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되려 하는 애플

4월 20일, explained

애플이 출시한 고금리의 애플 통장은 금융 시장의 지각 변동을 불러온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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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애플 카드용 저축 계좌 상품을 내놨다. 이목을 끄는 건 높은 금리다. 미국 전국 저축성 예금의 연 이자율 평균은 0.35퍼센트인데 애플의 저축 상품은 4.15퍼센트로 무려 열두 배다. 애플 카드 발급자에 한해 지갑(애플 월렛)에서 간편히 개설할 수 있고 다른 은행과 달리 수수료나 최소 예금 조건도 없다. 금융 시장 전반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WHY NOW

‘애플 통장’의 등장은 애플의 금융업 진출 본격화를 의미한다. 은행이자 카드사, 기기 제조사인 괴물이 탄생할지 모른다. 금융은 신뢰가 핵심인데 로열티도 높다. 손대는 것마다 혁신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단순 저축 계좌를 넘어 압도적 고금리라는 엣지를 들고 나왔다. 애플은 금융도 혁신할 수 있을까? 사과 속에 독은 없는지 살펴본다.

애플페이 공습 경보

지난 3월 21일 국내 상륙한 애플 페이는 출시 첫날 오전에만 17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았다. 카드사와 지급 결제 업체, 점포 사장님들은 결제 수수료와 NFC(단거리 무선 통신) 단말기 보급 문제로 일찍부터 비상이었다. 애플이라는 임팩트를 제외하면 여기까진 여타 핀테크의 확장과 유사하다. 애플페이는 돈이 흐르는 상수도 끝에 애플 수도꼭지를 놓는 것과 같다. 반면 애플 통장, 즉 애플세이빙(Savings)은 현금이 쌓이는 계좌다. 애플이 돈의 수원에 댐을 놓는 문제다. 

애플의 금융 장악 시나리오

애플 통장이 당장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적다. 그렇다고 대비를 안 할 순 없다. 국내 상륙에 9년이 걸린 애플페이도 아직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여기에 삼성페이까지 애플페이와 동일한 수수료를 카드사에 요구해 논란이 인다. 애플의 금융 장악은 온다. 2012년 월렛 출시부터 2014년 애플페이, 2017년 애플캐시(개인 간 송금), 2019년 애플카드, 갓 출시된 애플세이빙과 출시를 앞둔 애플페이레이터(BNPL, 선 구매 후 결제)까지, 애플은 착실히 ‘뱅크 오브 애플(Bank of Apple)’의 밑그림을 그려 왔다. 한국에 상륙한 것은 아직 2단계일 뿐이다.

완벽한 금융 생태계

여기까진 업계 얘기였다. 소비자에겐 어떤 금융 경험의 변화가 일어날까? 제니퍼 베일리 애플 부사장은 저축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월렛에 저축 기능을 추가해 사용자는 한 곳에서 데일리 캐시를 직접 사용하고, 송금하고, 저축할 수 있다.” 데일리 캐시는 계좌 개설 후 애플 카드를 쓸 때 사용액의 3퍼센트를 보상하는 제도다. 금융 앱도 은행도 필요 없이 아이폰이나 애플 워치만 있으면 돈을 쓰고 저장할 수 있다. 완벽한 금융 생태계다. 이로써 공고해지는 것은 금융, 아이클라우드, 애플뮤직, 앱스토어 등의 서비스 부문이다. 2022년 기준 애플 매출의 20퍼센트다.

뱅크런의 신호탄

파격적 조건은 파격적 여파를 부른다. 소비자의 돈이 애플로 옮겨간다는 것은 시중 은행에서 돈이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중소 은행에 치명적이다. 3월 초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이들은 유동성을 우려하는 고객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와 싸우고 있다. 올해 1분기 미국 대형 금융 회사들에서 인출된 예금은 600억 달러(79조 원)다. 애플은 기존 금융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하락을 틈타 이 돈을 노리고 있다. 애플 통장의 발표를 앞두고 뉴욕 증시에서 주요 은행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문제는 뱅크런이 심화하면 금융 전반이 주저앉을 수 있고 이것이 다시 금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승자박이다.

