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직 회복 중

4월 11일, explained

9년이 지났다.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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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9주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주말에는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안산시 단원고와 지역사회에서, 제주도에서, 광주에서, 목포에서 시민들이 함께 2014년 4월을 기억했다. 9년이 지난 일이지만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잊을 때가 되었다고 애써 외면하는 사이 수사와 조사는 방향을 잃었고, 또 다른 참사와 피해자가 발생했다.

WHY NOW

해결되지 않았다. 치유되지도 않았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과 의무 앞에 망설이면 참사는 그대로 참사에 머문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을 모두가 함께 나누어 들면, 그제야 우리에게는 미래가 찾아온다. 분명 9년 전과는 달라졌다. 우리 모두 잊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법도, 의식도 나아졌다. 아직은 과정이지만 회복은 완성될 수 있다. 망각의 악순환을 끊어내면 반드시 가능하다.

책임을 인정하는 데에 걸린 시간

9년이나 흘렀다. 누군가는 9년이면 이제 접어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아니다. 아직 부족하다.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만 9년이 필요했다. 지난 1월 31일, 법무부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상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5년 첫 소송을 내고 8년 만이었다. 국가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 초동 대응 및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2심에서는 기무사의 유족 사찰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추가로 물었다. 국가의 ‘2차 가해’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돈 아까운 조사

한편,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해인 2022년 9월, 조사위 내부 이견을 봉합하지 못한 채 최종보고서를 내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외부의 힘이 작용했던 것이 침몰의 원인이었는지를 두고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조사가 끝났으니 당연히 여한이 남는다. 돈 아깝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몇백억을 쓰고도 결론을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참위에 참여했던 박상은 전 조사관은 조사와 수사를 분리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미숙함에서 문제를 찾는다.

책임자를 특정하자는 욕망

박 전 조사관은 사참위 위원 6명 중 5명이 법률가라는 점 때문에 조사가 사법적 관점으로 이루어졌다고 봤다. 책임자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관점이다. 법적 처벌은 명확한 인과 관계가 증명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대형 재난사고는 시스템에 생겨난 흠결들이 커지고 벌어지면서 생겨난다. 사법적 조사에 치중하면 사고를 책임져야 할 ‘국가’를 인격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특정인을 책임자로 지목해 처벌하고자 하는 욕구가 도드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그 누구의 책임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임자가 특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불안

정치라는 편광 안경을 쓰고 참사를 바라보면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될 단어가 명징하게 떠오른다. 바로 ‘책임’이다. 특히 고위공무원의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게 된다. 정권에는 큰 타격이 된다. 이것이 참사를 국정 위기로 인식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사고를 수습하고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는 것보다 이 ‘위기’를 사전에 틀어막는 데에 행정력이 동원된다. 우리가 참사를 마주할 때마다 목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수사 과정에서 실무자들은 증언을 주저하게 되고, 고위층은 회피의 기술을 고민하게 된다.

조사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

그래서 수사와 분리된 조사가 필요하다. 힘을 가진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수사가 진행되어야 증언이 오염되지 않고 구조적 결함이 제대로 드러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조사 당시를 참고할 만하다. 조사위는 실무자들이 처벌이나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증언할 수 있도록 질문을 섬세하게 구성했다. 그리고 도쿄전력 사장과 간 나오토 전 총리 등 고위층 책임자들은 청문회에 세웠다. 조사가 진행된 이후 사고 발생 1년 5개월 만에야 일본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2022년 7월 13일 도쿄 지방재판소는 고위급 책임자 4명에게 총 13조 3210억 엔가량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는 어떠한가. 이태원 참사 이후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문제는 또다시 정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의 품격

제대로 된 권한을 가진 조사 외에도 지난 9년간 완성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 품격’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2년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스쿨닥터로 머물렀고, 이후로도 9년째 꾸준히 생존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김은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위원장은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존중’의 부재를 지적했다. 생존 학생들이 면접 자리에서, 직장이나 학교 등 공동체에서 참사와 관련된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내뱉는 한마디가 생존 학생들에게는 좌절이 되어 꽂힌다.

애도가 혐오가 되었던 순간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칼을 품은 혐오도 분명 존재한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경우 이른바 ‘오뎅 사진’ 사건 이후, 이태원 참사의 경우 ‘토끼 머리띠’ 라벨링 논란 이후를 분기점으로 꼽았다. 혐오해도 괜찮다는 시그널이 눈에 띄는 현상을 만들고 피해를 키운다. “피해자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높일 수 있다면, 그것도 공인이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김 위원장은 지적한다.

IT MATTERS

정치 때문이다.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길까 봐,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참사는 참사로서 조사되지 못했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한 유가족’을 구분했고 국군기무사령부는 유가족을 사찰했다. 그리고 돈 때문이다. 세월호를 계기로 수많은 규제상의 허점이 드러났다. 대개 그 허점은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묵인되어 온 것들이다. 기업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오해가 낡고 위험한 배를 출항시켰다.

세월호는 공무원들에게 ‘매뉴얼’이라는 금과옥조를 남겼다. 그러나 피해자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김은지 위원장은 매뉴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체육관에 모여 있었다. 실종자가 발견되면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근데 그 전화번호를 가족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그 번호가 뜨자마자 오열한다. 그 상황부터 도움이 필요하다. 매뉴얼에는 담길 수도 없는 이야기다. 현장에 있어야만 알 수 있고 무언가 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는 자책감이 남았다. 불안이 혐오가 되어 사람을 해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또 다른 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지켜보며 우리의 자책감은 무력감으로 떨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회복 중이다. 9년 전보다 위로와 존중의 힘에 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전국에 트라우마 센터가 문을 열었다. 부족하지만 법과 제도 또한 보완해 가는 중이다. 재난안전법이 개정되고 재난 보도 관련 언론 보도 지침도 생겼다. 물론, 아직은 과정이다. 9년보다 더 긴 시간이 앞으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각하지 않는다면, 분명 회복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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