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언어가 말하는 것

4월 12일, explained

우리는 지금 당장, 사라지는 언어를 구해야 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미국 뉴멕시코주의 스페인 방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거대한 타오스 산맥 덕분에 400년간 유지된 전 세계 유일의 희귀 방언이다. 사라지는 건 스페인 방언만이 아니다. 전 세계 언어 6700개 중 40퍼센트가 소멸 위험에 놓여 있다. 호주의 언어학자 니컬러스 에반스는 가속화된 언어 소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2주에 한 명씩, 세계 어느 곳에서는 쇠미해 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죽음을 맞고 있다.”

WHY NOW

언어 소멸은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세 언어의 침범은 한국의 조선족 혐오와도, 기후 위기로 인한 상상력의 축소와도, 제주 4.3 사건을 대하는 정치인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의 언어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소멸한다. 희미해지는 언어 다양성 이전에는 지역성의 소멸과 수축하는 공동체 인식이 자리한다. 우리는 지금 당장, 사라지는 언어를 구해야 한다.

사투리 능력 고사가 시사하는 것

최근 유튜브를 통해 사투리 능력 고사가 소소한 인기를 끌었다. 응시자가 낯선 지역 방언을 익숙한 표준어와 연결할 수 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경상도 사투리 능력 고사의 답과 상세한 풀이를 블로그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해당 지역 출신이 방언 능력 고사까지 치러야 하는 셈이다. 희미해진 방언은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를 넘어서, 언어 소멸의 시작점을 암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어 소멸의 의미

한 언어를 사용하는 노인과 성인만 존재하고, 그를 배우는 어린이가 없는 언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한다. 언어 소멸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한다. 세대 변화로 인해 미래 세대는 모국어를 배우지 않을 수 있다. 국가의 상황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이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혹은 영토가 가라앉거나 민족이 흩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언어는 이처럼 취약한 존재다. 취약하지만, 그 중요성은 압도적이다. 언어는 자기 자신을 위협하는 원인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함께 사용하는 언어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민족을 영토와 무관히 엮을 수 있던 경첩이었다. 언어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시대는 생각보다 더 큰 위협일 수 있다.

모바일 세대와 무한한 연결

《자연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언어 다양성의 손실을 일으키는 두 가지 주요 원인은 긴 공교육 기간과 높은 도로 밀집도다. 토착 교육보다 표준 교육이 길수록, 마을과 마을이 연결될수록, 우세한 언어가 영세한 언어를 잡아먹기 쉽다. 이 연구는 뉴멕시코주의 스페인 방언 소멸을 일정 부분 설명한다. 답은 모바일 세대를 향한다.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과 달리,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영어로 전 세계와 소통한다. 뉴멕시코주의 퀘스타 마을의 방언이 4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마을과의 연결을 가로막던 산맥 때문이었다. 지금의 모바일 세대는 특정 지역에 고립돼도 도로로 연결된 것처럼 우세한 언어를 접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를 사용해야 했다. 무한해진 연결은 언어를 위협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다.

민족의 소멸

모바일 세대가 연결을 통해 자연스레 우세 언어의 중력에 휩쓸렸다면, 외부의 압력이 수많은 언어를 한 곳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있다. 창씨개명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 당국은 중국의 소수 민족을 한족으로 동화하려는 민족성 말살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표준어 확대 정책이다. 연변조선족자치구와 같이, 민족 문화를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 그 대상이 됐다. 중국의 신문 《환구시보》는 “중국에서 공통의 언어와 문자를 쓰는 건 소수 민족의 문화를 약화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언어의 동화는 그럴 힘을 충분히 갖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집권 시기 청소년기를 보냈던 2030 세대 조선족은 한국보다 중국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확률이 높았다.