Cannibalization

또 하나의 자승자박은 글로벌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발견된다. 골드만삭스는 애플 금융 서비스를 대행하는 파트너다. 애플은 사실상 금융 업체의 서비스를 거의 갖췄지만 은행 라이선스는 없다. 법적 지위를 얻기엔 리스크가 크니 파트너십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번 애플 통장의 돈도 골드만삭스 솔트레이크시티 지점에 예치된다. 문제는 애플 통장으로 인해 골드만삭스의 기존 고객을 놓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미국 경제 매체인 CNBC에서 ‘카니발리제이션(자기 시장 잠식)’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의 금융 독립, BNPL

골드만삭스조차 떨게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애플은 아직 금융 분야를 독립하지 못했다. 애플페이, 애플카드 등에서 다양한 파트너사와 함께해 왔다. 그런데 지난달 말 애플이 자체 결제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상황이 반전됐다. 이 때문에 애플의 BNPL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금융사와의 제휴 없이 애플이 독자적으로 제공하는 첫 금융 서비스기 때문이다. 후불 결제는 사실상 소액 대출과 동의언데 애플은 이 자금까지 자회사 애플파이낸싱을 통해 조달하고자 한다. 통장이 아니라 BNPL이 애플의 진짜 금융업 진출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Walled Garden

금융 독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애플의 ‘월드 가든(Walled Garden)’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다. 금융 서비스 전반에 대해 더욱 강한 통제권을 원하는 것이다. 이제껏 애플은 자사 앱스토어나 하드웨어에서 자신들의 규격을 강요해 왔다. 이는 ‘앱 추적 금지(ATT)’ 등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지금 애플이 진출하려는 것은 금융이다. 금융은 대표적 규제 산업이다.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수장은 빅테크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리나 칸이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 1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빅테크 규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애플이 더 많은 통제권을 원할수록 규제도 강해진다.

IT MATTERS

이제껏 애플만큼 소비자의 삶 전반에 침투한 기업은 없다. 애플이 최종적으로 금융 서비스 대부분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의 모든 것이 된다. 금리로 미국 전역 은행 상품 중 11위에 해당하는 저축 계좌, 디바이스부터 운영 체제(OS), 자체 결제 시스템까지 연동되는 전례 없는 생태계가 완성되려 한다. 소비자에겐 또 한 번 혁신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 세계 10억 명의 사용자 모두에게 확대될지는 미지수다. 기기와 기기에 딸린 서비스를 파는 건 쉽지만 금융은 나라마다 규제와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가령 애플의 BNPL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네이버파이낸셜처럼 금융위에서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돼야 한다. 게다가 애플이 파격 조건으로 시장 교란을 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덜컥 애플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애플의 독립 기술이 BNPL이라는 점도 변수다. BNPL은 2020년 기준 향후 5년간 400퍼센트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지만 주 사용층은 ‘씬 파일러(Thin Filer)’ 즉 금융 이력 부족자다. BNPL이 금융 거래 실적이 적어 신용 등급이 낮은 이들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만큼, 연체율 관리는 BNPL에 진출하는 핀테크 모두의 문제다. 금융에서 애플이 배타성을 발휘한 분야가 후불 결제라는 점은 자신감이자 위험 요소다. 물론 애플 구매 고객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은 편에 속한다. 애플의 현금 보유량 역시 730억 달러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들고 있는 기업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거시 환경의 악화는 언제든 사용자의 재무 상태를 악화할 수 있고, 규제 당국은 이를 지켜볼 것이다.

애플과 미국 금융 업계의 신경전처럼 한국에서도 오는 5월 대환대출 플랫폼의 출시를 앞두고 빅테크·핀테크 업계와 금융권의 갈등이 있다. 대환대출은 여러 대출 상품을 비교해 지금보다 더 낮은 금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게 만드는 금융 당국의 서비스다. 경쟁 촉진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다. 시중 은행은 이에 반발해 왔고 빅테크·핀테크는 반사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성과급 잔치로 기존 금융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하지만 무작정 새 도전자의 유입이 금융 혁신인 것은 아니다. 소비자에게 확실히 이익이 되는지, 이제껏 쌓아온 로열티가 얼마나 공고한지, 유동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는지, 애플처럼 얼마나 원스톱 솔루션을 갖추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최근 국내 핀테크는 이색적인 초단기 적금을 내놓고 있지만 고금리에도 실제 이자 이익은 적다는 지적이 많다. 규제 혁신을 외치기 이전에 스스로의 혁신을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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