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포츠가 주목받는 이유

4월 19일, explained

스포츠 팬들의 ‘운명 공동체’ 정신은 미디어 업계의 돌파구가 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LG유플러스의 스포츠 플랫폼 ‘스포키(Sporki)’가 출시 다섯 달 만에 이용자 240만 명을 모았다. 스포키의 전신인, 프로 야구 중계와 야구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던 앱 ‘U+프로야구’에서 한 발짝 나아갔다. 인공지능 승부 예측과 경기 운세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국내 프로 야구만이 아니라 축구, 골프, 배구, 농구와 당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서비스한다. 즐길 거리를 통해 이용자들이 스포키에 오랜 시간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일단 스포츠 팬이라면 스포키는 깔아봄직한 앱이다. 그리고 스포키는, LG유플러스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선택한 플랫폼 전략이기도 하다.

WHY NOW

스포츠 산업은 미디어와 함께 성장해 왔다. 스포츠는 방송 중계를 통해 팬들을 사로잡았고, 방송국은 중계권을 확보해 스포츠의 인기를 시청률로써 누렸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의 중계권 확보 경쟁, 프로 야구나 프로 축구 중계권을 케이블 방송국이 독점하는 것은 시장 경쟁의 이치에 맞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한 상부상조가 아니다. 스포츠가 미디어 업계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독점 중계권을 따낸다 하더라도 유료방송의 묶음 플랜에 함께 묶였기 때문에 콘텐츠 제공 수익을 다른 채널과 분배해야 했다면, 스트리밍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포츠 중계권 독점이 각 플랫폼에 대한 이용자들의 직접적인 구독, 체류 시간으로 이어진다. 더 많은 이용자 확보를 위한 콘텐츠 업계의 싸움이 확전 되는 모양새다.

총성 없는 전쟁, 스포츠

프로 스포츠는 한 도시에 보통 하나의 팀을 두고 전국 리그에서 경쟁하는 체제를 띤다. 한 스포츠 팀의 팬이 되는 것은 내 지역에 대한 애정, 리그의 생리와 게임의 규칙, 선수에 대한 지식이 어우러진 결과다. 경기장의 분위기와 응원 문화도 팬들이 빠져드는 요소인 한편, 문화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경기장에 가기 망설여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은 알아야 프로 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다. 이런 진입장벽에 더해,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경쟁이라는 요소는 스포츠 팬들의 유대와 내집단 의식을 강화한다. 내가 좋아하는 팀의 우승은 팬들에게 정말 간절해서, 가끔은 내 일보다도 소중하다. 어떤 팀을 좋아하는 것은 그 팀과 운명 공동체가 되어 한 해를 보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운명 공동체는 함께 가야 하는 법이니까.

스포츠를 둘러싼 미디어 업계의 전쟁

독점 중계는 팬들을 플랫폼에 묶어놓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유튜브는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중계권 획득을 위해 매년 20억 달러를 내기로 했고, 애플TV+도 미국 프로 축구(MSL)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예년에 비해 세 배 이상의 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티빙이 UFC를 독점 중계한다. 중계권 경쟁은 미디어 이용 방식이 모바일 중심으로 변하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이제는 평일 저녁에 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기 위해서 일찍 퇴근할 필요가 없다. 버스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유튜브로 들어갈지, 티빙으로 들어갈지는, 내가 어떤 스포츠의 팬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계권료가 비싸다고들 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비에 비하면 저렴하며 실패 확률도 낮다. 모바일 디바이스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 사업자들이 중계권을 탐내는 이유다.

축구를 향한 쿠팡플레이의 진심

스포츠를 둘러싼 미디어 업계의 전쟁에서, 특히 힘을 쏟는 곳은 쿠팡이다. 쿠팡플레이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프로 축구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처음 중계를 시작한 2022년에는 화질 등 퀄리티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이 있었지만, 올해에는 개선된 모습을 보여 축구 팬들의 기본 플랫폼이 되었다. 지금은 영국 빅클럽 맨시티의 내한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K리그 팬들은 경기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쿠팡플레이에 가입해야만 한다. K리그 팬덤은 자연스럽게 쿠팡플레이 가입자 수 및 매출과 연결된다.

