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민이 할 일

4월 4일, explained

나무를 심기에는 식목일이 너무 덥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스위스 할머니들이 정부를 고소했다. 이유는 ‘기후 변화’다. 기후 변화로 죽음에 이를 처지인데 스위스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명권과 건강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지난달 2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ECHR(유럽인권재판소)에 스위스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에 나섰다. ECHR이 기후 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건을 심리하게 된 첫 사례다.

WHY NOW

‘가치 소비’는 2020년대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그러나 친환경은 시민의 선의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숫자가 명징하게 드러낸다. 탄소 중립을 회피하는 기업과 그런 기업에 숨통을 틔워주는 정부 사이에서 기후 재난을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그중에서도 취약한 시민들이다. 기후 위기가 세대의 문제라는 프레임, 개인의 선한 영향력에 호소하는 캠페인 앞에서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대 말고 계층

기후 문제는 미래를 향한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기후 문제는 이미 현실이며, 그로 인한 재난은 미래가 아닌, 낮은 곳을 향한다. 폭염, 한파, 홍수, 가뭄 등에 가장 취약한 것은 노약자와 장애인 등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극한 폭염이 발생했던 2018년도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 중 75퍼센트가 60대 이상이었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희생된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희생자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었다.

3154억 원, 2439억 원

작년 여름은 가혹했다. 8월의 중부지방 집중 호우는 3154억 원만큼, 다섯 차례나 찾아왔던 태풍은 2439억 원만큼 가혹했다. 각각의 재난이 남긴 재산 피해 액수다. 남부지방의 가뭄일수는 1974년 이후 가장 많은 227.3일이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간한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저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에 전 국가적인 피해를 일 년 내내 겪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이미 진입했다는 방증이다.

수상한 기후 보고서

그런데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다. 이상기후의 사례와 직접적인 원인, 그 피해 상황까지 꼼꼼하게 분석한 보고서에 ‘기후변화’나 ‘기후 위기’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년 중부지방 집중호우의 원인 분석은 “우리나라 북서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되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중부지방 부근에서 충돌하면서, 정체전선에서 발달한 폭이 좁고 강한 비구름대의 영향을 받았음”이라고 되어있다. 즉, 비가 올 기상 상황이 되어 비가 왔다는 얘기다. 그 이례적인 기상 상황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이유, 지구온난화는 세계의 이상기후를 짚는 보고서 후반부에 배경으로 제시될 뿐이다.

이유를 말 못 하는 이유

언뜻 이해하기 힘든 논조지만, 정부의 탄소 정책 방향을 보면 쉽게 납득이 된다. 지난달 발표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계획’에 따르면 현 정부 임기 5년 중에는 목표치의 25퍼센트만 온실가스를 줄이게 되어있다. 나머지 75퍼센트는 다음 정부 초반 3년간, 2030년까지 감당해야 한다. 또,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가 14.5퍼센트에서 11.4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약 800만 톤가량의 이산화탄소를 기업들이 더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정부가 지구온난화를 재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면 이와 같은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탄소배출, 100만 톤 클럽

정부의 목표치 조정에 산업계는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과연 그럴까. 73개 기업에는 그럴지도 모른다. 사단법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4분의 3이 73개 기업에서 배출된다. 한 해 배출량이 100만 톤을 넘기는 이른바 ‘100만 톤 클럽’이다. 이 중 포스코와 현대제철, 삼성전자와 발전 부문 등 상위 10개 기업이 국가 총배출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기업이 선한 이미지의 배우들을 내세워 광고하는 대로 시민들이 텀블러를 사용하고, 에코백을 사용한다고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의 캠페인처럼 패트병 구겨서 버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안전한 사람들의 결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열쇠는 정부나 기업이 쥐고 있지 못하다. 돈 때문이다. 기업은 실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의 결정권자는 폭우나 가뭄 때문에 당장의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올해의, 이번 분기의 영업이익을 위해 탄소 중립이라는 아젠다는 후순위로 밀어두게 된다. 정부도 기업의 실적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성장했다는, 나라 경영을 잘했다는 평가가 필요하다. 정책 결정권자도 기후 재난에 대한 취약 계층은 아니다. 결국 이번 정권의 성과를 위해 탄소 중립이라는 아젠다를 다음 정부의 과제로 미루게 된다.

시민의 책임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버려진 해결의 열쇠는 누가 다시 찾아야 할까. 결국, 다시 시민이다. 이 거대한 문제를 시민의 의무로만 미루지 말고 정부가, 기업이 지금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책임이 시민에게 남겨진다. 스위스의 할머니들처럼 말이다. 베를린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기후 중립 시점을 EU의 목표인 2050년보다 20년 더 앞당겨 2030년에 달성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주민투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 시민단체가 주도했고, 이에 호응한 26만 명의 시민이 서명에 동참한 결과였다. 결과는 부결이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가 닿았다. 베를린시 연립 정부가 약 7조 원에 달하는 기후변화 대응 특별 기금 조성에 합의한 것이다.

IT MATTERS

기후 문제는 지금까지 세대의 문제로 규정되어 왔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으로 시민의 선의가 이야기되어 왔다. 소비자로서 탄소 발자국을 생각하자는 이야기, 시민으로서 재활용에 동참하자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탄소를 직접적으로 내뿜고 있는 주체들은 그러한 캠페인 뒤에 숨어있다. 탄소 배출권을 구입하거나 협력 업체에 탄소 저감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친환경을 외주 맡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의 문제다. 사회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있느냐에 따라 기후 재난의 크기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미국의 은퇴한 60대 노부부 호글랜드 내외는 가진 자에 속한다. 그들은 가뭄과 산불 피해가 잦은 북 캘리포니아와 허리케인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는 플로리다의 상황을 고려해 플로리다와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소유하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 노스캐롤라이나주로 이사했다. 반면,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찾아가 이사 방편을 마련해 주기 전에는 월세 10만 원짜리 방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지난 주말, 언론은 꽃이 점점 일찍 피어나고 있다며 기후 위기를 걱정했다. 온난화로 인해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매년 반복된다. 이유가 무엇인지, 매번 흐지부지되곤 하지만 말이다. 착하고 낭만적인 걱정처럼 들리지만 실은 무서운 이야기다. 죽고 사는 문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 말이다.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는 저서 《더 나은 세상》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에게 미래세대가 없다면 기후 변화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이유도 줄어들 것이다. 자, 만약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라면 어떻겠는가?” 2023년, 이 질문은 틀렸다. 우리에게 미래세대가 없다고 해도 지금 당장, 기후 변화에 대해 절실한 두려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의 주체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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