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2023년 3월 22일, explained

유엔 세계행복보고서가 발간됐다. 우리나라는 관용(Generosity) 수준이 낮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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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국제 행복의 날로 지정한 지난 3월 20일,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WHR)를 발간했다.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37개국 중 57위를 기록했다. 핀란드는 6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고 아프가니스탄이 최하위로 나타났다. 전쟁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70위와 92위였는데, 자비심(benevolence) 항목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앞질렀다.

WHY NOW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엔이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운 여섯 가지 측정 기준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보다 30위 앞서지만, 관용(Generosity) 항목에서는 뒤처진다. 우리나라가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사회라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 있다. 진짜 이유를 찾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세계행복보고서

행복을 기준으로 전 세계를 줄 세운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유엔 자문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매년 세계의 행복지수를 측정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국제 행복의 날에 맞춰 발표한다. 유엔이 직접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갤럽세계여론조사(GWP)가 매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는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SWB)에 관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는 것이다. 이전 3년치 데이터를 반영한다.

여섯 가지 측정 기준

주관적 안녕이란 추상적인 개념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검증 항목은 총 여섯 가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건강기대수명,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부패지수, 관용이다. 각 항목을 각국 1000명의 국민에게 캔트릴(Cantril) 사다리 척도를 사용해 질문한다. 0과 10을 각각 최악, 최상의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본인의 삶은 어느 정도에 위치해 있는지 묻는 것이다. 2020~2022년 점수의 평균값이 이번 세계행복보고서에 담겼다.

엘살바도르보다 아래

역시나 상위권엔 북유럽의 복지 국가가 자리했다.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5계단 상승해 세계에서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나타났다. 뒤로 80여 개국이 더 있지만, 국내 언론들은 낙제점 성적표를 받아든 것처럼 보도한다.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엘살바도르와 아르헨티나보다 낮은 순위다. 두 나라는 각각 50위와 52위를 기록했다. OECD 38개국으로 좁히면 결과는 더욱 안 좋다. 뒤에서 네 번째다.

전쟁 속 증가한 자비심(benevolence)

세계행복보고서의 취지는 현재를 진단하고, 행복 증대 정책의 레퍼런스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보고서는 행복감을 다방면에서 살피기 위해 매년 새로운 항목을 추가한다. 2018년 발표된 보고서는 행복감과 이주의 관계를 분석했고 지난해 보고서는 유전적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올해 보고서는 전쟁과 행복감의 관계에 주목했다.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국민의 행복감은 줄었지만 자비심, 정부에 대한 신뢰는 높아졌다. 특히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우크라이나의 자비심 항목에 대한 긍정 평가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 의식이 더욱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고통이 연대 의식으로

이번 보고서에 포함되는 2020~2022년은 코로나19, 경기 침체, 전쟁 등이 일어난 시기다. 전문가들은 세계 전반에 걸쳐 행복감이 하락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는 빗나갔다. 여섯 가지 측정 기준 중 사회적 지원, 관용의 영향이 크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AXIOS》는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세계가 직면한 ‘확실한 고통(undoubted pains)’이 상쇄됐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회적 지지에 대한 긍정 평가는 외로움을 두 배 앞섰고, 관용에 해당하는 자원봉사와 기부는 25퍼센트 증가했다.

늘어난 기부

기부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다. 위기 속에서 세계기부지수가 올라 갔다. 2019년 33퍼센트에서, 2021년 40퍼센트로 증가했다. 세계기부지수는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과 미국의 갤럽이 전 세계 11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기부뿐만 아니라 자원 봉사, 낯선 사람을 돕는 것까지 종합적으로 수치화한다. 기부지수는 위기 상황 속 저소득 국가에서 눈에 띄게 늘었다. 팬데믹 동안 우크라이나, 잠비아가 세계기부지수에서 영국을 제칠 정도였다. 한편, 우리나라는 88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이는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기부를 하지 않아서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보탬으로써 이루고픈 공동의 목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보고서는 공동체 의식이 행복감을 높이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다. 지난해 보고서에는 디스토피아 지수가 포함됐다. 여섯 가지 기준의 최하위값을 더해 만든 가상의 나라 디스토피아를 가정하고, 이곳에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 같은지 묻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측정하기 위한 항목이다. 해당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01위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내가 속한 공동체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재하다는 뜻이다.

IT MATTERS

세계행복보고서는 소득, 건강, 의지할 친구, 선택의 자유, 관용,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신뢰, 이렇게 여섯 가지를 가진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되는 관용은 개인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이번 보고서는 강조한다. 말로만 듣던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것도 데이터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시장 조사 기업인 입소스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 주요 32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중국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31위였다. 중국의 세계기부지수 순위는 10년에 걸쳐 상승해 왔다. 2021년 기준 49위로 약 90위나 올랐는데 그 배경으로 시진핑 주석이 주력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운동이 지목된다.

5년간 세계기부지수 1위를 유지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 성인 10명 중 8명은 기부한 적이 있으며, 6명 자원봉사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세계행복지수로 따지면 인도네시아는 5.240점으로 87위다. 5.935점으로 57위를 차지한 우리나라와 점수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관용 항목은 인도네시아(0.422)가 크게 앞서고 있다. 같은 항목에서 우리나라(0.112)는 러시아(0.120)의 수준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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