조선족 혐오

언어 소멸의 영향력은 인류 문화의 소멸이라는 말처럼 추상적이거나 멀지만은 않다. 사드 배치 결정과 중국의 경제 보복 등으로 인해 2010년대 중반부터 강해진 반중 정서는 이른바 ‘한족화된 조선족’에게 전이됐다. 영화와 드라마, 언론은 범죄자와 조선족을 일방적으로 동일시했다. 본래 언어는 세계 각지에 떨어진 디아스포라가 그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기 중앙아시아와 만주, 일본에 자리 잡은 동포들이 민족 기반의 커뮤니티를 이어올 수 있었던 무기가 바로 언어다. 언어라는 도구의 소멸은 그들을 하나의 뿌리로 인식했던 민족적 정서 전반의 소멸로 이어지기 쉽다. 다시 말해, 중국의 소수 민족 언어가 사라질수록, 우리나라의 동포 인식도 옅어진다는 말이다. 시진핑의 집권 이후 조선족에 대한 편견 가득한 표현이 증가한 것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기후 위기와의 역학

물리적으로 높아지는 해수면도 언어 다양성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해수면 상승의 위협에 직면한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에는 총 110개의 언어가 있다. 지구상에서 언어 밀도가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한다. 나라가 가라앉으면 국민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는 물리적인 언어의 파편화만 낳지 않는다. 지구가 더 더워진다면, 그래서 눈이라는 게 사라진다면, 미래 세대는 눈이라는 언어 자체를 상상할 수 없다. 북극의 언어 변화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레노어 그레노블(Lenore Grenoble)의 가설에 따르면, 날씨와 자연 패턴의 변화는 이를 설명하는 원주민 어휘의 소멸을 부른다. 그린란드에는 이미 ‘바다 얼음(sea ice)’의 종류를 명명할 수 없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당 단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더 추운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 두꺼운 얼음을 말하는 단어가 불필요해지는 셈이다. 미래 세대는 기후 위기로 인해 더 많은 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언어라는 이름의 데이터

AI는 언어 소멸의 위험을 가장 크게 직면한 기술이자, 그를 가속화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챗GPT 등의 생성 AI가 사용하는 대규모 언어 데이터는 기존 언어 패권 아래에서 조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백인 남성이 사용하는 표준화된 영어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대에서는 정보 생산의 불균형과 소비의 불균형이 한 번에 발생한다.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 그 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위키백과에 없는 지식이 위키피디아에는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건 비단 정보 값만이 아니다. 생성형 AI는 별도의 주문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제1세계 중심적인 데이터를 산출한다. 다시 말해, 소수 언어가 함축하고 있는 다문화의 이질적 특성도 함께 사라지기 쉽다는 말이다.

IT MATTERS

인공지능은 사라지는 언어의 선봉장에 서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어 보전을 가능케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메타가 2022년 7월부터 시작한 ‘NLLB(No Language Left Behind)’ 프로젝트는 아스투리아스어, 루간다어, 우르두어 등 자원이 부족한 언어의 번역을 제공해 누구나 모국어로 웹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국어로도 모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돕겠다는 취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멸 언어의 말뭉치를 데이터베이스화시켜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키고 있다. 듀오링고와 같은 언어 학습형 에듀테크는 모바일 세대의 언어 접근성을 복원하기 위한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캐나다 원주민인 다켈 부족에서 태어난 테사 에릭슨은 학생들이 쉽게 자신 부족의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그녀는 “‘듀오링고’로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의 언어를 보존하고자 직접 뛰어든 케이스다.

매개체로서의 언어를 보존하기에 앞서야 할 것은 언어 다양성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일이다. 제주 4.3 사건을 제주어로 다룬 영화 〈지슬〉 개봉으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 제주어는 사멸 위기를 앞두고 있다. 정치인은 제주 4.3 사건 추념사에서 관광 산업 성장과 반도체 기업을 말한다. 제주어 사멸을 막기 위해 제주어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지만, 올해 제주어 종합 상담실의 예산은 전액 삭감된 상태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우리는 제주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언어는 그자체로 많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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