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안의 역설

2023년 4월 14일, explained

새로운 탄소 감축안은 기업의 면죄부와 신기술, 원전이 탄소 중립의 미래라 말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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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공개로 논란을 빚은 윤석열 정부 표 탄소 감축안이 사실상 원안 그대로 확정됐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4월 10일 공개한 국가 기본 계획에 따르면 기업의 에너지 전환 목표율은 3퍼센트포인트 낮아졌다. 전환 계획 중 신재생 에너지 비율도 지난 정부안보다 8.6퍼센트포인트 낮아졌다. 환경 단체는 “사실상 기후 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라고 일갈한다. 한덕수 총리는 이렇게 해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며, 탄소 포집 등 기술 육성이 대안이 될 거라 말한다.

WHY NOW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은 상식이 됐다. 탄녹위의 감축안에도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배출 목표)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중요한 건 논리와 과정이다. 기업의 책임을 줄이고 기술로 대체하는 게 정말 NDC 이행 가능성을 높일까? 에너지 전환을 원전으로 이루는 건 바람직할까? 지금 검토하지 않으면 기후 위기의 파도 앞에 모래성을 쌓게 될지도 모른다. 2030년은 여유로운 미래가 아니다. 확실한 대응 없이는 산불처럼 들이닥칠 내일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

위기는 단합이나 분열을 만든다. 세계는 기후 위기 앞에서 단합, 에너지 위기 앞에서 분열했다. 문제는 두 위기가 많은 나라에서 제로섬 게임으로 읽혔다는 점이다. 30년 만에 새 탄광 개발을 허용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에너지 빈곤층은 70~80퍼센트에 달한다. 기후 위기 대응의 필요성을 알지만 에너지 위기는 빈곤층을 덮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을 모르고, 중국이 경제 활동을 재개하며 액화 천연가스(LNG)는 언제든 부족해질 수 있다. 한편 유엔 기후 협약의 근거가 되는 ‘제6차 유엔 기후 변화 보고서’는 기후 위기 골든타임이 앞으로 10년이라 말한다. 딜레마다.

독일의 탈원전 배수진

이를 딜레마로 읽지 않은 대표적 국가는 독일이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탈원전은 돌이킬 수 없다“며 현지 시간 15일부터 남은 원전 세 기 가동을 완전 중단하고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율을 80퍼센트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에너지 위기로 원전 폐기를 늦췄을 때 원전 예찬론자들은 이를 탈원전 유턴이라며 원전 강화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국민 절반과 보수 정당의 반대가 있지만 재생 에너지가 에너지 수입 의존 탈피를 위한 ‘자유 에너지’라는 인식엔 변함이 없다. 숄츠 내각은 ‘경제 기후 보호부’를 신설하며 ‘전환은 곧 경쟁력’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에너지 문제에 접근했다.

전환의 진통

독일의 전환 기조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지난한 사회적 진통이 있었다. 특히 관료주의적 관행과 지방 분권 시스템, 규제의 복잡성은 독일 변화를 느리게 만든 주범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독일을 일사불란하게 만들었다. 천연가스 러시아 의존도가 큰 독일은 10개월 만에 빌헬름스하펜에 LNG 터미널의 착공·준공을 마치고 작년 12월에 가동을 시작했다. 유례없는 속도다. 2021년 4월에 발표한 ‘부활절 패키지’는 재생 에너지 인프라 확충을 위한 인허가 간소화와 규제 완화가 골자다. 풍력 단지 조성을 위해 연방 정부가 주 정부에 할당량을 주기도 했다. 에너지 문제에서만큼은 연방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다.

에너지 믹스의 명암

배출 감소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독일이 목숨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후 위기의 답도, 에너지 주권도, 국제적 경쟁력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엔 여러 길이 있는 게 사실이고 모든 국가가 에너지 종류나 공급원을 다양화하는 ‘에너지 믹스’를 추구한다. 문제는 에너지 믹스의 착시다. 미국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환경학 교수인 리처드 요크(Richard York)는 재생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원을 확대할 때 그것이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인지, 새로운 에너지의 추가(additions)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에 들어 대체 에너지의 개발에도 화석 연료의 소비 역시 꾸준히 늘었다.

