량으로 줄었다. 많은 차량이 이곳을 우회한 결과 보행자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개념으로 지난 2022년 7월 ‘보행자 우선도로’가 도입됐다.[5]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 통행이 차량 통행에 우선한다. 따라서 보행자가 차량을 피하지 않고 도로 전체를 통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시작해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진다. 차량과 보행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계획된 이 거리는 차도가 좁은 폭으로 나 있으며 차량 속도 저감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가로수와 화단이 조성된 보도에는 중간중간 휴식할 수 있는 벤치도 있어 시민들 및 주변 이용객들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로 자리 잡았다.
[1]
andersen, 〈“이민자를 이웃으로” 주민이 직접 꾸린 다문화 공원, 수페르킬렌〉, NAKED DENMARK, 2018.9.20.
[2]
움직이는 스케이트 보드 위에서 한 발을 축으로 몸을 360도 회전하는 기술을 뜻한다.
[3]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 《환경과조경》 2017년 9월호.
[4]
원호연, 〈[골목길 교통안전 ②] 네덜란드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어야”〉, 《헤럴드경제》, 2017.1.16.
[5]
KDI 경제정보센터, 〈보행자가 차량에 우선하는 “보행자우선도로” 본격 시행〉, 202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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