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를 이긴 쿠팡의 유통 전략

3월 29일, explained

쿠팡이 로켓 배송을 일반 판매자에게도 확장한다. 값을 치르는 것은 쿠팡이 아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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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3월 27일 풀필먼트 서비스 ‘로켓 그로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판매자가 수량, 가격, 할인율을 설정하면 쿠팡이 수요 예측을 분석해 물류 센터 입고 요청을 하고 이후 보관, 포장, 배송, 반품 등의 CS까지 맡아준다. 쿠팡 물류 센터에 물건이 있으니 로켓 배송 효과가 난다. 쿠팡 내 다른 택배를 사용하던 일반 판매자의 상품이 로켓 배송에 편입될 수 있고 이참에 쿠팡으로 갈아타는 판매자가 여럿 나올 수 있다. 이커머스와 택배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WHY NOW

쿠팡은 주로 생활과 밀접한 상품을 판다. 쿠팡에서 뭔갈 산다면 당장 필요하니 빨리 와야 하거나, 자주 쓰니 저렴해도 괜찮은 상품이다. 쿠팡은 다이소처럼 생활 전반을 파고들었고 저렴한 제품을 빠르게 배송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과 신속한 배송엔 값이 든다. 그 값을 이제껏 누군가 치러왔을 뿐이다. 쿠팡이 몸을 틀면 대중의 소비 생활에도 영향이 간다. 업계의 지각 변동과 쿠팡의 전략을 분석해 그 여파를 짚어본다.

왕좌의 게임

2022년 국내 이커머스 업계엔 지각 변동이 있었다. 삼파전이던 게임이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 구도로 정리됐다. 새로운 도전자들은 1세대 이커머스를 흡수하며 이합집산을 연출했다. 지마켓을 품은 이베이코리아를 품은 신세계는 SSG닷컴과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3강 구도에서 탈락했다. 큐텐은 티몬 인수에 이어 위메프, 인터파크 커머스 부문을 탐내며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아마존은 11번가를 통해 해외 직구를 늘렸다. 잔혹사 끝에 왕관은 쿠팡에게 돌아갔다.

쇼핑은 배송이다

쿠팡과 네이버는 다양한 승부처에서 전면전을 벌인다. 그중 소비자의 체감이 큰 건 역시 배송이다. 쿠팡은 이미 ‘로켓 배송’과 ‘쿠팡맨(친구)’으로 택배의 리브랜딩에 성공한 바 있다. 컬리도 신선 식품의 ‘새벽 배송’으로 이미지를 선점했다. 네이버는 고심 끝에 지난해 12월 배송 지연시 보상금을 주는 ‘도착 보장’을 내걸었지만 론칭 한 달의 이용률은 10.5퍼센트에 그쳤다. 소비자는 빠른 배송을 원한다. 쿠팡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고 로켓 배송을 늘리기로 한다.

쇼핑은 물류다

사실 로켓 그로스는 원래 있던 서비스다. 쿠팡에서 ‘제트 배송’으로 분류되던 상품들이 그것이다. 쿠팡은 상품을 직매입해 파는 로켓 배송, 풀필먼트 서비스(3자 물류)를 통한 제트 배송, 셀러가 알아서 택배를 보내는 마켓플레이스(오픈 마켓) 상품으로 나뉜다. 이번 발표는 마켓플레이스 셀러들의 제트 배송 편입을 위한 접근성 강화와 절차 간소화 등이 골자다. 쿠팡의 속내는 단지 배송에서의 속도전이 아니라 풀필먼트 강화다. 3자 물류 시장을 잡겠다는 공산이다.

