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노동은 노동력 부족의 해결책인가

2023년 3월 16일, explained

한국에서는 주 69시간 근로 제도가, 미국에서는 미성년자의 노동 규제 완화가 논의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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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미성년 노동에 대한 규제 완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아칸소주는 미성년자 고용 시 부모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기존 절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하이오와 뉴저지, 아이오와와 미네소타 등 다수의 주 정부가 유사한 움직임을 보인다. 미성년자를 과로와 위험한 산업 현장에 내모는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WHY NOW

미국의 미성년자 노동 확대 정책은 한국의 주 69시간 근무 제도와도 멀지 않은 문제다. 두 제도 모두 빠른 속도로 닥쳐오는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노동의 절대적 양을 늘리면 노동력 부족에 대응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목전에서 지금과 미래의 노동 패러다임을 진단해 본다.

아동 노동 규정

미국 노동부는 미성년자의 노동 시간, 가능 연령, 가능 직무 등을 정의하고 있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의 아동 노동 규정에 따르면, 14세 미만 아동은 집안일과 베이비 시팅 등의 가벼운 노동만 가능하다. 14~15세 청소년은 제한된 시간 동안 유해하지 않은 직종에서 근무할 수 있으며 16~17세 청소년은 유해하지 않은 직종에서 시간 제한 없이 고용될 수 있다. 모든 미성년자는 채굴, 위험 물질, 중장비 등을 다루는 직종에 고용될 수 없다.

더 많이, 더 쉽게, 더 길게

최근 몇몇 주 정부는 미성년자의 노동 시간, 연령 규정, 제한 직무에 관한 미세 규정을 완화 및 삭제하고 있다. 아칸소주의 부모 허가 제도 철폐는 미성년이 쉽고 빠르게 노동 시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한다. 오하이오주는 미성년자 근로 시간의 상한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아이오와주는 기존에는 금지됐던 육류 포장 공장 및 냉동고 등에서 14~15세 청소년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노동력 부족

법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 노동부는 비농업(nonagricultural) 분야의 신규 일자리가 31만 1000개 증가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업률은 3.4퍼센트로 5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할 곳이 넘치는데 노동자는 없다. 특히 제조, 서비스, 건설업 분야의 타격이 컸다. 미성년 노동 규제 완화 법안을 추진하는 오하이오, 뉴저지 등은 대표적인 제조업, 공업 집중 지역으로 꼽힌다.

선진국의 위기

부족한 노동력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특히 영국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 2월, 영국의 구인 광고는 14개월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산업 연합 ‘CBI’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네 개 중 세 개의 기업이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한 경제 손실액은 연간 300~390억 파운드에 이른다.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와 호주 등도 역대 최고치의 일자리 공석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는 미국의 움직임이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소리다.

악순환의 시작

노동력 부족의 원인은 다양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근로 환경의 변화, 저출생 고령화 흐름 등이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부족한 노동력은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을 가속화한다. 기업은 노동자를 유지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해야 하고, 부족한 인력 속에서 돌아가는 공장은 자연스레 효율성이 낮아진다. 인상된 임금과 낮아진 효율성은 생산 비용을 증가시키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오른다. 미국의 아동 노동 규제 완화, 한국의 주 69시간 제도 등 노동의 양을 늘리는 것은 이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

대표적인 노동력 부족의 해결책은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다. 그러나 철저한 대비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 유입은 단기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비숙련 노동자가 문제가 된다. 이른바 ‘대타 인력’이라 불리는 외국인 근로자의 상당수가 기량 미달 판정을 받고 있다. 정부까지 소매를 걷고 나섰다. 지난 3월 15일, 고용노동부는 외국 인력에 대한 수요 증가에 따라 ‘비숙련 기능 비자(E-9)’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3~4주간의 직업 훈련을 제공할 것이라 밝혔다. 뿐만 아니다. 지난 3월 2일 포천에서 발생한 외국인 근로자 사망 사건은 노동 환경과 불법 체류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였다. 다문화 시대에 대한 포용,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 숙련도에 대한 대응 없는 외국인 근로자 유입은 잠시의 땜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시대착오적 해결책

지금 논의되는 해결책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긴 노동 시간, 더 많은 노동자 확보 등 노동의 양에 집중하는 방향이 시대적 흐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 시간, 노동자의 수가 생산성과 정비례했던 때는 1800년대 후반 영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노동력을 생산하는 구조는 1차 산업혁명 시기의 것과 유사하다. AI의 고도화와 고령화라는 변화를 직면한 시대의 노동 문제는 노동자와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IT MATTERS

현재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 주 69시간 근로 제도는 미국의 미성년 노동 확대와 멀지 않은 문제다. 노동력 부족을 노동 시간의 연장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근무가 10시간으로 늘어나면 사라진 노동력만큼의 생산력이 되돌아올까? 노동자가 더 많아지는 것만으로 우리는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질문이 1800년대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력에 대한 재정의다. 주 4일제는 고령화 시기에 맞춰 노동 가능 연령을 늘리는 방법일 수 있다. 현대의 생애 주기에 맞춘 노동 연령의 변화는 연금, 보험 등의 사회적 비용 역시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특정 직종을 기피하는 문제도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기술적 흐름에 맞춘 포용적인 노동 환경은 필요조건이 됐다. 미래의 노동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성적으로 이어져 온 기존 착취 구조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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