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 로드맵에서 한 발 나아가기

2023년 4월 7일, explained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정부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부족하다. 한 발 나아간 논의를 해야 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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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내용이 담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첫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후 4월 6일, 정부가 내놓은 ‘직불금 로드맵’도 농민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WHY NOW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서는 농민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낸다. 유럽은 직불금으로 소득을 보전하며, 농업의 공공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직불금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전략작물직불금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논의를 해야 한다.

남아도는 쌀?

지난해 쌀값은 20킬로그램 기준 4만 2522원이었다.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래 45년 만에 최저가를 기록했다. 그 원인으로 생산 과잉이 지적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논쟁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간 정부는 초과 생산된 쌀을 일정량 사들이는 방식으로 공급량을 조절했다. 이를 ‘시장 격리’라고 한다. 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역공매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낮게 입찰한 농민의 쌀을 우선 매입하는 탓에 농민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유는 농가 보호와 식량 안보 확보다.

유럽과 태국 사례

정부는 이같은 조치가 오히려 쌀 생산을 촉진할 것이라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이미 유럽과 태국의 실패 사례가 있다. 유럽은 1962년  ‘공동농업정책(CAP)’을 마련해 농산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했다. 그 결과 밀과 버터의 초과 생산량은 30퍼센트를 넘어서며 잉여 농산물이 유럽의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2011년 태국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시중 가격보다 50퍼센트 높은 가격으로 쌀을 매입하자 농가는 질보다 양에 치중했고, 관련 정책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손실로 끝났다. 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만 매입하는 것이라 선을 그었다.

농민의 목소리

정부는 40개 농민단체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야당은 256개 단체가 대통령 거부권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부권 행사 후, 전국 농민단체는 규탄 시위에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단체도 법안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개정안이 ‘누더기 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여야 갈등 속에서 의무 매입 기준이 초과 생산량 5퍼센트에서 9퍼센트로 완화됐다는 것이다. 농민단체는 농심을 정쟁화하고 있다며 여야 모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쌀이 넘치는 이유

그렇다면 쌀 과잉 생산은 농민의 문제인가? 농민단체는 개발도상국의 무역 활성화를 위한 저율관세할당제(TRQ)로 매년 의무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40만 톤이 쌀 과잉 공급을 유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우선적으로 TRQ 물량을 식용 쌀 시장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단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생산비 보장, 다시 말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쌀 출하조정기구를 설치해 공급을 조정하고, 기금을 조성해 쌀 가격 폭락 시 부족분을 지급하는 방식도 언급되고 있다. 다만, 이같은 대안에서 정부의 의무는 빠져 있다.

유럽의 농민 시위

이렇듯 합리적인 대안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농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관련해 유럽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2021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비넨호프 국회의사당에 트랙터 한 대가 도착했다. 2019년에 출범한 농민시민운동당(BBB)의 카롤리너 반 데르 플라스 대표였다. 플라스 대표는 농축산업 전문 기자로 일하다, 농업노동자협외에서 경력을 쌓아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유인책 없이 규제만 있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농촌을 위협한다며 농민의 편에 섰다. 플라스 대표가 이끄는 BBB는 창당 4년 만에 지방선거를 통해 상원 제1당에 올랐다.

농업의 가치

이외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농약 금지 정책부터 인플레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농민 시위가 일어난다. 유럽 농민이 정치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배경엔 직접직불금 제도가 있다.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직접 돈을 지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농민의 농업 소득 중 50~80퍼센트 달하는 돈이 직불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농민들은 큰 어려움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이 농촌에 이렇게 큰 돈을 쓰는 이유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농민들도 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활동적 농민

이는 유럽의 최신판 CAP에도 드러난다. 일찍이 실패를 맛본 유럽은 CAP를 개선해 2023년에 다시금 내놓았다. 2025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그린딜을 위해서도 농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유럽이 내세운 첫 번째 목표는 재분배를 통한 ‘공정한 수입 보장’이다. 직불금이 대농에게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30퍼센트까지 재분배 직불금으로 할당할 수 있다. 이는 중소농, 청년농에게 돌아간다. 나아가 활동적 농민(active farmer) 개념을 강화해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직불금 제도에서 배제하기 위함이 아닌 농민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따져 그에 맞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IT MATTERS

우리나라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직불금이 논의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후속대책으로 ‘직불금 로드맵’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한 공익 직불금 예산 5조원 확충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그중 쌀 대신 다른 농산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전략작물직불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대책 또한 현장의 상황을 담지 못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작물 재배 농가 86만 가구 가운데 53만 가구가 논벼를 수확한다. 쌀을 생산하는 비율이 61.4퍼센트에 달하는 것이다. 이유는 쌀 농사의 기계화율에 있다. 노동력의 98.6퍼센트가 기계로 대체되는 쌀 농사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2021년 통계청에 따르면, 경영주가 60세 이상인 농가는 전체 농사의 77.3퍼센트였다. 재배하기 어려운 다른 작물로 옮겨갈 수 없는 농가가 대다수라는 뜻이다.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는 소농직불금이다. 소농직불금은 0.5헥타르 이하 농지를 소유한 농가에게 면적과 상관 없이 지급되는 것으로 농민수당과 유사하다. 나아가 기초·광역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농민수당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는 농민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에 따라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고 누락되는 농가가 있어 정책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앙 정부의 역할은 여기 있다. 농업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면, 농민이 농촌과 농업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선 보다 직접적인 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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