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위기, EU의 위기

2023년 4월 13일, explained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위기의 연속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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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흔들린다. 4월 5~7일 중국 국빈 방문에서 한 발언으로 미국과 다른 유럽 국가의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이 미중 갈등과 대만 문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인터뷰였다. 대만 문제를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EU도 서둘러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에 선을 그었다. 논란이 커지자 엘리제궁이 진화에 나섰지만, 외교 참사라는 여론이 프랑스 내에 확산하고 있다.

WHY NOW

위기의 연속이다. 무리한 연금 개혁 추진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음 정권이 극우 정당으로 넘어갈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유럽에 극우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 프랑스가 유럽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유럽연합이 위태로워진다.

시진핑 주석의 환대

중국에서 환대를 받은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시진핑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뿐 아니라 기자회견까지 함께 했다.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두 차례 회동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이다. 중국은 자국에 대한 서방의 견제 흐름을 바꾸기 위해 대유럽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중국이 마크롱 대통령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이후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메르켈의 빈 자리

그간 유럽 내에서 친중 행보를 보인 것은 독일이었다. 엥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자주적 정책을 펼쳤다. 그렇게 쌓은 경제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혼란을 수습하며 유럽의 최대 경제국의 입지를 다졌다. 말하자면, 메르켈 전 총리는 독일의 리더이자 유럽의 리더였다. 2021년 메르켈 전 총리가 물러나면서 유럽의 리더 자리도 같이 비었다. 마크롱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자리였다.

‘전략적 자율성’

마크롱 대통령은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유럽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제3의 강대국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속내는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며 디커플링(decoupling)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중국에게 필요했던 말이다. 그리고 시진핑은 프랑스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를 구입하며 화답했다.

단일대오의 균열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견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간 중국은 특정 국가를 산업·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미국의 정책이 디커플링이라고 지적해 왔다. 프랑스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프랑스의 행보는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 단일대오를 형성하기 위한 미국의 구상에 영향을 끼친다. 《뉴욕 타임스》는 자유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에 대한 안보를 약화하려는 미국 극우 정치인들이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4월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 중 헤이그 싱크탱크 연설에서 유럽의 주권을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렇게 무리한 주장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마크롱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통한 바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12월 미국에 방문하기 전날 의회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통해, 정책에 부분적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바이든의 답변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IRA는 유럽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이었다. 이같은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는 유럽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유럽 내부의 리더십을 다질 수 있었다는 평을 받는다.

지금 프랑스 상황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네덜란드에 방문하며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헤이그의 연설이 잠시 중단됐던 이유와도 무관치 않다. 바로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난입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인 바 있다. 국민의 70퍼센트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에도, 의회 동의 없이 정부가 단독으로 입법할 수 있게 하는 ‘헌법 49조 3항’을 발동했다.

예상된 위기

이에 ‘의회 패싱’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28퍼센트로 떨어졌다. 2018년 노란 조끼 시위 이후 최저치다. 다만, 이것은 마크롱 대통령이 예상한 위기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3월 22일 대국민 설득을 위한 생중계 인터뷰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인기가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면 견딜 것”이라고 말했다.

IT MATTERS

하지만 대만 발언을 두고 불거진 논란은 마크롱 대통령이 예상하지 못한 위기다. 이제는 지지율의 문제를 넘어섰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엘라브는 가상대결 결과를 내놨다. 지난 대선과 같은 구도로 선거를 다시 치르면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의원이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마크롱은 자신의 당에서 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르네상스당은 사실상 마크롱의 1인 정당이라고 설명한다. 2연임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는 후보로 출마할 수 없다. 유력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정권이 극우 정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는 극우 바람이 불고 있다. 4월 2일 핀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핀란드인당이 원내 제2당에 올랐다. 같은 날 불가리아 총선에서도 극우 부흥당이 약진했다. 극우 정치집단은 유럽연합을 신자유주의적 연대를 부추기는 기구로 여긴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까지 극우 정권이 들어서면, 프랑스가 유럽의 맹주가 되길 바라던 마크롱의 계획이 물거품 될 공산이 크다. 프랑스도 독일도 유럽의 리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 지금의 위기는 마크롱 대통령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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