아마존을 따라가는 쿠팡

그간 쿠팡 매출 비중은 직매입이 90퍼센트였다. 왜 갑자기 3자 물류를 강화할까? 재고 부담이 없고 추가 투자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쿠팡의 롤모델 아마존도 2015년 오픈 마켓 비중이 직매입 비중을 넘어서며 대규모 적자를 줄였다. 지금 아마존 내 풀필먼트바이아마존(FBA)의 비중은 60퍼센트에 육박한다. FBA는 쿠팡풀필먼스서비스(CFS)의 전신이다. 쿠팡은 올해 로켓 그로스의 비중을 20퍼센트까지 목표한다. 6조 원을 들여 구축한 물류 인프라의 추가 매출인 셈이다.

알리바바를 따라가는 네이버

네이버도 풀필먼트(NFA)가 있다. 다만 대부분을 판매자나 업체의 인프라에 기댄다. 신선 식품은 홈플러스, 생필품은 대한통운과 같은 식이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 등 택배 회사들과 물류 연합군을 꾸렸다. 필요한 인프라만 제휴하는 ‘에셋 라이트(Asset Light)’ 방식이다. 알리바바가 이런 물류 생태계를 갖고 있다. 네이버는 3자 물류에 컨설팅 및 IT 서비스 제공을 결합한 4자 물류를 꿈꾼다. 시설 투자 비용이 매우 적어 인프라 확장성이 높지만 업체를 초월한 합배송이 불가한 게 약점이다.

로켓 그로스의 함정

이러니 소비자 입장에선 쿠팡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판매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3자 물류는 전 과정에서 수수료가 과도하게 떼인다. 판매자가 수수료를 감안하고 원하는 것은 상품에 붙는 ‘로켓 배송’ 등 뱃지와 로켓 필터 노출인데 이조차 함정이 있다. 로켓 그로스가 직매입보다 유리한 것은 상품 가격 설정의 자율성이다. 쿠팡의 로켓 그로스 홍보 영상에는 가격 경쟁력에 따라 뱃지 부착이나 필터 노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단서가 있다.

잘 팔릴수록 힘들다

여기에 더해 판매자들 사이에선 쿠팡의 정산이 늦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2021년 쿠팡 등 대규모 유통 업자가 직매입 거래를 할 때 60일 안에 대금을 지급하게 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적용되는데 쿠팡에겐 허사였다. 유통 업계는 통상 50일 안에 대금을 지급하는데 쿠팡에게 대금 지불을 늦출 핑곗거리가 생긴 꼴이기 때문이다. 상품이 잘 팔릴수록 쿠팡의 생산 요구는 늘어나는데 입금은 늦어지니 유동성 문제도 생긴다.

IT MATTERS

쿠팡이 매출 1위로 올라설 수 있던 것에는 소비자의 신뢰가 있다. 쿠팡은 99퍼센트의 도착 보장률과 가격 경쟁력으로 구매력이 좋은 4060 신중년의 ‘최애 앱’이 됐다. 3자 물류의 확대는 늘 그랬듯 소비자에게 수혜로 작용할 것이다. 상품이나 배송에 문제가 있을 때 책임 소재나 대응에 있어 문제가 예상되지만 가격과 배송의 이점을 상쇄할 수준은 아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쿠팡의 3자 물류 확대는 긍정적이다.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처럼 확실한 캐시 카우가 생길 때까지 쿠팡은 안정적으로 시장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쿠팡에 영광을 안겨준 것은 아마존식 ‘플라이휠’ 전략이다. 이에 따라 ‘계획된 적자’로 이윤을 남기지 않고 시장을 잠식했다. 그 과정에서 쥐어 짜인 것은 판매자와 노동자다. 아무리 직매입 비중이 높아도 쿠팡은 중개형 플랫폼이다. 판매자도 고객인 셈이다. 자발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요구하는 로켓 그로스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가 판매자 수수료를 2퍼센트로 책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쿠팡은 2021년 기준 6만 8000명에 달하는 직웓들의 고용주이기도 하다. 2020년 칠곡 물류센터 근무 후 과로사한 노동자에 대해 산재가 인정됐지만 쿠팡의 대처는 미흡했다. 유가족은 결국 28일 쿠팡 측에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쿠팡이 완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플라이휠이 멈출 때 그 대가는 언제든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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