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문제, 탈시설

2023년 4월 18일, explained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가 1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열차를 지연시키는 지하철 탑승 시위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는 잠정 중단됐다. 그간 갈등의 쟁점이 됐던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와 관련해 서울시와 일부 합의를 이뤘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탑승 시위를 다음 협의까지 유보했고, 현재 활동가들이 연설 후 지하철에 탑승하는 선전전만 진행하고 있다. 전장연과 서울시는 5월 초 다시 만난다.

WHY NOW

장애와 비장애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기대 수명이 높아지며, 인간은 오랜 시간 다양한 형태의 신체·감각·인지적 손상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돌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사회 문제가 됐다. 인간은 모두 요양원이 아닌 내 동네에서 계속 살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욕구는 탈시설 논의와 멀지 않다.


전장연과 서울시

2월 21일,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에 거주하는 탈시설 장애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과정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한다.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첫 전수조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장연이 탈시설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장연은 “탈시설 장애인을 표적화하여, 당사자와 지원 기관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했다. 이후 양측은 전수조사를 위한 설문지 작성에 탈시설 찬성과 반대 측 전문가를 각각 두 명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뤘다.

장애인 권리예산과 탈시설

전장연은 지난 1년간 장애인 권리예산을 주장했다.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이다. 평생교육, 취업 지원과 탈시설 지원 등을 포함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은 GDP 대비 0.7퍼센트,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탈시설은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장애인이 교육받고 일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장연의 변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가 전부인 삶

“좋은 시설은 없다. 시설에서의 삶이 최선인 사람도 없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4월 13일 창립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거주시설은 복지정책의 일환이다. 최소한의 생활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복지가 하루의 전부라면, 그 자체로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 입소자는 잠자는 시간도, 점심 메뉴도, 새로운 만남도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2020년 장애인거주시설 전수조사에 따르면, 한 방에 거주하는 인원수는 4.7명, 평균 입소 기간은 18.9년이었다. 세 명 중 한 명이 탈시설을 희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돌봄이 전부인 삶

지금 상황에서는 탈시설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사회의 돌봄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탈시설이 이뤄질 경우, 돌봄의 책임은 결과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전가된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99퍼센트가 집에 머물며 살아가는 재가 장애인으로 추정된다. 또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만 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가족을 두고 경제활동을 하러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서울복지재단과 함께 진행한 ‘고위험 장애인가족 지원방안 연구’에서는 장애인 가족은 돌봄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정신건강 고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 가족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건도 반복된다.

완전하지 않은 대책

2023년 4월, 이러한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시범사업이 시행됐다. 발달장애인의 보호자가 급한 사정으로 돌봄이 어려우면 일주일 이내로 24시간 돌봄을 제공하는 ‘긴급 돌봄 서비스’다. 급한 사정에는 입원, 경조사와 더불어 보호자의 체력 소진도 포함됐다. 정부는 내년 6월까지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서비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돌봄 인력은 어디서 오는지 의문이 남는다. 우리나라 지역사회돌봄 수요는 이미 2019년 586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돌봄서비스의 95퍼센트는 민간기관에 위탁되어 있고, 10명 중 9명이 비정규직이다. 돌봄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희생에 기댈 뿐이다.

돌봄 재난 사회

김용익 돌봄과 미래재단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 돌봄 재난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고령화가 있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15.7퍼센트다. 이들의 돌봄을 담당해야 할 45~64세 인구는 32.4퍼센트다. 다시 말해,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48.1퍼센트가 돌봄 문제의 당사자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65세 이상 노인은 2020년 800만 명, 2030년 1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지역 단위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장애 문제 보편화 시대

인간은 노년기를 지나며 누구나 다양한 형태의 신체·감각·인지적 손상을 겪는다. 기대 수명도 높아지고 있다. 일생의 많은 부분을 신체적 손상 및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정치철학연구회의 진태원 박사는 우리 시대는 어쩌면 장애 문제의 보편화 시대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를 노년학과 장애학의 연구 주제와 쟁점이 많은 부분에서 중첩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보건복지부의 5차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요양병원은 1600곳에 달한다. 인구 1000명당 5.3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탈시설 논의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IT MATTERS

우리나라 모든 장애 관련 복지정책은 ‘의료적 장애모델’에 입각해 세워진다. 개인의 신체·감각·인지적 손상요인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장애모델’은 관점을 달리한다. 신체·감각·인지적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물리·정서적 차별을 장애로 본다. 다시 말해, 장애는 타고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포용적이지 않은 사회 구조가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전장연이 개최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주년 좌담회에서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가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피해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늙어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지금 사회에서 장애와 비장애인의 구분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차별과 억압은 더욱 쉽게 드러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최소한의 삶의 질을 누리며 살길 원한다. 그런 기본적인 욕구는 탈시설, 커뮤니티 케어 논의의 시작과 멀지 않다. 진태원 박사는 나아가 역량(capability)로서의 장애를 주장한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차별에 목소리를 낼 때, 사회는 새롭고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라는 단어를 문제로 만들지, 역량으로 삼을지는 이를 보는 사회의 관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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