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과 일본의 속내

3월 17일, explained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일본 정부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있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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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이 16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다. 셔틀 외교 재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해제,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 외교·경제 당국간 전략 대화 복원 등이 결과로 꼽힌다. 꼬여 있던 한일 관계에 대한 복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듯하다. 하지만 강제동원에 대한 직접 사과가 없다는 점에 아쉽다는, 나아가 일본의 전범행위에 면죄부를 주어 굴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WHY NOW

외교는 물밑 싸움이다. 성명, 선언 같은 결과는 실무자들이 말을 맞춰놓은 후 그야말로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해외 타국에 당사국들의 외교 상황을 알리는 대외용이자, 국내 정치를 위한 내수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내용 메시지는 명확하다. 과거를 뒤로 하고,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렇다면 기시다 후미오가 자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뭐였을까? 일본 국내 정치를 통해 알아보자.

다가오는 선거

올해 4월 말에는 일본 통일지방선거와 참의원(상원)·중의원(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중의원 보궐 선거구 중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제4선거구도 포함된다. 기시다 총리는 다가오는 선거에 대해 “여당으로서 확실한 성과를 내고 싶다”며 승리를 위한 단결을 촉구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선거가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승리하지 못하면 취임 2년도 채 되지 않은 총리의 힘이 빠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기시다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지지는 내내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강제 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을 내놓자, 7개월 만에 처음으로 긍정 여론(41퍼센트)이 부정 여론(40퍼센트)를 앞질렀다. 지난달에 비해 5퍼센트포인트 오른 수치였다.

기시다 후미오

굉지회(宏池会)의 수장인 기시다 총리는 일반적인 평가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개헌보다는 경제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에 대해 “위안부 합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라고 평가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발표할 당시 기시다는 외무상이었다. 당시 합의는 ‘최종적·불가역적’ 성격을 지녔다고 이야기했으나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 합의가 파기되고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었다. 기시다에겐 트라우마가 될 만한 사건이었다. 지난 1월, 일본 외무상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10년 된 주장이다. 2014년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인 시마네현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당대회 연설에서 아베 총리 집권 시작점인 2012년부터 현재까지를 “민주당 정권에 의해 잃어버린 일본의 자랑과 확신, 활력을 되찾은 전진의 10년”이라고 평가하며 “다음의 10년을 위한 새로운 첫발을 내딛겠다”라고 밝혔다. 그 첫 발은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확보와 개헌을 말한다. 특히 개헌에 대해서는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베의 그림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언론은 그를 ‘야미쇼군(闇將軍·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 불렀다. 스가, 기시다의 새 내각이 들어섰지만 두 총리 다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였다. 우리가 일본 정치에 대해서 가지는 상식 하나가 있다. 일본의 정치사는 자민당의 정치사이고, 자민당의 정치사는 당내 파벌의 정치사라는 것. 아베 신조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소속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아베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와 극우 인사 다카이치 사나에가 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지지까지 했던 인물들이다. 아베가 사망한 지 한 달 정도 된 2022년 8월 기시다 총리는 제2기 개조내각을 출범시킨다. 그리고 하기우다 고이치와 다카이치 사나에를 내각에 포함한다. 경제는 ‘탈 아베’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와 외교는 과연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을까. 아니, 벗어나고는 싶었을까,

아베 신조 이전의 자민당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항상 상징처럼 나오는 게 있다. 일본 측의 담화이다. 그중에서도 고노 담화는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자민당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을 지내던 고뇨 오헤이가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담화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이즈미 이전, 90년대까지만 해도 자민당이 극우적인 인사들 일색인 정당은 아니었다. 개헌보다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는 온건파도 존재했다.

아베 신조 이후의 자민당

고노 요헤이의 아들이 기시다 다음으로 아베 내각의 외무상을 지낸 고노 다로이다. 고노 요헤이는 꾸준히 아베 정권을 비판해 왔다. 아베 내각이 고노담화에 대해서 재검증한 데 대한 비판을 한 것이다. 아베 정권이 독재와 다르지 않다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버지 고노가 아들 고노를 비판한 적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고노 다로 외무상이 종전선언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표현했는데, 이에 대해 ‘민족 화해를 방해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일본 정치계가 본격적으로 우경화된 시기는 2012년 아베 2기 내각이 출범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아베는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문제, 평화헌법 개정 및 ‘보통국가화’를 정치적 사명으로 삼아 왔다. 이 시기가 지나면 자민당 내 온건파라고 해도 개헌에 대한 문제의식과 필요성은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기시다 정권은 그 결과이다.

전쟁과 평화 사이, 보통 국가

일본은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되기 원하면서,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처럼 비쳐지길 바란다. 이걸 다시 말하면 전범국에서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비단 정치 영역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아베 총리는 슈퍼마리오로 변신했고, 공식 마스코트 앰버서더로 여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선정했다. 2020 도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1년 열린 올림픽은 아베 총리가 전 세계에 일본이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국가가 되었음을 이벤트로써 보여준 사건이었다. 내적으로는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통해 전쟁이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자국민에게 이야기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은 하되 직접적인 사죄 표현은 피했다. 사과의 흉내만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인 두 명 중 한 명은 패전일에 가해나 반성에 대한 언급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트라우마

아베 2기 내각의 극우화 드라이브는 일본 정치사에 있었던 단 한 번의 정권 교체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일본은 55년 체제를 68년째 유지하면서 단 한 번의 정권 교체를 겪었다. 2009년,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의 하토야마 유키오가 정권을 잡은 후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등 두 민주당 총리의 집권이 2011년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오키나와 미군부대 철수 문제로 미일 관계는 갈등을 겪는다. 오자와 이치로 당시 민주당 간사장은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린다. 당시 민주당은 ‘반 자민당’ 기치 하에 모여서 내부 결속력도 약했다. 무엇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다. 이 시기의 정권 교체는 일본 전체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일본 국민들은 야당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되었다.

IT MATTERS

일본 정치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다. 일본 시민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 그래서 늘 자민당만 당선된다는 것, 자민당 정권은 늘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원한다는 것. 고정된 이미지가 생긴다는 건 그런 현상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다. 일본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다. 자민당 정권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정치 내에 새로운 세력이 혜성처럼 등장해 권력을 잡을 가능성도 낮다.

윤석열 정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또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일본 관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비해 성과, 즉 국익은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우리로선 실익이 없고, 정작 화이트리스트 복귀는 합의 불발 상태다. 외교는 국익이 최선인데 국익보다는 상대의 이익과 고자세가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태도에 비해 과하게 낙관하고, 물컵을 채워줄 것을 기대하며 앞서가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외교 무대의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국내 여론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우리에게 불리한 제안이 들어올 때 국내 여론과 지지율을 무기 삼아 그 제안을 저지해낼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을 또 하나의 대화 파트너로 여기고 자꾸 말을 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국민은 정부의 대화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한 모습이다. 오히려 상대국인 일본에게만 적극적인 대화의 자세를 취한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깝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것은 없다. 하지만 나서서 찬물 마시다가는 금세 체할 수 있다. 대화를 먼저 시작해야 할 파트너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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