콘텐츠 업계의 수익 악화

미디어 업계가 잡고 싶은 것은 팬덤이다. 대규모 투자를 벌이던 때를 지나, 손익을 따지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제외한 콘텐츠 사업자들의 성적표가 좋지 않다. 티빙은 2021년에 비해 2022년의 수익성이 악화하며 적자 규모가 50퍼센트 넘게 커졌고, 웨이브 역시 1200억 원의 영업 적자를 봤다. 왓챠는 회계법인의 감사에서 ‘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이 불확실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해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를 런칭하며 TV 시리즈와 영화 제작비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했고, 이는 수십억 달러 손실로 이어졌다. 결국 콘텐츠 예산에서 30억 달러를 삭감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미디어는 필수재가 아니다. 물가 상승의 시대에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매일 보는 유튜브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넷플릭스다. 이용자 이탈을 막으려면 업계는 사람들을 풀 안에 가둬야 한다. 락인(Lock-in)을 위한 떡밥은 팬들의 충성심이다.

팬덤이 미래다

우리는 이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이 현상을 목격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하이브와 네이버가 끼어들 때 업계의 관심은 팬덤 플랫폼에 쏠렸다. SM을 인수하는 기업이 팬덤 플랫폼 ‘버블’을 가져가고, 버블에 입점한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10~30대 팬층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SM 인수전이 마무리된 후 SM과 카카오, 하이브가 본격 협업에 나서면서 SM 소속 아티스트들이 하이브의 플랫폼 ‘위버스(Weverse)’에 입점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돌 팬들 역시 스포츠 팬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서로 경쟁하고, 스타와 나를 동일시한다. 그런데 아이돌 팬과 스포츠 팬의 구성은 다르다. 2022 프로 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에 따르면 프로 축구 고관여 팬은 남성 56퍼센트, 여성 43퍼센트로 남성이 더 많고, 연령별로 보면 20~30대가 65퍼센트를 차지한다. 여성 시청자층이 더 많은 쿠팡플레이로서는 스포츠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남성에게까지 시장을 넓힐 수 있다.

통신 시장의 미션, 탈(脫)통신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국내 통신 3사의 화두는 ‘탈통신’이다. 인구가 더 늘지 않으니 가입자 수를 늘리기 어려운 이동통신사들이 본업 외에 잘하는 걸 찾아서 이용객을 확보해야 한다. 인터넷과 통신을 결합해서 제공했던 IPTV의 경험을 가지고, 3사는 콘텐츠 사업에 나섰다. SK텔레콤은 OTT 웨이브를 가졌고, KT는 자체 OTT 씨즌을 티빙에 흡수시켜 콘텐츠 유통에 저변을 넓혔으며 지난해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작해 큰 재미를 보기도 했다. LG유플러스는 자체 OTT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다양한 OTT를 시청할 수 있는 IPTV 서비스로 진화를 꾀했다. 이에 더해, 고객들이 자사 서비스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4대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다. 스포키는 이 4대 플랫폼 전략의 일환이다.

스포키, 가능한 대안일까

다만 지금으로서는 스포키의 미래가 성공적일 것 같지 않다. 스포키의 전신 어플인 U+프로야구보다 못하다는 반응이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키는 출석 이벤트를 통해 초기 이용자를 확보하기는 했으나, 정작 팬들이 필요로 하는 문자 중계나 화질 조정, 백그라운드 오디오 재생 등이 제공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화면 속 화면’인 PiP 기능을 제공하는 티빙이나 네이버를 통해 중계를 보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댓글이 달리는 양과 댓글의 내용을 보면 정말 LG유플러스의 발표대로 이용자가 240만 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야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축구, 골프 등등 다른 스포츠로 운동장을 넓히고 커뮤니티 성격을 강화하다 보니 정작 소비자들의 니즈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IT MATTERS

스포키의 미래가 어둡게 점쳐지는 것은 LG유플러스가 저지른 잠깐의 실수일 수도 있다. 유저들의 니즈에 맞게 플랫폼을 재편한다면 U+프로야구가 그랬듯 다시금 좋은 평가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미디어 업계가 스포츠에서 더 많은 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OTT와 통신업계뿐만 아니라 포털도 스포츠 팬덤을 커뮤니티 형성의 기반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선보인 네이버의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오픈톡’은 최근 중계 같이 보기 기능, 구단 공식 오픈톡 서비스 등을 출시했다. 스포키와 비슷하게, 스포츠 팬들을 자사 서비스에 가둬 두려는 목적을 보인다.

취향 공동체의 시대다. 취향 저격 플랫폼을 잡는 자가 콘텐츠 시장의 넥스트 키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어떤 틈새에 얼마나 넓은 시장이 있을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스포츠와 아이돌과 같이 마니악하면서도 안정적인 소비자층을 찾는 게 미디어 업계의 미션이 될 전망이다. 다만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들,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다면 과실을 가져가는 건 엉뚱한 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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