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가 말하는 것

3월 20일, explained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다극화 시대의 레퍼런스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중동의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현지 시간 3월 6일부터 두 나라는 베이징에서 회담했고 나흘 뒤 공동 성명을 냈다. 국제 사회는 환영 인사를 보내는 한편 난제를 풀어낸 게 중국이라는 점에 경악했다. 중동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무너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WHY NOW
 
이번 국교 정상화는 엄청난 외교적 성과다. 1970년대부터 대결해 온 대표적 라이벌을 화해시킨 사건이자 중동 역내 안정의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중동 내 미중 세력 균형이 뒤집힐 수 있다는 암시기도 하다. 미중 갈등의 심화로 선택을 강요당하는 한국도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국교 정상화의 배경과 과정을 돌아보며 성과의 주역이 누구인지, 어떤 외교적 판단이 작용했는지 돌아본다.

1970’s
 
1970년대 초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대신 석유 결제를 달러로만 할 것을 제안한다.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다.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대통령 중심의 신정 공화정이자 반미 국가가 된다. 혁명을 수출하려는 이란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왕정 국가에 위협적이었다. 세계 최대의 원유 산지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이 두 나라 사이에 있어 안보 불안은 곧 경제 불안이기도 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주변국에서 내전으로 번졌고 이란은 핵 개발에 나선다.

동맹의 균열
 
이후 사우디는 미국과 석유 증산·감산 문제로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다. 미국은 2011년 셰일 가스 개발을 본격화하며 셰일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산유국들에 큰 위협이 된다. 한편 대규모 숙청과 함께 등장한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는 자신을 비판한 반정부 기자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연루된다. 친사우디, 반이란 노선을 보이던 트럼프 정부마저 우려를 표했고 바이든 정부는 노골적으로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틀어지고 만다.
 
바이든의 두 뺨
 
사우디는 이후 바이든의 뺨을 두 번 때린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유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바이든은 고자세를 접고 사우디에 방문한다. 바이든은 화해 무드를 연출하며 증산을 요청했지만 사우디는 곧바로 대규모 감산을 결정한다. 이번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베이징에서 연출한 것 역시 바이든에게 굴욕적이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한 미국이 중동 안정화에 실패한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변절?
 
사우디는 중국으로 돌아선 걸까? 둘의 밀월을 보여주는 지표는 많다.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석유 수입국으로 무려 4분의 1을 수입한다. 중국은 지난 3월 14일 사우디 국영 은행에 무역 대금 결제용 위안화를 풀며 페트로 위안 시대를 암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이 사우디에 제공하지 않는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제공하며 제조 기술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수입하는 무기의 60퍼센트는 여전히 미국산이다. 중국산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거래 불발
 
사우디는 미국과 절연한 걸까? 두 나라는 여전히 안보·경제에 있어 이익 공동체다. 다만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에 불만이 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부터 중동 관여를 축소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2019년 이란이 사우디의 정유 공장을 공격해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5퍼센트가 줄었지만 미국의 군사적 대응은 없었다. 감산 이후 미국은 사우디에서 예멘 반군을 방어할 미사일 방어 시스템도 철수했다. 사우디는 똑똑해지기로 한다. 더 이상 사우디가 미국의 자동적 동맹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비동맹 외교
 
빈 살만은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 성과를 안겨줄 ‘비전 2030’을 반드시 완수해야 했다. 결국 그는 이란과 직접 관계 회복에 나선다. 국제 제재와 히잡 시위로 위기 상황이던 이란과도 이해가 맞았다. 사우디와 이란은 중국 없이도 관계 회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네옴 시티에 대한 투자와 무기 기술을 준 중국에 외교적 성과를 안겼다. 한편으로 국교 정상화 이후 미국의 보잉사와 46조 원 규모의 항공기 주문을 체결해 미국을 달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사우디의 행보를 비동맹(non-aligned) 외교 실험이라 평했다.
 
MBS의 판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빈 살만 체제의 사우디는 완전히 다른 외교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비판한다. 사우디를 신냉전 블록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기사에 따르면 사우디는 제3 세계로 대표되는 신흥 시장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될 것이라 본다.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외교 행보가 가능한 이유다. 가치 기반의 국제 질서보다 실용주의를 택함으로써 사우디는 다극화 시대의 새로운 외교적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IT MATTERS
 
난세에 필요한 유연한 사고는 인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도는 다자 동맹 외교를 펼친다. 반중을 위시한 안보 협력체 쿼드에서 미국·일본과 손을 잡았음에도 중국·러시아가 참여한 상하이협력기구(SCO)에 가입돼 있다. 남미를 포괄한 브릭스(BRICS)도 가시화하고 있다. 사우디와 인도는 같은 실용주의면서도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패권국들이 이들 국가에 쩔쩔매는 이유엔 이들이 가진 자원 혹은 인구 외에도 냉전식 사고를 탈피한 외교 정책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정상 회담을 미래지향적 행보라 자평한다. 반도체 부문 협력 약속과 지소미아 복원으로 이는 일견 실용주의적 외교로 보인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무작정 반대하는 국민 역시 거의 없다. 2022년 9월 한국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 싱크탱크인 ‘겐론NPO’가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81.1퍼센트가 ‘역사 갈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지난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부정 평가는 60퍼센트에 육박했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일본 관계·강제 동원 배상 문제와 외교가 각각 15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정부의 결정이 ‘외교적 실책’이라는 방증이다. 강제 징용 문제는 건조하게 봐도 한국 정부의 외교적 무기다. 이를 선제적으로 내려놓은 것엔 동북아 안보를 우려한 미국의 입김이 있다. 결국 냉전식 사고의 반복이다. 이념과 당파 논리를 넘어 득실을 계산해야 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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