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이기는 선거 제도

3월 21일, explained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적 효능감을 도둑맞아왔다. 다음번엔 안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힘없는 계층일수록 사회적 목소리가 작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목소리를 내도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선거 제도는 1등의 목소리만 남기는 승자독식 구조다. 이를 바꾸기 위한 국회 논의가 다음 주부터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논의 시작도 하기 전에 파열음이 나온다. 각 당의 셈법이, 그리고 의원 각자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WHY NOW
 
정치는 어렵다. 선거 제도와 같은 정치구조는 특히 더 어렵다. 그러나 유권자가 이해할 필요 없는 선거 제도란 민주주의 사회에 없다. 나의 한 표는 어차피 버려질 것이라는, 국회는 어차피 정해진 플레이어들만의 닫힌 경기장이라는 생각이 각자도생의 문화를 더욱 부추긴다. 이래서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들다. 이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작은 목소리, 낮은 투표율
 
권리를 침해당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 선거일에도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 소득이 적고 학력이 낮을수록 정치 및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조사다. 이러한 경향은 투표에 대한 성향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소득 및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응답이 적었다. 이유는 ‘정치적 효능감’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 표가 버려졌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즉, 효능‘감’이 낮은 것이 아니라 ‘효능’이 낮다. 숫자가 증명한다. 지난 2020년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버려진 표, 즉 ‘사표’의 비율은 43.7퍼센트였다. 절반 가까운 유권자의 의견이 무시되었다는 얘기다. 정당별 득표율과 실제 의석 비율도 동떨어져 있다. 대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도 숫자가 말한다. 21대 총선 결과만 놓고 보면 지역구 선거는 12만큼, 비례대표 선거는 6만큼 동떨어져 있다. 선거 결과의 불비례성을 측정하는 갤러거 지수 얘기다. 2017년 선거 기준으로 독일은 1.95, 뉴질랜드는 2.73을 기록했다. 캐나다 하원은 이 지수가 5 이하인 선거제도를 설계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소선거구제 = 승자독식
 
분명 민주주의 국가인데, 유권자의 의견대로 국회가 구성되지 못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소선거구제다. 선거구를 좁게 설정하고 한 명의 대표자를 뽑는 제도다. 즉, 한 지역구에 한 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다. 선거 결과가 51:49라면 49퍼센트의 유권자 의견은 정치에 반영될 수 없다. 승자 독식이다. 또, 지역적 정치색이 강한 경우 일당 독재에 가까운 결과가 지속될 수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의 보수정당 지지자, 경상북도 영덕군의 진보정당 지지자는 평생토록 자신을 대변할 국회의원을 뽑을 수 없다는 얘기다.
 
21대 총선의 트로이 목마
 
결국 바꿔야 한다.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은 높여야 한다. 공감대는 있다.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다. 이전에도 시도는 있었다.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적용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다. 한 정치인이 “세부 내용은 국민이 알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복잡한 방식이었지만, 큰 틀에서 설명하자면 정당 득표율보다 지나치게 많이 지역구 의석을 가져간 정당에는 비례 의석을 덜 주는 것이 핵심이다. 즉, 지역구에서 승자독식 한 정당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덜 주겠다는 얘기다.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이 방식은 ‘해킹’당했다.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트로이 목마가 등장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이 비례 의석을 나눠 가졌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한 달도 남지 않은 막차
 
내년 4월로 예정된 22대 총선은 다를 수 있을까. 시도는 있다. 선거제 개편의 막차를 잡아타기 위한 시도다. 여야 모두가 참여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세 가지 개편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국회의원 29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공개 토론에서 오는 27일부터 2주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어두고 논의해 결론을 내자는 것이다. 공론조사도 실시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선거제 개편에 반영하겠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의 이유
 
그런데 제도 개편 막차, 출발도 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정개특위의 세 가지 개편안 중 두 가지에 여당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을 50명 더 뽑는 안이다. 사실,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는 비례대표 의원이 50명 더 뽑히면 비례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힘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그래서 더 뽑자는 얘기에는 부정적인 국민 여론도 부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과 69시간제 이슈로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리는 정국에서 여당이 국회의원을 더 뽑자는 논의에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결국 전원위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유

세 번째 안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중대선거구제를 대도시 등 인구가 많은 지역구에만 도입하는 방법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쉽게 말해 선거구를 크게 묶어 2명 이상의 당선인을 내는 안이다. 소선거구제의 반대다.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대략 2명에서 4명까지 선출하면 중선거구제, 5명 이상을 선출하면 대선거구제로 분류한다. 대선거구제는 이른바 ‘텃밭’ 정치인에게 불리하다. 텃밭 주인들이 다 가져가던 4개 이상의 선거구를 새로운 세력들과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민주당 의원, 영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불리하다는 뜻이다. 이번 방안은 대도시, 즉 수도권이 주요 타깃이다. 세 번째 안은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게 될 공산이 크다.

IT MATTERS
 
이번에 논의 될 세 가지 안을 살펴보면 이름부터 어렵다. 1안은 소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2안은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3안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더 복잡하다. 표에 죽고 사는 국회의원들의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당, 지역구에 따라 입장이 다 다르다. 이 복잡한 논의에서 유권자는 그동안 제외되어 왔다. 그리고 나의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표를 던진 정당이 충분히 의석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당연한 듯 지켜봐 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김기태 연구위원은 취약계층이 사회참여 양극화에 따른 악순환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니 정치 및 사회 참여가 낮아지고, 그래서 이들은 과소 대표된다.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 작은 사람들의 의견과 이해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그 결과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진다.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알아서 살아남을 방법에 몰두하게 되어있다.

1등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지금의 선거 제도가 달라진다면, 절대다수에 속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누군가가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생긴다. 나에게 이로운 미래가 한 발짝 가까워진다. 문제는 그 변화의 열쇠가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표심이다. 그리고 그들을 흔들 수 있는 것은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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