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을 해결할 방법

4월 6일, explained

입시와 취업에 학폭 가해 기록이 반영된다. 엄정한 대응은 해법이 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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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학폭)의 해법으로 ‘기록’이 제시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5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학폭 근절 대책 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기존 대입 수시 전형에 반영하던 학폭 가해 기록을 수능 위주의 전형인 정시에까지 확대 반영토록 한다, 그리고 취업 때까지 가해 기록을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여당은 학생부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리는 이 조치가 가해자의 학폭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WHY NOW

대중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 환호했다. 대리 만족은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우리가 학폭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있은 후 잘 먹고 잘 사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흔히 봐왔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사적 복수를 통해 공적 처벌의 부족함을 메꾸었고, 이는 시청자에게 희열을 주었다. 이번 정부여당의 대책은 학폭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 가해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그림을 조금은 망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데 찝찝함이 남는다. 이 모든 조치가 있은 후에, 과연 우리의 속은 드라마를 볼 때처럼 명쾌하고 시원해질 수 있을까.

정순신과 서울대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학폭이 논의된 계기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되었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 논란이었다. 2019년에 정 변호사의 아들은 서울대 정시 모집 전형에 지원했다. 당시 서울대 정시 전형은 100퍼센트 수능 점수만을 봤고, 징계 사항은 교과 외 영역에서 감점 자료로 활용한다고 명시했다. 학폭 징계로 인해 정 변호사 아들이 서울대 입시에서 받은 조치는 수능 점수 2점 감점이었다. 가해자에 온정적인 기준에 사회는 분노했다. 입시 제도가 학폭 가해 이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수능 위주의 전형인 정시에도 학폭 기록을 반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정시 반영 아이디어

정 변호사 아들 논란 이후 주요 대학들이 정시 전형에도 학폭 이력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정시에서의 학생부 반영 비율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되어 있어 일괄 손질하기 어렵다. 학교나 학과별로 영향이 다를 수 있으며, 대학 측에서 입결을 올리기 위해 조치를 철회할 수도 있다. 정시와 수시는 전형의 특성과 기간도 다르다. 3개월여의 긴 전형 기간을 갖는 수시와 달리, 정시는 전형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 전형 기간이 짧아 학폭 처분이 늦어질 시, 조치 사항을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사회에서 폭력을 저지른 재수생이 정시에 응시한다면 이 역시 학폭과 동일하게 따질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여지도 있다.

학폭 취준생 검증

학폭 기록 보존 기간을 연장해 취업에 반영하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이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12월 대표 발의한, 학폭 기록을 10년간 보관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계에서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법안에 반대했다. 첫째, 기록을 장기간 보관함에 따라 학교 업무 부담이 증가한다. 둘째, 학생이 진로를 설계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데 방해가 되는 등 입게 될 피해가 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헌법에 적힌 직업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 취업에 불이익이 생긴다는 게 확정되면, 가해자는 학폭 기록을 낙인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낙인은 기록을 지우기 위한 행정심판과 민원 쇄도라는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기록을 지우기 위한 시도는 지금도 흔하다. 당장 이 논의의 시초가 된 정순신 변호사가 소송을 통해 학폭위 처분 시점을 미루었다. 이미 가해자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된 시간 끌기 수법으로, 운이 좋아 졸업 시점까지 판결이 나지 않으면 학폭 이력이 입시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 8월 말까지 가해자가 낸 집행정지 1405건 중 57.9퍼센트인 813건이 인정됐다. 시간만 끌면 변호사는 성공 보수를 받는다. 그래서 학폭은 법조계에서 공공연하게 산업이 되었다. 로펌들은 학교 폭력 전담팀을 만들고 가해자/피해자를 대리하여 승소를 이뤄냈다는 사례를 제시하며 전문성을 홍보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로펌을 끼는 순간 기천만 원대의 소송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자녀의 학폭 기록을 지우기 위해 소송에 나선다. 학교 폭력은 폐쇄된 공간에서 민감한 청소년기에 벌어지기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특히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남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일이 된다. 생기부는 어떤 학생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전부다. 이것이 입시에 반영되어 학벌을 결정하고, 학벌은 명함에 쓰일 직장을 결정하고, 그 직장이 여생의 소득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기부에 기록되는 선도 조치 한 줄은 형사처벌에 준하는 무게를 가질 수도 있다. 개인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학폭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서로 물러서지 않는 싸움으로 번진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가해자는 무슨 수를 써서든 기록을 지우고 싶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학폭 과거를 잊은 채 현재를 누리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걸 중재하고 처리하는 기관은 현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다. 그런데 학폭위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대부분 학부모로 구성되어 법리적으로 놓치는 게 많고 피해 학생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이럴 경우 어쩔 수 없이 행정소송 등 불복 조치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학폭위를 구성하는 데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법관이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기가 비용과 일정 등 여러 문제상 만만치 않은 것이다. 외부 전문가 비중을 늘려도 바빠서 출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폭위는 형사 기관이 아니라 교육지원청 소관으로 처벌보다는 계도를 목적으로 한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사법 기관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공동체와 피해자 중심주의

교육당국은 엄벌주의를 원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학폭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언급했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엄벌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속 시원함을 넘어선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작은 학교가 어떤 곳인가라는 공감대를 세우는 것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학교는 교육과 훈육을 통해 학생들을 사회로 내보내는 기관이며,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처분은 가해자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가해자의 교화와 재사회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조치들은 가해자를 벌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을 뿐, 교화에 필수적인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회복이 빠져 있다. 즉,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피해자의 감정과 삶을 들여다보는 해법이 아니다. 대중이 〈더 글로리〉에 공감한 이유가 단지 속만 시원해서는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은 피해자였던 문동은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 건지, 어떤 어른이 되어서 누구와 감정을 나누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응원으로 작용했다.
IT MATTERS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촉법 소년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교권을 침해한 학생의 처분 기록을 생기부에 기재하고 별도로 관리하도록 하는 교원 지위 향상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가 발의한 법률안에는 ‘나쁜 학생’이 명확하다. 가해자는 처리하고 엄벌해야 하는 문제 학생이 된다. 그런데 엄벌주의에 집중할 때 학교는 학생과 교사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한 절차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한다.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큼 명확하고 쉬운 일이 없다. 죄질이 안 좋을수록 ‘나쁘다’는 진술에 힘이 실려서 말하는 사람의 죄책감이나 찝찝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데 사실, 나쁘다는 말은 가치 판단에 지나지 않다. 지금 학폭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는 데 멈춰 있지 않은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때 간과되는 건 무엇일까. 교실 내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위계와 폭력 앞에 눈 감고 피해자에게 손 내밀지 않은 스스로의 부끄러운 순간이다. 누구도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고, 가해자의 사과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그리고 교육 공동체로서 학교를 회복해야 한다.

학교 공동체 회복이라는 말은 바람직하지만 멀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좋은교사운동 한성준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저희가 2011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작했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게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한국 사회가 다른 대안을 찾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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