변명을 위한 기술

전환은 그래서 중요하다. 탄녹위가 기업에 면죄부를 쥐여 주며 고해 성사한 신기술은 전환의 당위를 흐린다. 육성을 예고한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탄소를 흡수하고 제거하는 네거티브 기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70년 전 세계 총 이산화탄소 감축량의 15퍼센트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아직 기술적 한계와 고비용으로 상용화가 더디다는 점이다. 포집 기술 중 하나인 DAC(직접 포집)은 1톤 격리에 40~50만 원인데 EU 집행위에 따르면 EU가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2050년까지 매년 최소 3억 톤 이상의 탄소를 포집·저장해야 한다. 이 기술에 주로 목매는 건 아람코나 옥시덴탈, 셰브론 등 국제적 석유 대기업이다.

재생 에너지의 난제

미래 기술에 거는 기대는 원전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원전은 애초에 RE100에 포함되지도 않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재생 에너지 확대에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전정부 지우기라는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면 크게 기술적 문제와 행정적 문제가 있다. 재생 에너지의 대표적 난제는 공급 불안정과 출력 제한으로 정리된다. 태양열, 풍력 등은 자연 현상에 영향을 받는다. 전력 공급이 과잉될 때 잉여 에너지는 전력 계통 안정을 위해 출력이 제한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는 에너지 저장 기술(ESS)이 있다. CCUS에 비하면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다. 테슬라는 최근 상하이에 ESS 공장인 ‘메가팩’을 지었는데 이는 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중국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진다. ESS를 테슬라의 다음 스텝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주민 수용성, 님비의 벽

그럼에도 재생 에너지 확대를 더디게 하는 건 주민 갈등이다. 재생 에너지는 중앙 집중형 에너지가 아닌 분산 전력의 성격을 지닌다. 지역마다 설치가 필요한데 주민 보상을 늘려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책 지원금만으로 진행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해법은 이익 공유에 있었다. 국내 풍력 발전으로는 첫 ‘주민 참여형’인 태백 가덕산 풍력 발전소 사업은 주민이 직접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고 운영 수익을 나눠 갖는 형태로 진행됐다. 연 수익률은 세후 9.3퍼센트에 달한다. 수익률이 높은 사업이 등장하고 투자를 고려하니 자연스레 재생 에너지에 관심이 생긴다. 님비를 핌피로 바꾸며 에너지 리터러시까지 좋아진 사례다.

IT MATTERS

기후와 에너지 위기의 본질은 업보다. 회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기후 문제에 있어 유일한 회피 방법은 테라포밍뿐이다. 그렇기에 기후의 정상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고 여기엔 정치적 리스크, 사회적 합의, 진보된 기술이 동시에 요구된다. 보완재가 되어야 할 기술을 대체재로 여긴다면 결코 이행 가능성이 늘어날 수 없다. 탄녹위의 감축안이 지름길이 아니라 기술 만능주의를 내세운 에움길인 이유다. 우리에겐 딜레마를 만들지 않는 기술이 필요하다. 식량 위기로 유전자 조작 식품을 만들면 그 위험을 해결할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해진다. 결자해지로서의 기술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향해야 한다.

선진국 가운데 원전을 늘리고 재생 에너지를 감축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성과 해외 국가들의 원전 회귀 움직임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에너지 위기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유럽은 오히려 재생 에너지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는 지난 2월 말 발표한 재생 에너지 분석 보고서에서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율이 45퍼센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은 태양광 발전의 확대다. EU는 2021년에 비해 47퍼센트나 많은 태양광을 설치했다. 엠버는 EU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배출을 55퍼센트 낮추겠다는 ‘핏포55’의 달성도 2026년에 달성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2030년까지 7년이 남았다. 탄소 중립을 위해 지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주제는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다. 사용 지역 인근에서 생산 및 소비되는 형태의 에너지 분산화는 주로 재생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에 탄소 중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송·배전망 투자가 줄기 때문에 사회 비용이 줄고 에너지 공급 구조 전반을 손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분산 에너지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특별법은 최근 심사소위를 넘었다. 우리 정부는 선진국들과 달리 이곳에 소형 원자로를 주로 배치하려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분산화의 의미가 퇴색되고 님비 현상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대로는 이행이 어렵다. 우리에겐 독일과 같은 사회적 진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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